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필자도 몇 년 전 북경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아마도 자금성의 규모에 먼저 놀란 기억이 있다. 자금성으로 들어섰을 때 가이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발 자금성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어찌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지 한 번씩 안내하려면 죽어나니까요.”
아무려나 그렇다고 자금성이 없어지길 바라다니. 그녀의 말에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연경은 북경의 옛 지명이다. 추사가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 수도인 연경에 가서 벌인 활동은 엄청났다. 당시 연경은 선진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고, 조선의 선비들은 누구나 꿈꾸는 유학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행길은 녹록한 길이 아니었다. 왕복 반년이 걸린데다가 한양에서부터 북경까지는 무려 3000리 길이었다. 게다가 국경 지대에는 민가가 없기 때문에 노숙을 해야 했고 날씨에도 애를 먹어야 했으며, 도둑떼나 호랑이의 습격도 있었으니 목숨까지 잃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선비들은 청나라 수도 북경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했다.
더구나 추사에게 있어서 스승 박제가는 이미 세 번째 연행을 돌아왔으니 스승으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 때마다 동경을 더 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추사가 아버지 유당 김노경과 한양을 떠난 것은 1809년 10월 28일이었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 보다 20년 후의 일이었지만 그 <열하일기>로 인해 청나라의 문물을 흠모하기 시작했으므로 부푼 꿈이 절로 생겼을 것이었다.
추사는 11월 16일 의주에 도착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는 2000리 길이었으므로 한 달 반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봉황성을 지나 요동 들판으로 들어섰다. 봉황성은 고구려의 산성인데 가장 큰 산성으로 성의 이름은 안시성(安市城)이었다. 추사는 고구려의 옛 성을 보면서 당 태종을 양만춘 장군이 물리친 일을 회상하며 시를 지었다.
우뚝 선 봉우리, 가운데는 들판인데
수레와 말방울 떨렁떨렁 큰 들판에 널렸구나.
성 위엔 아직도 당나라 때 달이 남아 있어
반쪽은 이지러졌고 남은 빛은 그대로 비치는구나.
요동들판을 지나면서도 <요동벌판>에 대한 시를 지었다.
산은 석령에 이르러 끝이 나고
만리가 옷깃 앞에 비껴 있네.
하늘과 땅 사이가 텅 비었는데
모두가 이 사이에 놓였네.
물은 움푹하고 산은 우뚝하니
군더더기는 말끔히 쓸어버렸네.
하늘 끝닿은 곳은 그 어디던가.
땅의 모습이 둥근 것을 믿게 된다네.
끝닿은 곳을 보며 거기라고 여겼더니
그곳에 당도하니 다시금 아득하네.
해와 달이 바다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모두 대륙을 따라 타고 오르네.
하얀 달은 버섯 머리 모양으로 솟았으니
어찌 변방이 웅장하다고 하리오.
때때로 먼 산인 양 헛보이기도 하네.
천추의 큰 울음 터라고 하였으니
기발한 은유 그대로 절묘하구나.
갓 태어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울음에 비유하였네.
시방세계 항사불(恒沙佛)이여
백억인지 천억인지 끝이 없구나.
만약에 이 땅을 가지고 가늠하려면
도리어 한 번 더 이어야 하네.
예전의 선로를 따라 가노라니
사람의 가는 길은 참으로 가련하여라.
여기에서 항사불이란 말은 황하강의 모래 숫자만큼 많은 부처님이라는 뜻인데, 끝없이 펼쳐지는 요동의 들판을 보면서 추사는 놀람과 설렘으로 이와 같은 시를 지었다.
이런 시를 지으며 감격과 감동의 마음을 간직한 채 연경에 도착한 추사는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조강(曹江)이었는데, 조강은 추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글을 썼다.
동쪽 나라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있는데 나이는 24세이고 세계로 넓게 자기를 찾을 의지가 있어 일찍이 시를 지었다. “개연히 한 생각 일으켜/사해(四海)에서 널리 지기를 맺고 싶네/만약 마음 맞는 사람을 얻게 된다면/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겠네/ <중략>
이러한 조강을 통해 추사는 서송(徐松)을 만났다. 그리고 서송을 통해 옹방강과 옹성원 부자를 만나게 된다. 이어 대학자 완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옹방강으로부터는 보담재란 당호를 얻고 완원으로부터는 완당(阮堂)이란 아호를 얻게 되어 훗날 자신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초상화를 통해 두 선생을 회상한다.
옹방강과 완원과의 만남
일찍이 박제가는 직접 옹방강을 만난 적이 있었으므로 그의 제자인 추사가 높은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붓으로 글씨를 써서 서로 의사를 나누었을 때, 옹방강은 추사의 박학다식함에 크게 놀란다. 그래서 해동에 이런 영물(英物)이 있었느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일본의 동양철학자이자 1926년 경성제국대학(전 서울대학교) 중국철학 교수로 서울에 오게 되었을 때 추사의 활약을 치밀한 고증으로 집대성할 정도였다.
그는 박제가의 제자로 조선 500년 역사상 보기 드문 영재(英才) 완당 김정희가 연경에 가서 옹방강과 완원 및 여러 현들과 왕래하여 청조 학문의 핵심을 잡아 귀국하였고, 이에 조선 학계는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빠른 진전을 보여 500년 내로 보지 못했던 진전을 보게 되었다고 극찬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참깨에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글씨를 써서 추사에게 건네주자 추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 옛날 <법창야화 제1화>로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강진 갈가리 사건>의 살인자가 깨알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만큼 재주가 뛰어나고 영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체를 나무 밑에 묻는 바람에 완벽하리라고 믿었던 살인사건이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다. 나무가 말라비틀어져 땔감으로는 적격이었기 때문에 나무꾼의 눈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땔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온통 산이 벌거벗을 만큼 황폐했고, 푸나무, 갈퀴나무, 등걸나무를 했던 시대였다. 그러니 제법 살이 오른 나무가 말라비틀어져 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결국 지서에 가서 형사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일본 밀항까지 꿈꾸었던 영리한 살인자도 밀항 직전 체포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던 사건이었다.
깨알이란 말이 나와서 <법창야화>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이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적 만남이었다. 이를테면 조선과 청나라가 바야흐로 문화교류를 하는 역사적 날이었던 것은, 옹방강이 두 아들을 시켜 자신의 유명한 서고인 석묵서루를 두루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추사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수장품이 8만 점이나 되었고 특히 희귀한 금석문과 진적(眞蹟)이 가득 차 있었으니 추사로서는 일생일대의 행운이요 큰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옹방강은 추사에게 책이며 탁본이며 글씨 등을 상당히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귀국한 후에도 옹방강의 가르침을 서신으로 받았으니 추사로서는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었겠는가.
추사가 완원을 만나 것 역시 큰 복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많은 서책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완원의 유명한 글들을 필사하기도 했으니 두고두고 공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완당이란 호를 내려주었으니 사제지간의 관계가 되었고 추사는 이후로 완당이란 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추사박물관 개관도록>에는 다음과 같은 흑백사진이 있다.
*추사전별도
가경 경오(1810년) 2월, 조선 김 추사 선생이 귀국하려고 하면서 빈 화첩을 내놓고 그림을 요구했다. 시간이 없어 많이 그릴 수는 없으나 광경을 보고 그대로 그려서 한 때의 아름다운 모임을 기록한다.
함께 모인 사람은 양주 완운대, 백강 이심암, 의황 홍개정, 남풍 담퇴재, 반우 유삼산, 대흥 옹성원, 영산 김근원, 금주 이묵장이다.
양주 주학연이 그리다.
이 그림은 주학연의 <추사전별도>였다. 노송이 있는 별채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 이 모습을 추사는 귀국 후에도 늘 생각했고, 그림으로 뛰어난 주학연은 추사를 좋아해서 자신의 그림을 많이 주기도 했다.
추사는 연경 두 달이 끝나 귀국하려고 했을 때 이별시를 지었다. 소재 옹방간 선생 문하에 향을 받쳤고/운대 완원 선생 그림 속에서 보던 얼굴이네/ 이렇게 시작되는 이별시를 지은 추사가 연경을 떠나 귀국한 것은 1810년 3월이었다.
추사는 연경에 가서 당대 뛰어난 학예인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고, 그들 또한 조선의 지식인이었던 젊은 추사를 만나면서 칭찬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정리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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