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정관웅 칼럼 '가을의 정원에는 슬픔 속에 행복한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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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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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 '가을의 정원에는 슬픔 속에 행복한 얼굴이 있다.'
안톤 슈낙(Anton Sch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략)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중략)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老木)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 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중략)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루트 함순’(1859~1952·노르웨이 작가. 192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편집자)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출처=차경아 옮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문예출판사, 201161, p.9~13, 독일에서 잊힌 작가 한국에선 30년 가까이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가로수 길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낙엽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내가 사랑하며 걸어온 많은 순간들이 희미해지는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려 할 때, 은행잎이 머리 위를 스치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왜 자꾸 나를 슬퍼지게 하는지

그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은 삶의 조각들이 가슴속에 물들어있기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 더욱 슬프게 한다. 우리의 삶에서 묻어 있는 기억의 순간들조차 아름답기에 가슴을 더욱 슬프게 한다.
  이 가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많다. 고독한 길 위를 걷는 아픔은 그 길을 걸어보지 않는 사람은 알지를 못한다. 길 위에서 때리는 듯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혹은 갑작스레 밀려오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하는 일도 있다. 거기에는 이름 모를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 슬픔과 고통 속에서 오는 것들은 더욱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외롭고 쓸쓸한지도 모른다.

가을빛은 이렇게 소리 내지 않는 조용한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뒤켠에 서서 조용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도 있다.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쾌락과 고통이 숨겨져 있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권자의 지배하에 두었다. 오직 고통과 쾌락만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뿐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지적해 준다. 한편으로는 선악의 기준이, 다른 한편으로는 인과의 사슬이 그것들의 옥좌에 걸려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우리의 모든 말,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생각을 지배한다. 우리가 그 지배를 뿌리치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조력은 단지 우리가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증하거나 확증하는데 기여할 뿐이다. 공리의 원리는 고통과 쾌락에 대한 우리의 종속을 인정하고, 이성과 법의 손을 빌어 그것이 지복(至福)의 제도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한 사실을 의문시하려고 하는 체계는 의미 대신에 소리를, 이성 대신에 충동을, 빛 대신에 어둠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쾌락과 고통 [pleasure and pain] (벤담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서설(해제)

이처럼 쾌락과 고통은 이성이 있는 존재든 없는 존재든 이 세상 모든 생명체들을 움직이는 근원이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고통은 피하려고 한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역시 기본적인 행동양식을 갖고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와 다르지 않다. 어린이나 성인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돈이 적은 사람이나 많은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 모두 다 고통과 쾌락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가을을 바라보며 낙엽 위를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저 여인의 발길처럼 고독과 슬픔과 고통, 쾌락이 묻어서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 볼 수 가 있어 이 가을의 정원에는 슬픔 속에 행복한 얼굴이 있다.

오늘도 나에게 아픔을 승화시킨 삶의 기쁨과 눈물이 키운 삶의 힘이 있다. 그것은 봄빛 같은 당신이 곁에 있어서 오래오래 아주 오래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빗물에도 젖지 않는 향기처럼 가을 햇살은 낙엽을 가만히 만져주고 있다. 그 길을 걸어간다. 이 가을 시작의 자리에 너를 향해...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우소장

시인·칼럼니스트

본지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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