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아흔 살에 가까운 할머니 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결혼 안 한 아들과 함께 사신 탓으로 아들의 삼시세끼를 손수 장만하며 지내셨는데, 안방에서 부엌까지 가는 벽이 새까맣게 손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안방에서 부엌으로 갈 때 벽을 의지해서 오가고 했던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허리 하나 구부러지지 않았고 목소리조차 카랑카랑해서 건강한 모습이었고 농촌이 아닌 서울에서 사셨기 때문에 낙상을 하거나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농촌에서 나는 20여 년이 넘도록 살면서 노인들이 집에서나 마당에서 넘어져 병원으로 실려 가는 모습을 자주 보고 살고 있다.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진다거나 침대에서 떨어져 타박상을 입은 경우는 허다하지만, 토방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다가 잘못 발을 헛디딘 바람에 크게 다친 노인들도 많이 보아 왔다.
지금 농촌의 집들은, 특히 고령자들이 사는 집들을 볼 때 토방을 거쳐 마당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토방 아래 디딤돌을 놓을 만큼 높이가 있어 한바탕 몸이 휘청거릴 만큼 만만치 않는 집도 있다. 젊은 사람이야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고령자에겐 낙상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토방에서 마당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무런 손잡이가 없어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100세 시대 집에 문턱을 없애고 곳곳에 손잡이를 단다는 보도가 있어 신선한 충격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8%대로 초고령 사회인데, 후기 고령자로 불리는 75세 이상 인구도 곧 2000만 명을 앞두고 있다 한다.
고령자가 한 번 넘어지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이 때 병원비도 문제지만 가족이 달려들어 병수발을 해야 하므로 소위 병원 대란이 일어나게 된다. 가족 중에 병원생활을 하면 당사자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까지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고령자 집을 고쳐주는 주택 개·보수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장애자 집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일본에서는 화장실과 계단 등에 손잡이나 난간을 설치하거나, 휠체어 진입 슬로프 설치, 손잡이 미닫이문으로 교체 등을 해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휠체어 생활을 하거나 장애로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고령자에게는 싱크대와 세면대를 교체하는데 지원을 해주고 장애인용 욕조로 교체해 주는 데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주택의 개·보수 전문회사가 상업 중이고 24시간 대기하는 출동회사도 있다고 한다.
“고령자들이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머물지 않고 가능한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개인도 좋고 국가적으로도 부담이 적다”
도쿄건강장수센터 이사장의 말인데, 사실 우리나라 노인들도 요양원으로 가는 것은 꺼리고 있다.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는 것이다. 요양원으로 가는 순간,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고령자가 요양원으로 들어가면 자식들도 한 번 찾아가는 것을 두 번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령자가 집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경우 자식들은 안심한다.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사고가 생기면 주위사람에게 연락을 취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양원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
강진은 농촌으로 이뤄진 고을이다. 즉 농촌주택에서 사는 고령자가 절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장실이나 세면대로 가는 것까지 손잡이를 다 달아드리면 좋겠지만 일차적으로 집에서 마당으로 나갔을 때 토방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손잡이만큼은 하루 빨리 달아두는 일이 복지로 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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