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48회)
"시어머니가 담배를 마당에 던져 불면서 그것도 못팔고 왔냐고 호통 치재"
군동면 파산리 신리마을
이종순(82세)할머니
“그때는 시계도 없응께 별보고 나갔재.”
산골마을이어서 특별한 일이 없는 빈촌이었다. 먹고살만한 몇 집 빼고는 모두들 나무하러가기가 바빴다. 유일하게 돈이 되는 것은 산에 있는 나무뿐이었기 때문이다. 논도 없고 밭도 없는 사람들은 논밭이 있는 사람의 집에 가서 한 해 동안 일꾼이 되어 농사일을 해주고 나서 새경을 받아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별다른 재주도 능력도 없지만 일 자체가 없는 어려운 시절인 것이다. 남자들도 할일이 없으니 함께 나무하러 가는 일이 고작이었다.
이할머니는 17살 오산마을에서 이웃인 신리마을 24살 총각에게 시집왔다. 친정도 가난했지만 시댁도 마찬가지였다. 시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들만 둘이었다는 시댁은 큰 아들이 징용에 끌려가 죽었기에 홀시어머니에 남편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산에 나무하러 가는 것이 일이재. 눈이 무릎까지 찬디 나무를 머리다 이고 올라먼 힘들재. 그러다가 바람에 궁굴려 불면 암것도 없어.”
캄캄한 새벽 하얗게 내린 눈을 빛 삼아 산길을 오른다. 무릎까지 찬 눈을 푹푹 밟으며 나뭇가지 하나라도 돈이 된다 생각하며 정성껏 주어 담는다. 손이 시린지도 모르고 치마 위에 부리나케 주어 담아 한 짐씩 꾸려 머리에 이고 오는 것이다.
“워따 한 짐을 이고 가서 팔문 150원, 200원 그려.”
힘들게 이고 간 나무가 빨리 팔리기만 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게 팔리지 않는다. 동네 아낙들과 함께 나무를 팔러갔지만 혼자만 팔리지 않는 날도 있다. 그걸 다시 이고동네에 가면 동네 창피하고 시어머니의 구박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디든 맡겨 놓고 돌아가기도 일쑤였다.
“눈밭에 나무를 팔라고 동동거리고 있응께 경찰이 그럽디다. 그렇게 묵고 살 것이 없어서 그러고 있소.”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나뭇짐을 갖고 있자니 빨리 팔고 싶은 생각만 든다. 그러다가 어떤 임자가 나타나면 어떻게든 팔고 싶어진다.
“어떤 사람이 싸게 묵을라고 깎고 깎고 허더니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나섰재. 팔아불라는 마음에 나무를 이고 계속 따라갔재. 근디 꼴짝 꼴짝에로만 들어가더랑게. 자꾸만 염병허고 들어가 그놈이, 그러더니 그놈이 외상으로 내려놓고 가라는 것여.”
결국에는 그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떼었다는 기가 막히고도 슬픈 사연이다.
“아, 다음에 외상값을 받을라고 그 집을 찾다 찾다 못찾고 말아부렀재.”
그런가하면 마음씨 좋은 사람도 가끔 있다. 나무를 이고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무가 팔리면 그 집에 나무를 모두 쟁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말 한마디 좋게 해주는 사람 또는 죽 사먹고 가라고 웃돈을 얹어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시안에 나무하러가먼 배가고파서 땡감을 따서 씹어 묵어, 그러면 빈속에다 먹은께 침이 질질나고 속이 씨려오재.”
그러나 아무 곳에나 가서 나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인에게 발각되면 모두 뺏기고 망신일 뿐 아니라 나무 또한 놓고 도망쳐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두들 나무를 하러 다니기 때문에 주변 일대에는 산이 헐벗어 나무도 없다. 점점 먼 산으로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게 되는 것이다.
“화방이(화방산) 뒤에까지 가, 새내끼하고 망태하고 갈쿠하고 짊어지고 가재. 거기까지만 가간디. 저그 신기 메주마을까지 가서 나무혀서 이고오재.”
새벽부터 나가 해온 나무를 집에 와서는 잘 팔릴 수 있게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무는 나무대로 검불이 없게 깨끗이 묶어야 한다. 검불이 많으면 빨리 안 팔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도 쌀밥주먼 잘 안묵을라고 해.”
개도 쳐다보지 않을 죽 한 그릇 못 사먹고 안 팔린 나무를 땅바닥에 그냥 놔두고 와야 하는 때도 있다.
“그땍에는 그냥 놔둬도 다음날까지 누가 가져가는 사람 없고 가만있어. 그려도 가끔 동냥치들이 뺏어서 불질러불고헌디, 다시 이고 오문 넘부끄러워서 못들어와. 시어머니가 담배를 마당에다 던져 불면서 그것도 못 팔고 왔냐고 호통치재.”
이할머니의 3남2녀를 두었고 술을 많이 좋아했던 할아버지는 69세에 돌아가셨다. 가난해서 잘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자신 때문에 자식들이 돈이 들어가니 걱정이라며 한숨짓는다.
“생전 아무 증상 없었는디 80이 된 게 대변을 잘 못 놓고 자꾸 신경 쓰이고 그래서 병원에 갔재.”
지금은 항암치료로 한 달에 두 번씩 화순병원에 간다는 이할머니, 아무거나 잘 먹고 별로 아픈데도 없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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