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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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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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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전 강진문인협회지부장 차경희 씨
오직 사회적 삶을 나누며 같이 가는 사람

 ‘엄마’라는 직함과 함께 온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다시없을 삶의 존귀함을 일깨우며 뇌병변 1급 장애아를 사랑 하나로 키우는 사람

전 강진문인협회지부장 차경희 씨

우리는 살면서 이 세상을 환경이라는 조건 속에서 자기의 꿈과 희망을 가꾸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가슴 깊이 아파한다. 때로는 우리 삶 속에서 내 상상력과 경험에 묻히게 되어 스스로 절망에 빠지는 때도 많게 된다. 우리 삶의 목표가 우리 눈이 바라보는 것에 머물러 보이는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마다 참다운 삶깊은 저 내면속의 울려오는 평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진리는 항상 가까이 있고, 행복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멀리 찾아 떠나는 나그네 같은 것이다. 자기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 보고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또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보다 편안하고 자랑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그 환경 속에는 작은 사회의 울타리라는 가정이 있는데 그 가정을 이루어 부모와 형제자매가 함께 서로를 바라보아주며 살고 있다. 사랑이라는 온기가 가득한 자리의 사회라는 울 속에 살고 있다. 어려움도 있고 슬픔도 괴로움도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따뜻함이 가슴깊이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곳에 정과 혈연의 관계가 더욱 질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 연결 고리 속에서 한 사람을 잃게 되면 가슴 깊이 슬픔이 덩어리 체로 남아서 인간의 존귀함을 알아차리게 된다.

'인간은 한 번의 생애를 살아가기에 존귀한 삶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말했다. 우리의 영원한 삶은 이 짧은 한 평생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삶을 보다 존귀하게 살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차경희씨는 누구?

장애인 부모의 심정을 담고 사는 사람
말도 걷지도 못한 아이가 빨대로 이제는 빨아 먹을 수 있어 행복의 기적을 안고 사는 일반가정위탁모

말도 걷지도 못한 현우라는 어린아이를 보고 차경희 씨는 가슴 저린 생각이 심장을 울리며 하나의 축으로 삶을 흔들었다. 그는 끝내 사회적 삶을 나누며 같이 가는 삶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누가 바라보아 주라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엄마라는 직함과 함께 온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다시없을 경험을 봉사하는 것이었다. 봉사가 아니라 새로운 엄마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길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생각도 미처 하지도 못했다. 오직 한 생명의 빛을 놓아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를 정성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키우고 병원으로 집으로 함께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었다.

차경희 씨는 그 아이를 보고 마음으로 인연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하도 커서 그 아이의 새 생명 줄로 이어지기 위한 하나의 질긴 인연의 끈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다. 점 하나에 불과했던 찰나의 인연이 이어지며 하나의 새로운 길이 되어 예상치 못한 인생의 경로를 만들어 낸다. 차경희 씨의 삶이 그러하다.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일상의 아줌마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꽉 들어찬 예순의 나이었다. 이제 갓 7살이 된, 뇌병변장애아의 엄마가 되어 차경희 씨의 인생을 오롯이 내던지게 될 줄 말이다. 황혼을 바라보는 인생, 저물어가는 노을 같은 삶이라 생각했는데 엄마라는 직함과 함께 온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다시없을 경험을 지금 하고 있다.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아동시설에서 만난 갓난아이 이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던 도자기 인형 같은 아이가 사실은 장애아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며 느꼈다. 그 때 그는 가슴으로 밀려오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 우리는 영영 남이 될 수 없는 운명이구나. 다른 배를 빌려 태어났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속으로 혼자 말을 했다.

자기가 돌본 이 아이가 차경희 씨가 퇴직하고 없을 때는 다른 시설에 보내지면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 자명한 것이 보였다. 그 때를 생각하니 아이가 눈에 밟혀서 퇴직과 동시에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 완전한 입양을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자식처럼 돌보고 치료하기 위해 위탁입양을 결정한 것이다.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어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의 과정은 언제나 마음을 빈곤하게 만든다. 좀 더 안정된 치료의 환경을 만들고 부족함 없는 양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차경희 씨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차경희 씨는 퇴직 후, 구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군동면 중흥아파트 상가건물에 위치해 있는 자활 사무소를 알게 되었다. 찾아가 무슨 일을 하느냐 물었다.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등등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장애인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그 가정을 방문하여 도와주는 시스템이고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에 지원할 경우 일정 금액을 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했다.

차경희 씨는 귀가 번쩍 뜨였다. 사회복지법인 강진자비원에 근무하면서 뇌병변 1급 장애아를 집으로 데려와 위탁양육하고 있는 그에게는 일과 가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너무나 잘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80~90일 간의 도움은 관례가 없어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하는 경제적 여건이 된다. 그래서 어려움이 참 많다는 것이다. 항상 곁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가정위탁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차경희 씨의 경우도 해당이 되는지, 어떻게 하면 이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당시 사무국장이 업무편람인 듯 책을 펼쳐 보이며 나이는 만 6세부터 65세 이전까지 가능하니 차경희 씨도 신청하면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참여가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주었다. , 목포에 있는 전남장애우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교육에 참여하여 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차경희 씨는 더 정확한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강진읍사무소에도 찾아갔다. 담당직원에 차경희 씨의 현재 상황을 얘기를 한 후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에 참여가 가능한지 물었더니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었다. 당장 목포에 있는 전남장애우연구소에 전화를 해 교육과정과 교육시간을 알아보고 2017. 12.18일부터 22일 까지 교육과정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교육일정에 맞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까지 교육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교육을 주관하시는 관장님께도 내가 양육을 하고 있는 현우의 이야기를 하고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에 지원 해 수당을 수령할 수 있는지 물었다. 관장님께서도 가능하니 교육을 열심히 받으라고 격려해 주셨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교육이 끝난 후 장애우연구소 소장에게 서비스 활동 신청이 가능한지 재차 확인했고 소장이 보건복지부에 문의하여 해당 지자체에서 허락하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서류 정리를 하여 다시 자활을 찾았다. 서류 검토를 받고 강진읍사무소에 신청을 했다. 아이를 키우며 따로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보다 안정된 상황에서 육아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아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읍사무소 담당직원이 전화를 했다.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어렵게 꺼내는 얘기는 모두의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여러 차례 담당자들에게 확실한 답변을 듣고 확인을 거듭했었던 것과 달리 나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에 신청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지자체가 허락하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지원을 거부했다고 했다. 거부의 이유는 참으로 황당했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모자 관계는 신청이 불가하다. 그런데 위탁모인 차경희 시를 지칭하는 호칭에 어미 모가 들어가 있어 아들과 엄마의 관계가 형성되므로 신청 자격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답변이 참으로 황당하고 허탈했다. 위탁모에 어미모자가 포함되어 신청이 불가하다면 위탁인이라고 호칭을 다시 정하면 신청이 다시 가능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장난 농락도 아니고, 구체적 기준 없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모순과 허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위탁모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피는 안 섞였어도 심정적으로는 이미 엄마와 자식의 사이이기에 엄마가 아들을 키우는데 돈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이 속물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항의할 생각을 버렸을 것이다. 수당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차경희 씨가 장애인 보조 활동 서비스 수당을 바라보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털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가정의 상황과 양육의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어미 글자 하나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납득불가이었다. 실제 모자 관계가 아니기에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권리에서는 제외 대상이 되는데 반해, 호칭에 어미 모 글자 하나가 붙었다는 이유로 오히려 또 다른 곳에서는 역차별의 대상이 되고, 혜택에서 제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어디에서는 엄마로 인정받고 또 어디에서는 엄마가 되지 못하는 선택적 엄마의 처지에 억울하고 또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되돌아 생각하니, 선택적 엄마가 되어야 했던 순간은 또 있다. 아이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강진에서 광주로 재활치료를 다닐 때이다.

현우를 위탁받아 집에서 생활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현우의 치료를 위해 광주병원에 다녀오곤 한다. 화요일은 광주 상무지구 청연한방병원에서 작업, 언어, 재활 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금요일은 광주기독교 병원에서 작업, 언어,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치료효과는 크게 없지만 언젠가 치료가 될 것이라는 바람과 희망을 갖고 꾸준하게 빠지지 않고 다닌다. 현우와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재활치료에 다니는 부모들과의 재활치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매번 재활을 위해 병원을 찾을 때마다 그야말로 주차 전쟁을 겪는다. 마땅한 치료과정이 진행되는 큰 병원이 없어, 강진에서 광주까지 두 시간 힘들게 운전해 가는데 치료보다도 진짜 진이 빠지는 건 병원 주차장에서 주차할 공간을 찾아 뱅뱅 돌아다는 일들이다. 길면 삼사십 분이나 걸리는 주차 공간 찾기는 치료를 위해 달려온 먼 길 보다도 오히려 더 큰 피로감을 준다. 장애인 주차증이야 말로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 발급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장애아동을 태우고 있고 함께 살고 있으며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른 것이기 때문에 배려를 받을 권리가 충분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 증은 위탁모인 차경희 씨에게 발부되지 않는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장애인 주차공간이 비어 있어도 장애인주차증이 없어 차경희 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불편하고 애를 먹는다.

청연한방병원에서는 주차장을 옆에 두고 일반 차량들과 함께 기계 주차장에 넣어야 하는 관계로 휠체어를 내리고 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고 출고 시에도 순서가 밀리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날이면 주차 때문에 한 두 시간이 훌쩍이다. 주차지도요원에게 몇 차례 부탁도 했지만 병원 측에 이야기하라며 막무가내다. 병원접수처에서도 법규상 어쩔 수 없다며 난색이다. 운전자가 직접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보호자가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차량을 운행해 다닐 경우 장애인 주차 증을 발급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관련 법규나 행정적 재량이 전혀 없다. 행정기관이나 병원 측에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장애인 위탁가정은 치료의 목적으로 장애 당사자와 병원을 방문하는데도 오히려 두 번 세 번 더 불편을 감수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어떤 점은 어미 들어가서 해당이 안 되고, 여기서는 친 부모가 아니라서 않이 되고 마치 귀걸이 코걸이식 행정이 따로 없다. 기가 막히는 법치 국가다. 장애인들을 돕는 복지가 이정도로 허술하고 관심 밖이다.

우리와 같은 사례가 많지 않아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보다 적극적 검토를 통해 장애인 돌봄에 불편을 덜어주는 법 개정과 배려가 아쉽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생각을 하곤 한다. 장애를 치료 하는데 있어서 모든 부모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장애의 완치를 바랄 수 없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기적을 바라며 아주 작은 가능성에 기대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기에 더욱이 시간과의 싸움이다. 지치지 않는 꾸준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멀리 더 길게 내다보고 더 나아지는 내일을 희망하며 오늘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치이고 저기에서 제외되는 위탁가정은 오늘을 견디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를 양육하고 치료하며 가는 길이 멀고 험한 위탁 가정들에게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어느 곳에서는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배척되고, 또 어느 곳에서는 실질적 모자관계이기 때문에 제외당하는 불공평한 역차별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택적 엄마가 아닌 실질적 엄마로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것 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 선택적 엄마가 장애 아동을 키우며 고군분투하기란 너무나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과 관심 배려와 사랑이 너무도 간절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앞장서야 한다. 장애인들이 보다 편하고 행복한 세상을 위해 지척에서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위탁가정들에게도 삶의 위로와 의욕이 되어주는 편의와 지원이 더욱 폭넓게 제공되어야 한다.

차경희 씨는 오늘도 장애인 아이를 안고 병원을 치료차 간다. 그에게도 삶의 빛이 주신 은혜 속에서 모든 치료를 쉽게 받아가며 키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직 신앙인으로 살기에 어쩌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힘과 꿈이 있지 않는가 한다. 뇌병변 1급 장애아 현우는 20128개월 되던 때부터 지금 7살이 된 지금까지 차경희 씨가 돌보고 있다. 강진자비원에서 5, 위탁모로 집에 대려와 1년이 넘어간다. 내년에는 동초등학교에 입학까지 하기로 학교와 결정을 했다고 한다. 비록 걷지도, 말도 하지는 못하지만 학교에 갈 수 있게 곁에서 도울 수 있게 된 것이 기쁨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한 생명의 존귀함을 귀하게 여기는 차경희 씨는 아이가 주는 슬픔이 기쁨으로 다가와주는 것에 감사를 한다. 잘되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작은 성장과 변화에서 사소한 것에도 기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빨대로 우유나 음료를 빨아먹을 수 있는 아이를 보면서 눈가에 이슬이 가득하다. 희망이 가득한 자리가 별빛처럼 빛나길 간절히 비는 시간이다. 오늘도 그녀의 가슴에는 사랑으로 가득히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본지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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