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정조가 1800년 승하하기까지 10년 세월동안 조정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29세부터 39세까지였으니 혈기가 왕성하던 때였다. 그때 다산은 정조의 신임을 받아 암행어사가 되는데, 이미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고 다음 날에는 수찬에 다시 제수되는 등 잘 나가던 때 서른세 살이란 나이에 암행어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산천초목이 떤다는 암행어사였다.
다산은 정조가 특별히 당부했던 대로 산화전에 과도한 세금을 물리게 하는 것, 각 지방의 유기아(遺棄兒) 처리 문제, 환곡, 흉년이 심했던 연천지방의 문제 등을 면밀히 조사하였고, 대안까지 보고하였다.
그런데 1794년 보름 동안의 암행어사 임무는 하나의 분수령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서용보와의 관계였다. 서용보는 당시 세력가로서 경기관찰사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서용보는 수원 화성길에 임금이 지나가 갔음에도 불구하고 통과하는 길을 보수한다는 이유로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다산은 단호히 지적했고 서용보로 하여금 징계를 당하도록 조치하였다.
세월은 흘러서 다산이 불행의 늪에 빠졌던 신유옥사 때 재판을 맡았던 재판관들이 다산을 석방하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서용보만큼은 반대를 하였다. 그리하여 서용보 한 사람의 고집으로 인해 18년간의 귀양살이를 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3년 후 귀양살이를 하던 중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순 대비가 풀어줄 것을 명했으나 서용보가 기어코 명을 바꾸게 하는 바람에 풀어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서용보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1818년 귀양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정에서는 다산을 재등용하여 그의 학식과 재능을 살리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서용보가 반대했으니 이보다 더한 악연은 없을 것이었다.
다산이 암행어사를 지낼 때 당시 백성들의 삶은 몹시 피폐해 있었다. 그래서 다산은 울분을 참지 못해 지은 시가 있다.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적성의 시골집에서 짓다-
시냇가 허물어진 집 뚝배기처럼 누웠는데
겨울바람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들쑥날쑥
묵은 재에 눈 덮여 아궁이는 썰렁하고
어레미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비쳐 든다.
집 안에 있는 물건 몹시도 쓸쓸하니
모두 팔아도 칠팔 푼이 안 되겠네.
개 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 걸려 있고
닭 창과 같은 마른 고추 한 꿰미 놓여 있다.
깨진 항아리 뚫려 새는 곳 헝겊으로 발라 막고
떨어져 나간 시렁대는 새끼줄로 얽어맸다.
놋수저는 지난번에 이장에게 빼앗기고
구쇠솥은 엊그제 옆집 부자가 앗아 갔다.
검푸른 무명 이불 한 채뿐이라서
부부유별 따지는 건 마땅치도 않구나.
어린것들 입힌 적삼 어깨 팔뚝 나왔으니
태어나서 바지 버선 입어 보지 못했으리.
큰아이는 다섯 살에 기병으로 올라 있고
작은애도 세 살에 군적에 묶여 있다.
두 아들 군포세로 오백 푼 바치고 나니
죽음이나 재촉할 판에 옷이 다 무엇이랴.
갓 낳은 강아지 세 마리 애들 함께 자는데
호랑이는 밤마다 숲 속에서 으르렁댄다.
남편은 산에 가 나무하고 아내는 방아 품팔이
대낮에도 사립 닫혀 분위기 슬프구나.
아침 점심 거르고는 밤에야 밥을 짓고
여름에는 솜 누더기 겨울에는 삼베 적삼 걸치네.
들냉이 싹마저 깊어서 땅 녹기 기다리고
이웃집 술 익어야 지게미나 얻어먹네.
지난봄에 꾸어먹은 환자가 닷 말이라
이로 인해 금년은 참으로 못살겠네.
나졸들 문밖에 들이닥칠까 겁날 뿐
관청에 가서 매 맞을 일 걱정도 많네.
아아! 이런 집이 온 천지에 가득한데
구중궁궐 깊고 깊어 어찌 살피랴.
직지사란 암행 벼슬은 한(漢) 나라 때 벼슬인데
고을 목민관도 마음대로 처벌했네.
폐단의 근원 난맥상이라 바로잡지 않고는
공수 황폐 다시 나도 뿌리 뽑기 어려우리.
먼 옛날 정협의 '유민도'를 본받아
그냥 시 한 편 지어서 궁궐로 돌아가려네. <해석 : 박석무>
농촌에 사는 백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바라보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는 시다. 이런 시를 보면서 다산의 애민정신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암행어사 시절에 맞닥뜨린 서용대로 인해 일생을 불행하게 보내야 했던 다산의 고독은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아마도 강진 앞바다의 바닷물을 다 마신다 해도 그 고독은 씻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어쨌든 다산은 암행어사 임무를 훌륭히 마쳤고, 그 후로 임금 정조의 깊은 사랑으로 승승장구 벼슬길이 열렸다.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성균관 직강, 홍문관 교리, 사간원 사간, 동부승지, 병조참의, 병조참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곡산부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다산은 31세에 <기중가도설>을 작성해 기중가를 제작함으로써 실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는데, 이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계장치였다. 이 일로 4만 냥 이상 절약할 수 있었다.
또한 다산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까지 가는 행차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는데, 수원에서 돌아와 봉수당에서 잔치를 베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조가 다산의 글재주를 시험해 보고자 7언 배율을 지어 올리라는 분부를 내렸다. 어려운 분부였지만 다산은 장대한 시를 단 여섯 시간만에 지어 올렸다. 이를 두고 임금 정조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장이 원만하고 구절이 매끄러운 데다 정구도 아주 많았다. 이서구, 신기, 한만유 등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은 시에 못지않고 황기천이나 윤행임의 글에도 견줄 만하다. 오늘 이 사람의 작품은 신속한 점으로는 시부보다 낫고, 별도에 맞는 것으로는 표책보다 못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참으로 알찬 재주꾼으로서 보기 드문 경우라 할 만하다”
임금 정조 뿐 아니라 그 당시 최고의 세 제학의 평가는 더 높았으므로 다산의 시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산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이렇듯 임금 정조의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반대파의 질시는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자 다산은 ‘여유당’으로 귀향했다. 임금 정조가 자신을 인정해 주고 내전의 왕실 잔치까지 참석시킬 만큼 듬뿍한 사랑을 주었지만 그런 후견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1800년이었고, 다산은 그 이듬해인 1801년 강진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추사와 초의스님과의 만남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 와서 맨 먼저 만난 스님은 혜장이었다. 그런데 다산의 아들 학연이 내려와 고성사 보은산방에서 혜장과 함께 주역을 논하며 공부를 하였는데, 이 때 초의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학연의 소개로 초의와 추사가 만났다고 보는 것이 맞겠고, 추사의 나이 30세에 초의를 만나 평생에 걸친 우정을 쌓았다.
추사는 초의를 만남으로 인해 더욱 불교에 심취했는데, 무엇보다도 초의는 추사에게 좋은 차를 보내주었고, 추사는 그것에 대한 답으로 글씨를 써서 보내주었다. <명선(茗禪)>이란 작품이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추사가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 초의가 지은 제문을 읽어보면 더욱 느낄 수 있다.
42년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는 오랜 인연을 맺읍시다. 생전에는 별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대의 글을 받을 때마다 그대의 얼굴을 대한 듯했고, 그대와 만나 얘기를 할 때는 항상 허물이 없었지요. 더구나 제주에서 반년을 함께 지냈고 용호에서 두 해를 살았는데 때로 도에 대해 담론을 할 때면 그대는 마치 폭우나 우레처럼 당당했고, 정담을 나눌 때면 실로 봄바람이나 따사한 햇볕 같았다오. <초의선집>
초의는 스님으로 지내면서도 속세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추사 뿐 아니라 추사의 동생인 김명희, 다산과 다산의 아들 학연, 그리고 홍석주 등 추사와 다산의 주변사람들이었다.
추사는 이러한 초의와 교류하면서 불교에 심취해 갔는데, 말년에는 항상 염주를 지니고 지냈다고 한다. 추사가 생전에 교류한 스님들로는 초의를 비롯해서 해붕, 우담, 흔허, 백파 등이 있다.
추사의 주변에는 많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정통 사대부들과 가장 가까운 벗 권돈인이 있었다. 그리고 중인 출신의 문인(門人)들이었다. 권돈인은 추사보다 세 살 위였지만 평생 시와 서, 그리고 화를 주고받았고, 말년에 따로따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되었을 때에도 외로움을 사로 나누며 지냈다. 추사가 젊었을 때부터 가까이 지낸 사람으로는 김유근이 있었는데, 그는 안동 김씨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조준의 아들이었다. 김유근은 1827년 평안감사가 되어 부임지로 가던 중 퇴임 관리의 앙심에 일가족 다섯이 죽고 자신은 간신히 살아남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김유근은 돌을 잘 그렸고 추사 일파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말년에 추사가 안동 김씨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있었지만 실어증으로 인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초의는 1861년 <해붕대사영정첩>을 썼는데, 발문에는 두 사람이 1815년 수락산의 학림암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추사에게 보낸 초의의 편지 1815년 10월 27일 자에는 두 사람이 헤어진 후 그동안 운길산 수종사를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이전에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어쨌든 <해붕대사영정첩>을 통해 추사의 불교심취를 엿보게 하고 있다.
“지난 1815년 해붕 노화상을 모시고 수락산의 학림암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추사가 눈길을 헤치고 찾아와 노스님과 더불어 ‘공각(空覺)의 능소생(能所生)에 대해 깊이 토론했다.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갈 때 노스님께서 한 가지 게송을 써주셨다. 이 글에는 ”그대는 길을 좇아 밖을 다니고 나는 집 안에 앉아 있네. 집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집 안에는 애초에 불이 없다네“라고 쓰여 있었다. 노스님이 거듭하여 전해주신 등불 같은 가르침은 생각해볼 만하다.”
한편 무안군에서는 다도의 선구자이자 다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초의선사의 탄생일에 때를 맞추어 2017년 4월 29일 초의선사 탄생문화제를 개최한 바 있다. ‘선다일여(禪茶一如)로의 여행’이란 주제로 개최된 문화제는 전날 제천다례, 별빛차회 등을 개최하였고, 당일에는 초의선사 헌다의식, 제물 봉헌의례, 5법공양 헌다례, 청소년 글짓기 등이 있었다. <정리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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