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50회)
성전면 도림리
황순임할머니(89)
“아따, 딸보다는 아들이 좋재 딸이 어찌케 효도를 한다요”
황순임할머니는 작천 구상마을에서 7살 위인 도림마을 총각에게 시집갔다. 18살이었던 황할머니는 혼인 후 1년 정도를 친정에서 살았다. 나중 듣기만 한 얘기라지만, 당시 시댁 살림은 큰아버지의 노름으로 망하다시피 하면서 가족모두가 일본 대판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황할머니는 여행권이 늦게 나오면서 시댁 삼촌 숙모 벌 되는 분이 대판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그가 전부 한국사람 천지여. 그때에는 각시라서 집안일만 한께 밖에 일은 몰라.”
대판에 온 한국 사람들은 비단 장수나 공장에 다니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황할머니는 그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았고 집안 대소가들이 많아서 한국과 별 다른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도그럴것이 태어난 동네에서 한번도 떠나보지 못하고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왔으니 어떤 세상을 알 것인가 싶기도 하다. 시집 식구들과 남편은 과자 뚜껑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공장은 꽤 잘되어서 여러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했기에 생활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전쟁 통에 대판에 있는 한국 사람들 집이 다 못살게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하늘도 땅도 시끌벅적해지더니 한국이 해방되었다는 말들이 사방에서 전해져왔다. 전쟁 폭죽소리는 더욱 요란해지고 대판에 있는 한국 사람들 집도 거의가 부서져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런 와중에 한국 사람들은 짐도 챙기지 못한 체 한국으로 오는 배를 타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했다.
“뒤죽박죽되아갖고 난리였재. 그때 나온 사람은 나오고, 안나온 사람은 안나오고 그런 시상이재.”
7살과 4살 된 두 딸이 있던 황할머니는 남편과 시댁식구를 따라 한국행 배를 탔다. 배는 몇날 며칠을 탔는지 모를 만큼 긴 시간동안 바다 위에 있었다. 다시 대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숟가락 하나 안 들고 빈 몸으로 나선 한국행 배에서 그동안 모았던 돈은 경비로 모두 없어졌다.
“배에서 살지 죽을지 모르고 견디었재. 근디 제주 사람들은 가다가 엎어 부렀다는 소문이 들려오더라고······그렇게 와서 집도 없응께 겨우 집하나 짓고 포도시 살었재.”
살던 둥지를 갑자기 떠나면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으며 손 시아제가 남았기에 맡겨놓다 시피하고 피난했던 길이었다. 나중 남편이 대판으로 돌아가 보았을 때는 손시아제가 쓰고 있는 살림살이를 달라고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남편은 다시 대판으로 들어간 뒤 13년 뒤에 나왔다.
“아들이 중학교 들어간게 남편이 오더만.”
딸 넷을 낳고 뱃속에 아이가 생기자마자 일본으로 떠난 남편은 13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다.
“거그 시동생이 병들어가고 일을 할 수 없은께 그 일을 봐주면서 살었는게벼.”
시부모가 성주(집짓는 일을 맡아서)일을 했고 남편이 부쳐온 돈으로 논도 사고 살림도 조금씩 늘려갔다. 시부모님이 살림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살았다는 황할머니는 시부모님이 참 좋았다고 회상했다. 딸을 넷 낳았지만 아들 가진 사람만 보면 늘 부러운 마음이었던 황할머니는 아들을 낳고도 아들이 13살 될 때까지 아비 없는 자식처럼 키워했다며, 남편이 돌아오니 저절로 힘이 나더라며 웃는다. 남편은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누가 아들에 셋이요. 넷이요. 하면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왔재. 그란게 아들 못 난 사람은 생전 원이 되겄다 싶재.”
아들이 하나 있다 해도 아들이 많은 집을 보면 늘 부럽게 보였다는 황할머니다. 이제 아들도 60이 넘었지만 아들이 ‘어디 아프요? 어쩌요?’하고 물어오는 것이 반갑단다.
“아따 딸보다는 아들이 좋재. 딸이 어찌게 효도를 한다요.”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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