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엘비라 마디간' -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웃음과 슬픔의 이중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아침을 여는 소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자세히 귀 기울이면 숲속이나 들녘에서 오는 소리는 고요 속에도 활기찬 생동감이 있다. 어딘가 모르게 시원하고 평화로운 생동감이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소리는 귀 기울이지 못하거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바라보아도 눈을 뜨고 바라보아도 가슴으로 스미는 그 소리는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우는 마력이 있다.
그 선율 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이 아침을 새롭게 한다.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하나의 느낌을 나에게 안겨준다. 순간 떠오른 영화 한 장면이 생각을 잡고 있다.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이다. 사랑의 아픔이 이 아침을 잡고 흔들고 있다. 아침을 여는 고요 속에서 머물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와서 이 영화에 머물러 있을 줄은 나는 몰랐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바라볼 줄은 몰랐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또 다른 마음으로 자연은 나를 그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일까?
고요 속에서 들리는 음악이 귀를 맴돌고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바라보는 장면이 눈앞에 스친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마리가 나풀나풀 날아온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간다. 그녀가 나비를 손에 잡으려는 순간 화면은 멈추고 만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총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아픈 사랑의 영혼이 가슴을 흔들고 있다.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 간다.참으로 지독한 낭만주의 였다. 이 영화는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영화 이야기다. <엘비라 마디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1967년 제작된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1972년 개봉 되었던 영화이다. 간략한 내용은 귀족 출신의 스웨덴 육군 장교 식스틴과 덴마크의 서커스단 줄타기 소녀 엘비라는 수년간 몰래 편지를 나누며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무상함에 빠진 식스틴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린 채 탈영을 하고, 엘비라도는 부모와 서커스 그리고 명성을 버리고 식스틴과 만나서 함께 도주를 하고 만다. 영화는 바로 이들의 한 달간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오염된 사회를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두 사람은 감추고 애타던 사랑을 그 자연의 아름다운 속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마음에 그리움을 아름답게 키워 갔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 차이는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랑을 신분의 사회적 제도때문에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는 한 많은 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고립된 그들 앞에는 차츰 경제적인 어려움도 닥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사회의 현상 속에서 아픔만 커갔다. 결국 두 사람은 정열적이고 행복한 사랑을 간직한 채
영원한 사랑의 안식처를 찾아 가는 길을 선택을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나로 가는 것은 두 발의 총성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프고 슬픈 사랑이야기다. 끝내 그들은 아름답고 정열적이고 행복한 사랑을 마음속 가득 간직한 채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총소리 속으로 사라진다.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
67년에 상영된 스웨덴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한다. 탈영한 장교와 줄타기 곡예사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진 엘비라 마디간은 스웨덴의 보 비델베르그 감독이 만들어 전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던 영화다. 67년 깐느 영화제 여우주연상과(피아 데게르마르크) 뉴욕비평가협회 작품상 골든글로브상도 받고.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좀 더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 가보자.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음악은 내 귓가에서 속삭여 준다. 1990년대 거리를 지날 때 마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 나왔던 듀엣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다. 모짜르트의 21번 협주곡은 3악장으로 이루어졌지만 노래에서 말하는 것은 두 번째인 안단테 악장이다. 느린 속도에 아름다운 선율이 얹어져서 이내 사랑의 아련함으로 온다. 행복감으로 빠져 들게 되는 명곡이다.
1889년의 여름 어느 날, 스웨덴과 덴마크 그리고 북 독일을 포함한 북유럽의 신문들은 어느 탈영을 한 이야기로 기사가 났다. 그 탈영을 한 장교와 만 21세의 어린 정부의 동반 자살사건을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었다. 죽은 남자의 이름은 식스텐 스파레(Sixten Sparre. 1854-
1889). 그리고 여자이름은 헤드빅 옌셴(Hedvig Jensen. 1867-1889). 그들은 왜 젊은 나이에 동반 자살을 하게 되었을까? (아래 사진은 서커스단원 시절의 엘비라 마디간의 실물 사진)
스웨덴 귀족 출신으로서 기병대 장교인 식스텐 스파레(Sixten Sparre-Thommy Berggren, 1937, 스웨덴) 중위는 이미 결혼을 하여 두 자녀를 둔 가장이지만, 북 독일 태생의 서커스단원으로서 당시에 외줄타기로 유명한 헤드빅 옌셴(Hedvig Isabella Jensen)이 본명인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Pia Degelmark, 1949, 스웨덴)을 갑자기 사랑하게 되고, 군 동료들까지 말리던 이 애정은 결국 탈영을 하게 만든다. 그들은 교외의 한적한 호텔에서 도피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푸르른 신록에서 망중한을 즐기며 둘 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계속되는 신문 보도로 이들의 정체는 발각이 되고 결국 돈까지 다 떨어진 후 배가 고파 산딸기를 먹으면서도 함께하면 행복하다는 그들은 마침내 저 세상에서 영원히 함께 하자는 의미의 동반 자살을 감행 한다. (1889년7월20일). (위 사진은 스파레 중위의 당시 실물 사진)
실제로 19세기말에 유럽을 무척 시끄럽게 하였던 이 유명한 가십(Gossip)사건은 세속적으로 말한다면 처자식이 있으면서도 사고를 치고 탈영한 어느 젊은 백작의 불륜적인 애정행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하여 참으로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은 차분한 줄거리 전개와 함께 너무나 아름답게 찍은 영상(Cinematography)이다.(촬영 감독: Jorgen Persson) 그 첫 번째 이유다. 화면에 가득 찬 맑은 햇살과 푸르른 신록이 엘비라 역을 맡은 피아 데겔마르크(Pia Degelmark. 1949. 스웨덴)의 그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무척 상큼함을 전해준다. 또 다른 이유로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음악이 그 낭만을 더하게 하였던 것이다.
특히 나비를 잡으러 꽃발을 달리는 이 영화의 명장면과 평화로운 피크닉 장면 등, 영화 전반에 여러 번 반복이 되면서 흐르는 Piano Concerto No. 21 (피아노협주곡 21번, C장조의 2악장, K467 )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사랑의 테마(Love Theme)곡으로 모차르트가 오래전에 미리 준비해 놓은 주제곡 같은 느낌까지 준다.
1785년에 작곡이 되었으니 무려 2세기의 시차가 있지만 그래도 영상위에 펼쳐지는 잔잔한 현악기의 반주와 마치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그 아름다운 칸타빌레 흐름은 너무나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스웨덴의 작곡가, 울프 비욜린(Ulf Bjorlin. 1933-1993, 스웨덴)이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OS)가 오히려 귀에 잘 들려오지가 않을 정도이다. 세속적인 이야기를 아름다운 풍광 촬영과 또 아름다운 음악들로 이렇게 최고급의 포장을 한 것을 스웨덴도 이런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보 비데르베르그(Bo Wilderberg, 1930-1997, 스웨덴)의 훌륭한 연출솜씨야 말로 빠뜨릴 수 없는 가장 큰 성공요인인데 각본에서부터 편집까지 전부다 그가 직접 작업을 하였다니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아들인 요한 비데르베르그(Johan Wilderberg, 1974)는 현재 배우로서 활동을 하면서 2004년도 할리우드 작, ‘오션스 트웰브(Ocean's Twelve)’에도 출연한바가 있지만 어쨌든 무엇보다도 영상미를 최우선 순위로 하면서 유럽식으로 차분하게 연출을 한 비 데르베르그 감독의 탁월한 능력은 그 처절한 마지막 자살순간 까지도 인상적인 흰 나비와 정지 영상을 통하여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을 하였다. 그 정지화면위로 들려오는 총소리 아마 이 끝 장면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각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쉽게 접할 수가 없었던 스웨덴의 영화이지만 유럽과 미국에서의 흥행성공으로
뒤늦게 1970년대 초(1972년?)에 한국(서울=중앙극장)에서도 개봉을 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런 슬로푸드 스타일의 느리고 잔잔한 순정 영화는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가 않다. 이제는 세상의 흐름도 빨라져 영화도 정신없이 빠른 진행으로 만들어야만 흥행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속도와 스릴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는 환경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정신없이 빠르기만 한 것이 그렇게 좋은 것 일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숨은 진주 같이 여유가 넘치는 이 영화가 그래서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이야기 에는 이 영화 한편에만 출연을 했다고 알려졌던 스톡홀름 출신의 피아 데겔마르크(Pia Degelmark. 1949-)는 사실은 1976년도 까지 TV극을 포함 총 5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고 하며 이 영화로 1967년도 깐느영화제의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78년이 흐른 후 이들의 절망적 여정을 다룬 보 비더버그 감독의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1967)이 나왔다. 여기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의 느린 악장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처음부터 암운이 드리워져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도 순수한 사랑만으로 끝내 함께하는 두 사람의 슬픈 상황을 한없이 아름다운 음악이 역설적으로 정화시킨다. 이 멜로디가 천상의 멜로디로 여겨지는 것은 영화 덕분일 수도 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제19번부터 마지막 제27번까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게다가 제20번과 제23번은 제21번보다 더 자주 연주되고, 그 2악장은 발레나 영화에서 ‘엘비라 마디간’ 만큼이나 널리 인용된다.
영화 덕분에 ‘별칭’이 바뀐 사연이다.
<엘비라 마디간>은 1960년대에 제작된 영화 중 보기 드물게도 인상파적 영상미를 제법 연출해냈던 영화인데,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협주곡 21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악장으로 손꼽히는 2악장 안단테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덕분에 협주곡 21번의 ‘별칭’이 바뀌는 일까지 생긴다. 원래 이 협주곡의 별칭이었던 ‘군대’가 ‘엘비라 마디간’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물론 ‘군대’라는 별칭도 모차르트가 붙인 건 아니었다. 행진곡 풍으로 당당하게 시작하는 1악장 때문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얻은 닉네임이었다. 어쨌든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다음부터, 이 협주곡은 그냥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되었다. 음반 가게에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 하면, 협주곡 21번을 곧바로 꺼내줬을 정도이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본지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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