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만나보았습니다> 김재식, 6.25참전 유공자회 자문위원 (강진읍 남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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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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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았습니다> 김재식, 6.25참전 유공자회 자문위원 (강진읍 남성리)
대통령상 4회, 국무총리상 1회, 체신청장 6회 수상 경력

하늘에 별도 딴 양반

사람이 용기가 있어야 해요.”

 

대통령상을 네 개나 타도 누가 알아주들 안 해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까지 네 분에게서 대통령상을 수여 받았던 김재식(87) 할아버지. 그러나 김 할아버지가 받은 상은 이 네 개의 상뿐만이 아니다. 1980년부터 체신청장 6회와 고건 국무총리 표창장까지도 받았으니, 평생 상복이 차고 넘치신 분이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쓸쓸해지는 건, 이러한 상이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손자에게 상장을 보여주며 평생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남들은 상을 타면 기자가 제 발로 찾아온다는데, 나는 대통령상을 네 개를 탔어도 한 번도 그런 일이 없구나

6.25참전 유공자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문위원으로 있지만, 해마다 회에서 호국순례를 갈 때에는 백만 원씩 찬조를 해온 것이 7년째다. , 박정희대통령 정신문화선양회 전라남도 고문을 맡고 있고, 6.25참전부사관연합회 전남지부 고문도 맡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국가유공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오신 김 할아버지는 6,25참전 용사들에게 애정이 깊어 용사들의 일에는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6,25전쟁 때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고도 지금은 연금까지 받으며 편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하기에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용사들에게 봉사하며 베풀 수 있을 때 마냥 행복한 분이다.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 옆에 딱 붙어서 죽은 체 하고 있었지. 그때 인민군이 지나가면서 발로 툭툭 차는데 무섭더만, 이렇게 죽는구나 하면서 죽은 것처럼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더니 그냥 가 버리더만.”

김재식 할아버지는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태생이다. 군대를 빨리 가고 싶었던 김 할아버지는 열일곱 살에 열아홉 살이라고 속이고 1952년도에 군대를 갔었다. 이후 제주2연대 34중대에서 3소대 선임하사를 했으며 부산 보충대에서 군 생활을 했고, 1등 중사로 제대했다.

옛날 딱공총이 일본구식총으로 바뀌더만, 전쟁을 겪으며 56개월 동안 군대생활을 하고 제대 했어요.”

지금 함께 생활하고 계시는 할머니는 7살 아래다. 칠량에서 장흥으로 이어진 재를 넘어 장흥 관산장을 다니던 어느 날, 나중 장모된 분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 분, 그 분이 장모가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그 후 어느 날 나중 작은 장모 되신 분이 집을 찾아왔었다. 집에서 막 소를 끌고 나가려는 참이었는데 한 여자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여가 김재식씨 집이요?”

작은 장모는 그날 김재식이란 사람이 확실한 사람인가 다시 확인하러 왔던 거였다. 혼례날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초가집 앞마당에서 혼례를 치르고 최종 사진을 찍던 때가 지금은 어슴푸레하게 기억날 뿐, 풍전등화 같았던 한 평생이 순간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말로는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일까. 겹겹이 쌓인 세월의 깊이만큼 모든 것이 이제는 희미해졌다. 눈이 펑펑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해갈 때 두 사람의 혼례사진을 찍기 위해 앞에 서 있던 사진사의 모습이 유난히 더 또렷하니 말이다.

김 할아버지는 군 제대를 한 후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했다. 당시 보안과에 근무하던 사촌형님이 요 꼬맹이를 좀 써주시오라고 말하며 경찰서에 사정을 하여 넣어주었다. 경찰서 근무 이후 나중 우체국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우체국에서는 분회장 대의원 선거에 나가 5년마다 계속 당선되어 38년간을 분회장으로 지냈다. 김 할아버지가 워낙 성실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운이 좋았다는 기분 좋은 경험도 있다. 집이 없어 아내를 강진읍의 여인숙에 두고 우체국에 다니던 때, 집을 사기 위해 알아보던 중 영랑생가 부근에 405평 되는 초가집을 사게 되었다. 한 평에 400환을 주고 샀다. 그런데 집 등기만 있고 땅이 없었는데, 복덕방에서 집을 사달라고 하고 계산해보니, 땅이 공것으로 들어온 거였다. 결국 건물 값만으로 땅까지 등기가 된 운 좋은 일이었다. 그 집에서 6남매를 키워냈고, 큰 아들은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모두 잘 자라주었다. 또 직장에서도 큰 운이 따라주었다. 운이라는 것도 물론 거저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평소에 어떻게 살아왔느냐와 직결되는 것이듯, 김 할아버지의 운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 우체국장도 5급이었는데, 김 할아버지가 갑자기 3급으로 승급을 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화다. 갑자기 3급으로 승진된 김 할아버지를 부른 강진우체국장은 너무 놀라워서 물었다.

분회장님, 청장님을 어찌 알으시오?”

왜요?”

“3급으로 승진시켜 내려보내왔어요.”

본인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분명 자신이 우체국장보다도 높은 3급이 되어있었다. 군수도 3급이니, 보통 높은 급수가 아니었고, 모두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 승진에 대한 사유는 하늘의 별도 딸 양반이라고 주변사람들이 칭할만한 이유가 분명히 담겨 있다.

그때 부산청장이었던 김00청장이 광주청장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강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기에, 그 분이 어떤 음식을 좋아한가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손가락 다섯 개만한 크기의 갈치를 좋아한다고 알게 되었어요. 그 갈치를 구하기 위해 부산자갈치시장을 다 돌아봐도 구하기 힘듭디다. 힘들게 그 갈치를 구해가고 강진읍 흥진식당에 마련된 식탁에 놓았더니, 그 분이 식당 주인한테 그걸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는갑디다. 그렇게 내가 구했다는 것을 청장이 알게 되었는데, 나중 그 분이 강원청장으로 가면서 나를 3급으로 승진시켜놓고 간 거였어요

우체국장이 5급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우체국장이 김 할아버지를 불러서 청장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물었던 것인데, 김 할아버지가 한 일은 식당에다 그 분이 좋아하는 갈치를 구해다 준 것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흔하지 않던 승진인사로 인해 각 군에서 난리가 났다.

강진우체국에 3급자리가 나왔다고 소문이 나부렀어요. 나이도 어린 내가 3급이 되었으니 더 그렇지요.”

매사 주어진 일에 세심하고 성실하게 임해온 김 할아버지의 태도를 윗사람이 알아준 행운이었다. 그 행운은 평소에 쌓아온 공덕이라고 해야 할까. 불교에서 말하는 장차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해 쌓는 선행을 일상에서 실천해오니 얻어진 것으로, 네 분의 대통령에게 받은 상은 바로 김 할아버지가 살아온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력서와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봉사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내가 연금을 많이 타고 있으니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해요.”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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