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현숙 기자의 시선 '중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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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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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기자의 시선 '중년의 고독'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늦은 밤, 중년의 세 남자가 커피숍에 들어 왔다. 그들이 시원한 음료로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의 갈증을 해소하고 있었을 때, ‘청춘이라는 가요가 흘러나왔다. 마치 가을밤 중년의 쓸쓸함을 아는 듯, 중년남자들에게 익숙한 가사, 그 가사에 그들은 심취했는지 말이 없어지고 조용해졌다. 그러자 한 남자가 음악의 볼륨을 높여주라고 주문했다. 모두가 음악에 취해버렸다. 아니 그리움에 취해버렸다. 셋이 있어도 고독한 순간이다.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가을은 가을인갑네. 노래에 옆구리가 허전해지고만

혼자 있어도 외롭고 둘이 있어도 외로운 것, 그것이 인생이여

북한 김정은에서 중국의 시진핑,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태평양을 건너 다녔던 대화가 인생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중년이라고 사랑을 모르는가, 모른 척 할 뿐이지, 사랑 앞에 나이 앞에 절제라는 말이 서글프고 책임이라는 말이 무거울 뿐이지. 또 가을이 오는 구나, 내게도 뜨거운 시절이 있었던가. 아니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뜨겁다. 청춘이라는 노래만으로도 중년남자의 가슴에는 가을 낙엽이 뒹굴었다.

9월은 절기로 가을이다.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계절, 혼자 있어도 둘이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가을은 고독한 거다. 9월이 되면서 카톡 메시지조차도 왠지 쓸쓸함이 묻어난다. ‘9월에는 당신 곁에 행운과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글귀자체는 희망의 문장이다. 그런데 왜일까. 가을에 읽는 문장은 허전함으로 읽힌다.

대학생인 사라는 리타 쿨리지의 We are all alone (우리는 모두 다 외롭다)를 들으며 마지막에 몇 번씩 반복되는 We are all alone에 진한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가 아니고 둘이기를 원하지만, 결코 둘일 수 없어서 모두가 외로운 것. 사라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기에 둘이 있어도 셋이 있어도 혼자일 수 있는 여자다. 얼마 전 작고한 마광수 소설가가 가장 사랑하고 싶고 늘 그리워하고 꿈꾸던 여성상이다. 어쩌면 사라는 작가의 외로움을 대변한 인물일 것이다.

사라는 또 말한다. “남 보기엔 내가 어리씽씽 발랄한 여대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남이 뭐라든지 간에 어쩐지 내가 너무 겉늙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뭔지, 고독이 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외롭다이래저래 시간은 잘도 흘러가고, 나는 아직 청춘인 채로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라고 또 내년 여름에도, 내년 가을에도, 나는 계속 싱싱한 <영계>인 채로남아 있고 싶다. 대학생인 사라의 마음과 내 마음이 어쩌면 이렇게 같을까. 남 보기엔 무지무지 바빠 보이고,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씩씩하고 하고싶은 일 하며 자유롭게 사는 여자, 그래서 외롭다는 소리도 못하니 더 외롭고, 가을은 쓸쓸하다.

201795, 마광수 교수가 자신의 집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이슈가 되었다. 향년 66, 요즘 시대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데 자살이라니 안타깝다. 그는 일찌감치 이혼했고 자식도 없고, 개인적 성 철학을 문학으로 표현했지만 손가락질만 당하다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모진 고난을 겪었다. 퇴직 후에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외롭게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마광수 소설가의 죽음이 우리나라 현 시대 남자들의 한 면모를 보여주듯, 그 비슷한 연배의 남성들이 모두 외로워 보인다. 평생 다니던 직장을 퇴직한 60대 남자가 집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사석에서 농담처럼 들어왔다. 직장 그만 두니 만날 친구도 없고, 즐길 취미도 없고,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어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조차 모른다. 퇴직하면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지만 가족들은 저마다 바쁘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대상도 없는 남자,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아내가 차려주는 삼시세끼 조차도 미안한 그대 이름은 고독한 중년 남자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한 선생님과 식사를 했다. 늘 옮겨 다녀야 했던 직장 때문에 가정에 오래 머물러본 적이 없다는 옛 선생님은 퇴직 후 아내와 살지만 잠도 혼잠, 빨래도 혼빨 밥도 혼밥이라고 했다. 같이 살지만 따로 국밥이다. 아내는 이웃이 모두 친구고 취미도 다양해서 늘 바쁘다. 그렇지만 이미 혼자라는 게 익숙해서 그런 생활이 특별하지는 않단다. 부부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같은 드라마에 흥미를 느낄 때다. 예전에 즐기지 않았던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와 이러쿵 저러쿵 대화가 된다.

오래전에 즐거운 사라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매우 뛰어난 소설가라고 느꼈었다. 그의 문장 표현력에 반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적 이데올르기를 문학으로 표현한 것에 비해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은 왜 사회에서 난도질당해야 했을까. 그는 왜 죽어서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한 남자의 고독사가 그냥 슬픈건지도 모르겠다.

고독하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떠오른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은 죽고 나서야 그들이 얼마나 고독했는지를 알 수 있다. 마꼰도라는 지역에 정착한 부엔디아 집안의 백년동안 역사는 멜키아데스라는 한 집시의 예언에서 고독을 벗어나지 못한다. 불면증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마을사람들은 점점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러다 기억을 되찾은 마을에는 마술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은 자들이 죽어서도 너무 외로워 찾아오는 이야기다. 죽은 지 수년이 지나자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강해졌고, 말동무가 절실히 필요했으며, 죽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죽음과 가까이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워 결국 적들 가운데 가장 나쁜 적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자, 그를 죽였던 부엔디아는 그 죽은 자을 만난 후 저승에서 외롭게 지내는 아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죽은 자들의 고독이 산자를 처절한 고독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그는 평생 밤나무에 묶인 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고독하게 죽어간다. 부엔디아 집안의 고독은 환상과 상상 현실이 뒤섞여 마술처럼 풀어져 나가며 사라진다. 그래서 고독은 마술을 부리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숙제처럼 말이다. 마광수 문학은 죽은 후 새로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마꼰도라는 마을에 정착한 부엔디아 사람들이 평화로움 속에 살다가 어느 날 누군가가 죽어 그 땅에 묻혔을 때, 그곳이 고향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처럼 마광수 소설가의 죽음이 한국문학에 성애 문학을 새롭게 이해하는 족적을 남긴 한편, 중년 남자들의 고독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가 왜 가을이 되기 전에 떠났는지를.

이 현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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