한 부부의 영화관에 갔던 이야기가 생각할수록 우습다. 그 부부는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청년경찰’를 보러 갔단다. 부부가 영화관에 들어간 때는 이미 영화가 시작한 때여서 캄캄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부부는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마침 맨 앞 두 자리만 비어 있는 것이 자기들의 자리인줄 알고 앉았다. 둘은 한참동안 영화를 봤다. 영화도 영화관 실내처럼 계속 어두운 이야기가 전개됐다. 한참을 봤는데도 경찰은 나오지 않고 자꾸 귀신들만 나왔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아무래도 귀신만 나오는 것이 이상해!” 아내가 응답했다. “그래도 좀 더 보면 뭔가 나올 거야” 또 한참이 흘렀다. 그러자 또 남편이 아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머리가 말하는데 말야, 이 영화가 아닌 것 같다고 자꾸 신호가 와” 아내가 대답했다. “그러게 말야. 경찰영화인줄 알았는데 자꾸 귀신들만 나오네?” 둘은 살며시 일어나서 또 서로의 손을 꽉 잡고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부부는 안내원에게 가서 물어봤다. 표를 본 안내원은 ‘청년경찰’은 바로 그 옆 상영관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또 손을 꽉 잡고 그 옆 상영관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스크린에서는 두 청년의 신선한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맨 앞 두 자리만 비어있다. 남편이 말했다. ‘맞아 여기 우리자리 있네. 두 자리만 비었잖아’ 부부는 두 청년경찰의 코메디 같은 이야기에 웃다가 나왔다.
그런데, 그 ‘청년경찰’ 이라는 영화 때문에 뿔난 사람들이 생겼다. 중국 동포들을 비하한 내용 때문이다. 현재 관객 수 500만을 넘어선 '청년경찰'에는 서울 대림동이라는 실제 지명과 조선족 폭력조직이 가출 소녀들을 납치해 난자를 강제 적출, 매매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의로운 두 경찰대 청년의 코믹한 이야기에 부부는 많이 웃었다는데 별개로 어떤 사람들의 삶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뭉쳤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그래서 중국동포들은 이 영화에 대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범죄자로 낙인찍는 영화라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항의에 나섰다는 뉴스다. 그동안 나는 영화는 영화로서의 순간적 쾌감, 짜릿함, 즐거움, 웃음, 감동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을 보아왔지만, 영화만의 표현의 자유를 묵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흔한 말로 왜 영화에서 폭력배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쓰는가, 전라도 사람이라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럼 외국영화에서 깡패들은 흑인들이 더 많았던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지만, 그냥 가벼운 이야기로 넘겼지 특별하게 의문을 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적나라한 묻지마 범죄에다 실제 지명과 인물을 소재로 넣어, 소수자에 대한 또는 인권의식이 부족한 갑질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점이다.
영화의 장면이 갑질을 했다는 것에 단체 대응을 할 정도로 민감해진 요즘, 우리는 ‘인권’ 이라는 단어에 매우 친숙해졌다. 인권을 풀이하자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다. 그럼 한 개인이 자신의 인권에 대해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던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런 부문에 있어서 두리뭉실하게 단체로 매도되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자기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낄 때,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고 본다. 한 사회가 한 개인의 인권보다 조직속의 한 존재로서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게 되면, 조직의 직위 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부와 빈의 차이에서 갑과 을의 형태가 저절로 생겨난다. 지난 정부에서 현 정부로 넘어오는 현재의 과도기에서 가장 많은 뉴스가 ‘갑질’이었다. 그저 갑이라는 권력 앞에서 꼼짝없이 인권을 무시당하면서도 암묵적으로 인내했던 사람들, 그들 몇몇이 수면으로 들어났는데 우리의 심장은 구운 달걀처럼 뜨거워졌다. ‘정의’ 라는 햇볕과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자 자존감이라는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주머니 한 분이 일하던 식당에서 봉급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주었다고 했다. 서로의 사정은 있다. 주인은 갑자기 그만둔 아주머니 때문에 손해가 있었기에 그러한 행동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동전 봉급은 갑질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때로는 갑과 을이 바뀐다. 어떤 점주들의 모임에 갔는데, 점주는 사람 쓰는 데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바쁜 날 갑자기 안 나오고 연락도 안 되는 종업원 그리고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화장실 청소 한번 시켰더니 다음날 그 부모가 쫒아왔더라는 말들이다. 그러니까 고용주와 고용당하는 것만 봐서는 갑과 을이지만, 일 부리는 일도 만만치 않아 갑과 을이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사적 고용관계에서는 서로 안보면 끝이다.
그러나 직장 조직에서의 상하관계는 다르다. 조직에서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투와 행동은 하급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급자의 지시는 무조건 갑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지시가 바르던 그르던 을에게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인권이 지나치게 주장되면, 조직에서 상사의 권위가 무너져 일 처리가 순조롭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간의 직위와 권위 그리고 개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배려문화가 정착되지 않고서는 일상에서 늘 트러블이 생겨 서로가 불편하게 된다. 그래서 상급자가 먼저 그만한 인격과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급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았을 때, 마치 생떼를 부리듯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일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지역에 그런 상급자가 있다면, 중국동포들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단체로 들고 일어나 바가지로 욕을 돌려줘야 할 것이다. 경찰을 보려다가 귀신을 한참동안 보다나온 부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원하지 않았던 귀신을 계속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육군대장 부부의 갑질 논란이 큰 화제였다. 나라를 지키러 간 아들들이 한 부부의 종노릇을 한 안타까운 현실에 분노했었다. 어떤 조직 내에든 우리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아들딸들이 있다. 청소아주머니가 국정농단을 한 최순실에게 ‘염병하네’ 라고 말했을 때 많은 국민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 것처럼 어디에서든 약자에 대한 보호는 그 옆에 있는 누군가가 함께 동참했을 때 힘을 발휘한다는 점, 그것이 나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글: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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