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과 경종, 영조 그리고 노론과 소론의 분열
병자호란 이후 야기된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윤증은 대청 실리외교의 노선을 견지한 반면, 송시열은 숭명의리를 앞세워 유교적 명분을 강조하면서 양측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특히 권력에 밀착된 일들은 수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특히 암살(暗殺)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이유로 유명한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을 말한다. 돈을 목적으로 하거나, 정부의 명령으로 간첩 활동을 통해 암살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숨어서 총으로 저격(en:Ambush)하거나 독극물을 먹여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죽이는 방법을 동원한다.
최근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정권이 보낸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소량만 흡입해도 치명적인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가스와 베트남 등 외국인 여성까지 동원해 벌인 북한의 암살 배경에는 ‘백두혈통’(김일성의 적장자)을 둘러싼 북한의 권력투쟁이 있었다. 적장자가 아닌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미 권력에서 멀어진 백두혈통 김정남을 제거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이처럼 암살은 배후가 누군지 알 수 없고 기습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적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는 없지만 조선왕조 600년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는 암살설이 제기돼 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연잉군(훗날 영조)의 간장게장 독살설을 비롯해 정조, 고종,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 등이 암살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있다. 영조의 경우 실제로 재임기간 내내 독살설로 인해 끊임없이 왕권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는 조선 20대 임금 경종(1688~1724)의 안타까운 사연도 한몫 했다. 재위기간이 4년(1720 ∼1724)밖에 되지 않았던 경종은 병약했던 데다 자식도 없어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했다. 당시는 노론·소론이 치고받던 당쟁의 절정기. 경종은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의 압박에 시달려 이복동생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물러날 처지에까지 몰린 딱한 왕이었다. 이런 경종이 급사하면서 모든 의혹이 영조에게 쏠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입이 짧은 경종이 유독 간장게장을 좋아했는데 하필이면 이 간장게장을 먹고 얼마 뒤 병세가 악화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어제 임금이 게장과 생감을 드셨는데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잉군이 경종에게 간장게장을 자주 올린 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임금의 입맛을 돋우려 게장을 올렸다. 그제야 수라를 조금씩 들게 되니 후식으로 생감을 올렸다”는 후대의 기록이 증명한다. 학자들은 이 비극을 잘못된 음식궁합에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종이 하필이면 게장과 상극인 생감을 함께 먹은 탓이다. 16세기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은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가 난다”고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잉군은 음식을 먹는 경종이 반가워 주위반대를 무릅쓰고 게와 감을 계속 권했던 것이다. ‘독살설’의 주범으로 몰린 이유였다. 현재 한의학에서는 경종의 사인을 급체에 따른 합병증인 복막염으로 추측하고 있다. 정상체력이라면 아무리 상극인 음식을 먹어도 하룻밤 새 사망에 이르진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결국 10년 이상 골골하던 체력이 죽음으로 몰았던 것이다. 조선 시대 성군(聖君) 중 한 명인 정조(1752~1800) 역시 암살 피해자로 거론된다. 경종만큼 암살설의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정조 역시 과로로 인한 복합적인 문제를 죽음의 원인으로 꼽는다. 독살설은 주로 남인 사이에서 유포됐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남인 정약용(1762~1836년)이 ‘기고금도장씨여자사(紀古今島張氏女子事)’와 같은 글에서 정조의 사인과 관련해 독살설을 언급했다. 독살설의 근거로 든 것은 정조의 사망 이후 전개된 정치적 파란과 세도정치의 전개로 개혁정치의 성과가 훼손됐다는 점이다. 정조 사후 전개된 파행적인 정국 운영에 대한 아쉬움이 독살설로 이어진 것이다. 독살설이 남인 세력으로부터 주로 유포된 것도 정조 승하 이후 노론벽파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서 남인이 천주교 박해 사건 등에 연루돼 엄청난 정치적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 기록, 정조가 직접 쓴 편지에 나타나 있듯 정조는 오랫동안 지병을 앓았다. 역의(逆醫)로 몰렸던 심인이라는 인물이 연훈방(烟熏方)을 써서 수은 중독에 이르게 했다는 처방 역시 정조가 직접 요구한 처방이었음을 고려하면 독살설 근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한 정조는 스스로 조제와 처방을 지시할 정도로 의학 지식이 풍부했다. 정조의 병은 복합적이었고, 사망하기 수년 전부터 그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가 반복됐다. 이런 기록을 종합해보면 그의 사망은 갑작스레 온 것이 아니고 병적일 정도로 일에 집착을 보이는 성격, 격무와 과로, 다혈질의 성격, 잦은 병치레의 축적 등이 종합된 결과로 보인다.
경종과 연잉군의 아버지인 숙종은 재위 기간 동안 세 차례나 급작스럽게 정국을 교체 했는데 이것을 ‘환국(換局)’이라고 한다. 첫 번째 환국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라고 한다. 1680년에 남인의 영수인 허적이 조부인 잠의 시호를 맞이하는 잔치를 열면서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왕실에서 사용하는 유악을 가져가 사용한 것을 계기로 일어났다. 유악은 비를 막을 때 사용하는 기름칠한 ‘천막’을 말한다. 이날 비가 많이 내리자 숙종은 신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창고에 있는 유악을 허적의 집에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유악은 허적에의해 반출 되에 그의 집에 있었다. 허적을 건방지다고 생각한 숙종은 군권의 책임자를 기존의 남인 유혁연 대신 서인측의 사람인 김만기로 교체하고 총융사와 수어사까지 모두 서인 측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적의 서자인 견이 인평대군의 세 아들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등과 함께 역모를 꾀했다는 고변이 들어오면서 허적을 비롯한 남인을 주도하던 모든 세력이 중앙 정계에서 쫓겨나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남인들은 10여 년 동안 칼을 갈다가 궁녀 장옥정과 손잡고 반전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己巳換局)’이다.
회니시비란 조선 숙종 때 송시열과 윤증이 서로를 비방했던 사건을 말하며, 이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회니'란 말은 송시열이 지금의 대전 근처에 자리했던 회덕에 살았고, 윤증이 논산군에 해당하는 니성에 살았기 때문에 두 곳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용어다.
송시열과 윤증의 부친인 윤선거는 김장생의 수하에서 수학한 동문이었다. 하지만 병자호란에 강화도 사건이 일어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청군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갔던 윤선거가 절의를 지키지 못하고 청군에 항복했던 것이다. 송시열을 비롯한 조정에서는 의리를 버리고 목숨을 부친 윤선거를 비난했고, 이로 인해 윤증은 부친을 따라 과거도 단념하고 평생을 자숙하며 재야에서 지내게 되었다. 중앙에서는 몇 차례 명망이 높았던 그를 불러냈지만 끝내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더욱이 병자호란 이후 야기된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윤증은 대청 실리외교의 노선을 견지한 반면, 송시열은 숭명의리를 앞세워 유교적 명분을 강조하면서 양측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예송논쟁에서 윤선거, 윤증 부자가 송시열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윤휴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자, 이에 불만을 품은 송시열의 지지세력이 윤증의 지지세력에게 본격적인 공격을 가함으로써 의리론을 두고 양측의 논쟁이 뜨거워졌다. 윤증 측은 송시열의 교조주의와 독선적인 면을 공격하였고, 송시열 측은 윤증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들의 경박함과 이단성을 비난하였다.
1669년(현종 10) 윤선거가 죽은 뒤 윤증은 박세채가 지은 윤선거의 행장과 여러 자료를 가지고 송시열에게 묘갈명을 지어주기를 부탁했으나, 송시열은 박세채가 그 덕을 행장에서 모두 나타냈으므로 특별히 할 말이 없다 하여 윤선거의 행적만 간단히 정리했다. 그러나 윤증은 미진하다고 여겨 4, 5년간 묘갈명을 수정하고 개찬하기를 청했으나, 송시열은 골자는 내버려둔 채 자구만 몇 군데 손질할 뿐 끝내 윤증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송시열이 윤선거의 묘갈명을 탐탁하지 않은 자세로 지은 이유는 윤선거의 과거 행적과 주자학에 대한 사상적 태도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를 수비하다가 성이 함락될 때 탈출하여 살아남았던 윤선거에 대해 대의명분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또 사문난적으로 규정한 윤휴(尹鑴)에 대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윤선거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윤선거는 죽기 직전 송시열의 주자학 일변도의 사상편향과 편협한 정국 운영을 비판하는 〈기유의서 己酉擬書〉를 남겼다. 송시열과 윤선거 간의 이러한 감정 대립은 윤선거의 사후 묘갈명 작성을 계기로 해서 윤증과 송시열의 감정대립으로 이어졌다.
송시열·윤증 두 사람간의 정치사상적 견해차는 매우 컸다. 송시열은 주자학의 이념을 좇아 대의명분을 중시하며 서인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한 반면, 윤증은 양명학을 인정하는 절충적 태도로 탄력 있게 현실을 인식했다. 특히 경신대출척 이후 윤증은 송시열이 전개한 편협하고도 비현실적인 정치에 크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1681년 〈신유의서 辛酉擬書〉를 통해 송시열의 행동과 사상을 비판했다. 여기서 송시열의 독선적인 주자학과 숭명의리론의 허구를 호되게 비판하여 송시열의 이념과 행동이 결국 '허명'이며, '이행'이라 했다. 동시에 서남간의 논쟁과 노소간의 마찰을 없애자는 의견을 장문으로 피력했다.
이후 송시열은 윤증과의 관계를 끊고 적대시했다. 이 일로 인하여 송시열을 주축으로 한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한 소론이 형성되어 노소 대립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회니시비는 주자학 도통주의에 입각하여 정국을 운영하려 했던 노론계와 이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현실적으로 정치를 운영하고자 했던 소론계의 대립이 송시열과 윤증 간의 감정과 얽혀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로 노론과 소론은 경종·영조·정조대로 이어지며 격렬히 대립했으나,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노론이 승리하면서 노론 일당의 전제정치체제로 굳어졌다. <다음호에 계속>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본지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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