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잘못된 법 집행을 비판하다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는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경사요의>는 살인사건을 처리하는 기본 원칙을 언급한 원론이다. 둘째 <비상준초>와 <의율차례>는 다산이 중국의 판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그리고 셋째 <상형추의>는 다산이 조선 후기의 판례들을 재검토한 부분이며, 마지마긍로 <전발무사>는 다산이 직접 조사한 살인 사건에 대한 평론이다.
다산은 <흠흠신서> 전편을 총해 정치와 형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지만, 특히 <의율차례>에 수록되어 있는 수백 편의 중국 판례를 비판저긍로 고찰함으로써 명말청초 중국에서 이루어진 법 집행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다산이 지적한 중국의 법 관행상 가장 큰 문제점은 ‘엄한 형벌’을 남발한 것이었다.
다산은 중국이 법률을 너무 글자 그대로 적용한 나머지, 간음과 부모 살해와 같은 강력사건이 조선보다 10배나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선은 살인사건에 대한 처벌기준이 중국만큼 엄하지는 않지만 살인을 함부로 하지 않는 풍속으로 흉악하고 사나운 범죄가 중국에 비헤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았다. 조선의 범죄는 단지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서 다치게 하는 정도지만, 중국에는 흉악범이 많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다산은 굳이 중국처럼 법을 엄하게 적용하지 않아도 백성들의 악행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산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면에는 엄격한 형벌보다 관대함과 도덕적 교화가 질서유지의 근본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엄한 형벌만을 남발한 중국의 판례들
다산은 고의가 아닌 과실범이라면 당연히 감형하거나 용서해야 한다고 보았다. 법이란 마땅히 ‘마음’을 처벌하는 것이므로, 고의가 아닌 과실처럼 범행의 의도가 없는 경우에는 용서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다산이 참조한 판례들은 과실과 고의를 구별하지 않은 채 엄한 형벌만을 일삼고 있었다.
절동 지방의 경우, 장 씨의 부인이 아들 주육보를 데리고 사기전이라는 사람에게 밀린 방값을 그런데 사기전이 기르던 개가 사납게 짖으며 물려고 하자 물릴까 걱정을 한 나머지 사기전이 정 씨를 밀쳤는데 그만 장 씨가 넘어지면서 뒤에 있던 자기 아들 주육보를 깔아 죽게 했다.
당시 절동의 지방관은 ‘사기전이 사람과 다투다가 타인의 아들을 실수로 죽였다고 보고했다. 어느 정도의 과오를 인정한 셈이었다. 하지만 사기전이 장 씨와 싸우다가 실수로 주육보를 죽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청나라 형부는 이 사건을 실수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싸우다가 상대방을 죽인 투살률을 적용해 교수형을 내린 것이다. 다산은 투살률을 적용할 사건이 아닌데도 청나라 형부가 사기전을 교수형에 처한 것은 법률을 잘못 적용한 것이요, 지나치게 엄한 형벌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남에서 일어난 사건도 있다. 집 안의 우물을 고치려고 아버지 서국위가 우물 안으로 들어가고 아들 서장귀는 밖에서 두레박을 퍼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바닥에서 진흙을 긁어낸 후 이를 두레박에 담으면 바깥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아들 서장귀가 잡고 있던 두레박 끈이 풀리면서 그만 두레박의 진흙이 우물 아래에 있던 아버지에게 떨어졌고, 이로 인해 성처를 입은 아버지 서국위가 앓다가 숨진 것이다.
그렇다면 청나라 향부는 아버지를 죽게 한 아들 서장귀응 어떻게 처벌했을까? 당시 청나라 형부는 서장귀가 실수로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서장귀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판결했다. 다산은 이것 역시 너무 엄한 벌이라고 비판했다.
“사건을 살펴보건대 도리상으로는 살려주기 어렵지만 왕법에 따르면 엄연히 사면해야 한다. 순 임금의 형법도 반드시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다산은 아버지를 죽게 한 서장귀를 윤리적 차원에서 본다면 살려줄 수 없겠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므로 법적으로는 과실로 인정해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청나라 형부는 과실과 고의를 구분하지 않은 채 서장귀를 교수형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에 다산은 법 적용의 오류와 더불어 엄한 형벌로 일관한 청나라의 법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나라 형부가 실수를 엄하게 처벌한 경우가 또 있다. 북성에 사는 이흥고는 자신의 어머니가 영고화라는 자와 간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루는 이흥고가 집 안에 몰래 들어온 양고화를 도둑으로 생각해 붙들었는데, 놀란 양고화가 미는 바람에 이흥고가 넘어지면서 뒤에 있던 이흥고의 어머니가 깔려 죽어 버렸다. 당시 양고화는 타인과 다투다가 사람을 죽게 했다 하여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에 대한 중국 형부의 판결을 다산은 혹독하게 지적했다.
“양고화에게 두 가지 죄가 있으니 하나는 과부와 화간한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잡히지 않으려고 힘을 쓴 일이다. 하지만 이를 살인 행위로 보고 교수형에 처한 것은 잘못이다.”
다산은 양고화가 간통 현장에서 잡히지 않으려고 사람을 밀치기는 했지만,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로 했던 행위는 아니므로 교수형은 법을 과도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북성에서 일어난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주국이 모임에 나가려고 아내 왕 씨에게 버선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자 왕 씨는 시간이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주국은 왕 씨의 게으름을 비난했고 왕 씨는 참지 못하고 칼을 휘두르며 대들었다. 화가 난 주국이 왕 씨의 칼을 빼앗아 오른쪽 어깨와 머리 등을 찌르자 왕 씨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이때 주국이 왕 씨를 향해 칼을 던졌고 마침 아들 부부의 싸움을 말리려고 방에서 나오던 주국의 계모가 칼에 맞아 죽었다.
이 사건에 대해 청나라 형부는 주국에게 참형을 언도했다. 주국이 어머니를 죽이려고 칼을 던진 게 아니었지만, 부부가 다투다가 어머니를 상해 치사케 했다고 판단해 책임을 엄중히 물은 것이다. 당시 일주 관리들은 참형이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했지만 주국은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다산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의 형벌이 지나치다”라고 비판했다. 설사 부모를 죽였다고 해도 고의가 아닌 과실이었으므로 감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고의와 고실 등을 구별하지 않고, 즉 범행의 의도 유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사형으로 일관하는 청나라의 법적용을 지나친 처벌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법은 ‘그 마음’을 처벌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다산은 명말청초에 청나라 형부가 엄한 형벌을 내일 뿐, 범행 의도의 유무를 따져 벌하고 용서하는 ‘법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다산은 이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비판했다.
어떤 유모의 과실 치사 사건에 대한 청나라 형부의 판결이다. 서 씨 집안의 유모였던 허 씨가 젖을 물리던 중 잘못하여 어린아이를 눌러 죽게 했다. 형부에서 유모 허 씨를 교수형에 처하는 문제로 논의하던 중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젖먹이 아이 외에 대를 이를 아이가 있고 고의로 눌러 죽인 것이 어니라면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아이가 외아들이고 다른 아이가 없다면 이는 어리석은 유모가 조심스레 양육하지 않아 아이를 죽게 한 것으로, 원통함을 품고 아이를 고의로 죽여 집안의 대를 끊어버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반드시 이를 구별하여 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당시 청나라 형부는 유모 허 씨가 아이를 실수로 죽였는지 고의로 죽였는지를 논의하는 대신, 서 씨 집안에 대를 이을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따져 살인 사건을 판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대를 이을 자식이 있다면 아이를 어떤 식으로 죽였어도 용서를 해 주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면 과실로 아이를 죽였어도 용서할 수 없단 말인가.
다산은 “고의인지 과실인지 논의할 뿐이지 독자인지 자식이 많은지를 왜 묻는가? 이는 잘못된 판결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건에서는 범행의도가 있었는지의 여부만 확인하면 될 뿐, 자식이 많고 적음을 관련지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과실이 분명한데도 도덕 감정을 내세워 잘못 판결한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본다. 강서성의 백성 정복리가 창고 안에서 화세모와 정을 통하는데, 때마침 정봉선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놀란 정복리가 일어나다가 오른손으로 화세모의 가슴을 눌렀고, 가슴을 눌리게 된 화세모는 그만 다음 날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청나라 형부는 정복리를 어떻게 처벌했을까? 청나라 형부는 과실을 주장한 강서 지방관의 논의를 반박하고 화간을 희롱으로 판단하여 희살률(장난하다가 사람을 죽였을 때 적용하는 법)을 적용해 정복리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판결했다. 나중에 청나라 형부의 희살률 적용이 옳은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비록 정복리가 싸운 죄는 없지만 화세모의 가슴을 눌러 다치게 했다면 구타사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청나라 형부는 정복리를 희살이 아닌 투살로 인정해 교수형에 처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간통하다가 실수로 화세모의 가슴을 눌러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복리에게, 과실살보다 무거운 희살률이나 투살률을 적용해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에 다산은 청나라 형부의 잘못된 판결을 비판했다.
“화간을 한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화세모의 가슴이 눌린 일은 과실이 분명한데도 형부에서 이를 과실이 아니라고 논박했으니 잘못이다.”
다산은 화간을 징벌하려는 의지 때문에 정을 통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 형부의 결정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아무리 화간을 엄벌하고 싶어도 정을 통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는 법조문이 없다면 절대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광동에서 일어난 사건은 정반대의 경우였다. 상두의 남편은 이사란 댁의 가노였다. 상두의 간통남인 담승리는 이사란의 재물을 노리고 상두에게 부탁하여 독약이 든 경단을 밥에 넣도록 했다. 상두는 밥 위에 경단을 올려놓았고 이를 먹은 이사란의 가족들은 중독되어 정신이 혼미해졌다. 급기야 이사란의 어머니 왕 씨가 죽고 말았다. 당시 상두는 담승리가 준 경단에 독이 들어 있는 줄 몰랐다고 진술해 과실을 인정받았다.
다산은 이 사건을 과실로 판결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잘못을 지적했다.
“상두가 경단을 밥 위에 올려둔 뒤 자신은 밥을 먹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 사실을 알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과실로 인정한다면 옳겠는가?”
상두가 밥을 먹지 않은 것은 경단에 독이 든 줄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고, 청나라 형부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과실로 처리했으니 명백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과실을 엄한 형벌로 다스리는 것도 문제지만, 과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과실이 분명한데도 과실로 감형한 가례들을 인용해 명말청초의 법 해석을 비판했다. 나아가 ‘법은 그 마음을 처벌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의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죽은 이가 몇 명인지 독자인지 아닌지 등 과실과 전혀 무관한 사항을 고려한 청나라 형부의 실수도 빠뜨리지 않고 지적했다.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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