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사람 사는 이야기> 세한대학교 경찰학부 문재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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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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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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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세한대학교 경찰학부 문재진 교수
다른 존재를 배려와 관용으로 인정한 소중한 삶을 나누는 사람

가을이 이제 점점 색상을 깊게 물들며 구르는 바람에 묻혀 흐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가을이라는 사실이다. 사계절이 다 그러하겠지만 가을은 유난히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리게 만든다. 흔들리는 감성에 젖은 마음은 그리운 이를 더욱 그립게 한다. 그 말은 계절마다 사람을 만지는 방식이 각각 다르고, 그 중에서도 가을은 사람의 가슴을 요란하게 만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 하나 신기한 것은 가을에 만난 가을을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참 모습을 만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가을이기 때문에 가을 속에 묻혀서 그러할 뿐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 가을 앞에, 아니 가을 안에 서 있다. 그리고 궁금하다, 가을이 가을로 느껴지는 이유가 가을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시인이 된 나는 언제나 가을을 바라보는 관찰자일 수밖에 없다. 가을에 느끼는 가슴앓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시인은 계속해서 가을 앞에 서 있다.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햇살 가락과 그 속에 뿌연 느낌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것이다. 그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그런 시인 앞에서 가을은 여전히 말을 아끼며 침묵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을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 외로움 속에서 능력이나 기술을 믿지 않고 주어진 임무에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 삶을 살고 있는 분이다. 남을 먼저 바라보아주는 사람이다.

살아생전에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항상 남에게 보시하고 덕을 베풀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분을 처음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간 속에서 따뜻한 가을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의 삶을 남과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아름다움 말이다. 그분은 어떤 상황도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의 중심으로 떨어져 곁에 존재한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더 삶이 풍요로운 사람이다. 남을 바라보아 준다는 것은 쉽지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인지 그분은 법보다 관습과 정통성을 더 먼저 생각하고 중시하는 분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정의감이라고 할까, 그분의 정의감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생각 할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한 삶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그분이 세한대학교 경찰학부 문재진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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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는 사회라고 하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파생되어 일어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과 관계이다. 그 관계는 사회라고 하는 연결 고리가 여러 갈래로 연결 되어있기 때문에 복잡하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 연결망(社會連結網) 또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라고 한다.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라는 것은 사회학에서 개인, 집단, 사회의 관계를 네트워크로 파악하는 개념이다. 즉 개인 또는 집단이 네트워크의 하나의 노드(node,마디,교점)이며, 사회연결망은 이 각 노드들 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tie)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 구조를 말한다. 모든 노드들은 네트워크 안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주체들이고, 타이(tie)는 각 노드들 간의 관계를 뜻한다. 이러한 복잡한 인과 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점에 포커스를 맞추어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쉽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관습과 정통성이다. 삶의 근간이 되는 많은 관습과 예법은 우리가 삶이라는 것을 누리고 있는 한 우리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민다. 또한 누군가가 죽으면 장례식을 치른다. 그 장례방법이나 절차가 어떤 과정을 거치든 생명의 존재성이 다 하고 나면 관습이나 예법에 따라 치른다. 이처럼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나 습관을 우리는 관습이로 한다.

또한 한 사회내에 그 권력기반을 받치고 있는 일반적 관념을 정통성이라 한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에서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는 한반도를 기반으로 정통성을 잇는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경우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권한이 부여된 권력자라는 점에서 그 권력 행사에 대한 정통성을 받치고 있다할 수 있다.
정통성이 없는 국가 또는 사회에서는 지도층이 무너지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조선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을 암살하고 내가 앞으로 새로운 조선의 이니 조선의 백성들은 나를 섬기라고 주장했다면 이는 무력에 의한 권력 행사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변 국가에서도 그 반란을 일으킨 조선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통성은 그만큼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이 깃발을 만들고, 소규모 군대와 조악한 행정체계를 만들었다고 해서 UN 등 국제기구에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이유가 이러한 정통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권력 지배를 승인하고 체제를 허용하게 하는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관념이나 근거를 우리는 정통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습과 정통성을 더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 일은 우리의 역사적 공동체의식이 담겨져 있는 일이다. 그러한 생각들 밑에는 남을 위해 배려하고 남이 모르는 덕행을 쌓는 일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의식에는 할 수 있다는 신념과 해내려는 용기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일들이다. 어떤 위치에 올라있으면서 다른 처지에 당해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일들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 흔하지 않는 일들을 보이지 않게 실천하는 사람이 문재진 교수다.

()을 베풀어야 복()을 받는다.

옛날 괴산지방에 유명한 서길보라는 지관이 살았는데 비룡상천(飛龍上天)형의 정승지지를 발견하고는 안동권씨 서족인 권수암(權遂庵)의 조상묘터로 잡아주었는데 묘를 쓰고 나서부터 발복하여 서족이면서도 벼슬길에 올라 판서를 거처 정승의 반열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정승의 반열에 오른 후에도 지관에게 공을 갚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관의 뒤를 봐주지도 않았다. 그런 점을 서운하게 생각한 지관의 농간으로 정승에서 물러난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원족과 서족간의 사이가 멀고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아 서족들은 출세를 하고도 본가로부터 멸시를 당하기 일 수였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람이 벼슬을 한 후에 본가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러 갔는데 원족들은 서족이 사당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내쫓은 후에 그 자리를 대패로 깎아버리는 수모를 당하고난 후 다시는 사당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서족이면서 벼슬길에 올라 정승에까지 출세하게 된 것은 서길보라는 지관이 비룡상천형의 정승지지를 정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초 지관 서길보가 서족에게 비룡상천형의 정승지지의 묘지터를 정해준 것은 보잘 것 없는 서족 출신이니 나중에 벼슬을 하게 되면 지관인 자기에게도 한자리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권수암이 지관 서길보가 정해준 비룡상천형의 정승지지 명당에 자기조상을 모신 후에 발복하여 우연한 기회에 서족이면서도 벼슬길에 오르게 되였다.

벼슬길에 오른 권수암은 승승 장구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 판서를 지내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정승이 되였다. 그런데 당초 서길보가 생각했던 것처럼 벼슬이 높아지면 지관인 자기에게도 벼슬 한자리를 마련해 줄줄 알았는데 몇 번을 부탁하였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더욱이나 정승자리에 올라 10년이 되도록 벼슬자리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찾아가도 예전처럼 친절히 대하는 것이 아니라 박대하기에 이르렀다. 서길보가 가만히 생각하니 괘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였다. 서족출신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명당을 잡아주어 정승에까지 올랐으면 그 공을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벼슬이 높아지니 지관인 자기는 만나주지도 않는 것이 몹시 서운하였다.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 지관은 농간을 부리기로 마음먹고 정승을 찾아가서 하는 말이 대감님 이제 그 산의 정기가 다 됐으니 묘지를  옮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승이 가만히 생가해 보니 보잘 것 없던 자기를 정승까지 할 수 있도록 유명한 지관이 하는 말이니 그럴듯하게 생각 되여 그럼 자네가 좋은 명당을 찾아봐주게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서길보는 옳타구나!” 생각하고 형체만 명당인 터를 잡아 주었다. 욕심 많은 정승은 서길보가 잡아준 형체만 명당인 장소에 비룡상천형에 있는 자기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말았다.

그러자 묘지를 이장하고 난 다음 바로 정승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였다. 그리고 서서히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자 기이하게 생각한 대감은 서길보를 불러 자네가 잡아준 명당으로 선대묘를 이장 하였는데 어찌하여 가세가 기우는 것인가?” 하고 물어 보았다

서길보는 시침을 뚝 떼고 대답하였다. “명당은 하늘이 숨겨둔 것으로 후손이 덕을 베풀어야 발복이 되는 것입니다.”

대감은 그때서야 속은 것을 알아채고 덕을 베풀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한번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가세는 얼마가지 않아 집안이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권수암과 서길보의 이야기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고 하더라도 후손들이 덕을 베풀지 않으면 그 복을 다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름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과보(果報)나 업을 자신이 받는다는 뜻으로, 스스로 저지른 결과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여기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자업자박(自業自縛)과 같은 뜻으로, 자신이 쌓은 업으로 자신을 묶는다는 말이다. 자기가 꼰 새끼로 자신을 묶어, 결국 자기 꾐에 자기가 빠지는 것을 뜻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도 이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그밖에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 자업자득에는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뜻도 담겨 있다.
업이란 말은 전생의 업 때문이라든지, 자업자득이란 의미 때문에 다분히 부정적이고 숙명적인 이미지를 주는 듯하지만, 본래 범어 카먼karman’의 번역이며 행위라는 뜻이다. 업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작용된다고 하는데 이 업으로부터 윤회 사상이 발달되었다. .악의 업을 지으면 그것에 의해 즐겁고, 고통스러운 과보가 생긴다. 이를 업인에 의해 업과가 생긴다고 한다. 업이 삼세에 걸쳐 실재하므로, 업이 현재에 있을 때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어떠한 미래의 결과가 될 것인가가 결정되고, 과거세에 지은 업의 결과가 현재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선행을 애써 쌓으셔야 한다.

위의 이야기처럼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의 길에서 선행을 쌓아야 하는 것을 알기에 덕()을 베풀며 선행을 쌓은 사람이 있다. 옳고 그름에 반하여 소신껏 행하는 사람을 이 가을에 만나서 나에게 곱고 아름다운 가을빛을 심어주었다. 그 아름다운 분이 문재진 교수이다. 그의 이야기로 떠나 가보자.

문재진 님은 누구?

먼저 나누어 베풀고 배려와 관용을 삶에 디자인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다른 존재存在를 배려配慮와 관용寬容으로 인정한 소중한 삶을 나누는 사람이다.

문재진 교수는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를 자원自願해서 입대를 하였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자기 변화를 가져왔다. 결단력과 긍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사고를 그곳에서 배웠다. 되지 않은 것도 되게 하라는 의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군복무를 마치고 그 때의 여러 환경조건 때문에 취업을 결심했다. 1962년 경찰시험에 합격하여 61일 해남경찰서 화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근무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 어려운 점이 발생을 했다. 인정이 너무 많아서 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사소한 일임에도 어쩔 수 없이 법을 집행해야하는 일들은 그에게는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관습으로 본다면 쉬게 해결할 수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이하기 어려운 직업에 취직을 하고서 그 여린 착한마음에 갈등을 했으니 그 본성이 얼마나 착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는가 싶다. 어린 아이로부터 성장 할 때까지 매일 들었던 어머니의 말씀이 큰 영향을 마쳤는지도 모른다. 항상 덕을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자라서인지도 모른다. 그는 6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인사차 해남 경찰서에 들렸다. 그 때 과장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다시 해남경찰서 형사과에 근무를 하게 된다. 그때부터 일이 잘 풀리고 승승장구해서 31살에 해남경찰서 정보과장이 된다. 37살에는 시험에 합격하여 경감이 된다.

문재진 교수는 강진과 인연이 깊다. 그것도 3번이나 연결 되어지는 고리를 가지고 있다. 처음은 41살에 강진경찰서 정보과장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해였다. 그 다음 인연은 목포경찰서장 시절에 월남부락 사람들과 만남이다. 그때 수산과장 하던 이종옥 씨와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자매결연 관개로 목포경찰서를 찾게 되었는데 기억으로는 선물을 사전에 준비했다 주었다고 한다. 그때 그분들이 퇴임 후에 우리 마을에 이사와 살면서 아름다운 경관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관계도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다음 인연인 세 번째는 퇴임 후 세한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를 하게 되면서 2000년에 강진 월남에 자리를 잡고 거주하게 되었다.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하는 조치인 계엄포고 10(1724시에 발효: 각 대학 휴교령 포함)를 밤 940분에 의결하고 밤 1140분에 발표하면서 계엄령하에 있을 때 일이다. 그 때는 문재진 씨가 서광주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있었다. 경찰서는 위치상으로 전남대학교와 그리 멀지 않는 구역이었다. 수배령이 떨어진 대학생들이 잡혀서 서광주경찰서로 오게 되면 항상 배려와 관용으로 그들을 대하고 위로하며 따뜻한 음식을 같이 앉아서 먹었다. 그들과 동등하게 함께하는 시간을 감사며 덕으로 베푸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들의 내의가 오래 대피하여 숨어서 돌아다니다보니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당시 문재진 정보과장은 그 따뜻한 배려를 발휘한다. 손수 나가서 사제 내의를 구입 그들에게 주어서 입히고 따뜻한 위로도 하였다. 그 때 인연이 되었던 일화 하나를 여기에 옮겨본다.

전남 시장 군수 협의회장인 최형식 담양군수가 집필한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2002520일 발행)라는 책 63~ 65쪽에 보고 싶은 얼굴, 문재진 님이라는 제목의 내용을 여기에 옮겨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참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만남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귀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어지면 금방 잊혀지는 사람이 있고, 잠깐 만났어도 오래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문재진 님은 잠깐 만났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나 말씨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재진 과장님과 나는 악연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히 원수를 살 일도 없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한 사람은 권력의 지시를 받고 반체제적인 사람들을 체포해야 되는 입장이고, 나는 현 체제에 반기를 든 입장이었다. 그러나 자금까지 나는 그에 대해 어떠한 언짢은 감정도 없다. 다만 고맙고 한번 만나 뵙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을 뿐이다.

문재진 님은 당시 서광주경찰서 정보과장이었다. 후에 해양경찰대 학장을 지내고 정년퇴임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사시는지 궁금하다. 한번 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많이 늙으셨을 것이다.

정보 계통의 베테랑으로 소문이 난 문재진 과장님은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랜 시간동안 속을 썩혀준 사람을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가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므로 나는 긴장감이 풀렸다. 그리고 그가 덧붙여 한 말에 나는 적잖이 위로를 받기까지 했다.

내가 이 계통에 있다 보니까 어느 정도 관상도 볼 줄 아는데, 최군은 장차 이름 석 자는 알리고 살겠네. 내가 자네 책임을 지겠네. 그리고 최군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야 힐 형편이니까 불구속 재판을 받도록 노력해 보겠네.”

그때는 전두환 정권도 국민 유화정책을 펴고 있는 때였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라서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는지도 모른다.

문제진 과장님은 설날이니까 떡국 한 그릇은 먹어야 한다면서 나에게 떡국을 주었다. 그리고 사제 내의도 한 벌 차입해 주었다. 과장이 그렇게 대해 주자 자연 부하들도 각별하게 대해 주었다. 나는 간단히 조서를 받고, 문제진 과장님이 장담했던 대로 나흘 만에 서광주유치장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0월의 선고를 받았다. 2년 동안 그야말로 가슴을 조이며 살았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고 나자 조금은 허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문제진 과장님을 뵙기 위해 서광주경찰서로 갔다.

젊은 시절 이런 경험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보탬이 될 걸세, 이건 역사적인 아픔이기도 하고 말일세. 용기를 내 잘 살게나.”

나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이번에는 잠수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새 출발을 위해 야무진 꿈을 갖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어떤 경우에 있을지라도 배려와 관용으로 덕을 베푸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음이 서로 맑고 고운 눈부심이 있어야 세상이 영롱한 아침 이슬이 되기 때문이다.

문재진 님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8개 서장 직을 지냈다. 순경으로 시작해서 고졸 출신이면서 지방에서 근무한 사람이 경무관을 지내는 일은 마치 별을 다는 원 스타 격이다. 그만큼 어려운 환경 조건에서도 성취를 이룩한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삶의 가치를 배려와 관용, 덕으로 베푸는 일을 개을리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인격 있는 자로 만들어가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너그럽고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착한 밑바탕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다. 그는 행복을 받을 조건이 충분한 사람이다. 남을 바라보아주는 마음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것이다.

광양경찰서장으로 있을 때도 손수 앞장서서 민원을 해결했다. 직원들은 반대를 했지만 죽을 각오로 맨 앞에 서서 시위대를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소위 대모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제일 앞에 서서 해결하려는 경찰서장인 문재진 이마를 때려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한다. 그런 과정도 있었지만 그 시위대 중 서장을 때려서 다치게 한 사람을 잡아 가두지도 않았고, 누구냐고 부하 직원들에게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때 주변에서 병원으로 찾아온 간부들도 저놈 미친놈이 아니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세월이 흐른 20년 뒤에 그 직원에게서 누가 때렸는지를 알게 된다. 덕으로 용서하며 행동으로 옳기는 자세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잘못 했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수 있었는데 용서라고 하는 관용과 배려는 어지간한 덕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문재진 씨는 청렴결백한 것과 여러 가지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김포공항 경비대장을 지내게 된다. 그러한 점은 업무를 할 때 남에게 배반되지 않는 삶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주어진 업무에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쉬는 날이 없었던 공무 수행이었다고 말한다. 김포공항 경비대장 시절에도 업무가 너무나 맞지 않아서 그만 두겠다고 하니 상부로부터 너 맘대로 들어오고 너 마음대로 나가는 자리가 아니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너무나 정직하고 청렴하여 법을 집행 하는데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인 광주민중항쟁때도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도청 앞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도 조용하게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해결하는데 큰 노력을 하였다.

그 후로 해양경찰대가 창설되면서 해양경찰대학장을 지내고 정년퇴임하게 된다. 경찰 36년 하면서 청령결백 함으로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 포장, 대통령 표창 등 190개의 표창을 수여 받았다.

생각해보면 역경과 고난을 격은 일상이었다. 경찰 퇴임을 하고 이제는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로 19년을 강단에 서있다.

문재진 씨는 내가 맡은 직무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 하였다. 배려와 관용으로 바라보고 실천 했다. 능력과 기술, 전문성, 배려가 있는 사람으로 인과 관계를 하는데 노력 했다고 한다. 다만 지금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열심히 업무에 충실하다보니 집에 들어가서 자식들에게, 집사람에게 잘 해주지 못한 점이 미안하다. 비상사태에 접하며 살다보니 명절에 집에 오는 날이나 산소를 가보지 못 한 점이 후회가 된다는 말속에 사랑과 후회가 가슴 잔잔히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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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한다. 베푸는 것은 평화와 행복의 밑거름이다. , 표정, 선물, 재물 그 어떤 것이든 좋은 마음으로 주는 건 다 보시다.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았는데 감사한 마음이 안 들 리 없다.

그렇게 상대방이 베푼 좋은 것에 대해 좋은 마음으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감사다. 그것은 또한 준 상대방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니, 나도 모르게 나 또한 상대방에게 다시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보시는 받는 상대방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나를 먼저 기쁘게 한다. 그것이 보시의 가장 큰 매력이자 본질이기도 하다. 나와 너의 관계가 항상 이 같은 보시와 감사의 관계로 이루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평화롭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문재진 씨의 열정적인 여정이 우리에게 배려와 관용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그것은 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나침반이 되어 가고 있다. 가을의 아름다운 빛 속에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마음이 오늘 만남에서 이루어진 행복이다. 아름 다운 여정은 오늘도 그에게서 밝게 빛나고 있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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