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사람 사는 이야기> 작천면 구상리 강복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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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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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작천면 구상리 강복순 씨
가정의 모든 일들을 수용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마음농사 짓기로 화합만 생각한 사람

작천면 구상리 강복순

우리는 살면서 인간의 한없는 교만함이 덧없음을 알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택하며 사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일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바라보아 주며 서로가 안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가까운 사랑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듯이 든든한 사랑의 믿음이 마음 안에 자리하는 것이 진정한 자연의 사랑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서로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 일들 중의 하나가 농사를 짓는 일이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농부가 된다.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살던 간에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농부는 도시에도 있고 농촌에도 있다. 학교에도 병원에도 있다. 심지어 촛불광장이나 공장, 바닷바람 드센 배 위에도 농부는 있다. 기르는 사람이나 살리는 사람, 때로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오직 따뜻한 마음이 있고 정성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농사가 된다. 먹을 것을 기르는 일과 입을 것을 만드는 일부터 살 집을 만들고 가꾸는 일도 같은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이 모두가 농사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도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 농부는 자기를 낮추고 엎드려서 논농사와 밭농사가 잘되기를 빈다, 손끝에 오는 소리는 마음을 울리는 소리다. 울림의 속에는 아픔도 사랑도 숨겨져 있다. 그것은 상대의 삶이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일이다.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자녀들의 희망과 꿈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꿈으로 자기를 낮추며 가족을 위한 농부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이 있다. 자연을 닮으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가 작천면 구상리에 사는 강복순 씨다.

강복순 씨는 누구

자기를 찾아가는 일보다는 가족이 화목하고

효도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

강복순 씨는 세상사는 일은 자기의 마음과 노력에 따라서 달리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가정의 모든 일들이 발생했을 때 그 일들을 수용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화합만 생각한 사람이다. 자기를 찾아가는 일은 하지는 못해도, 자기를 위한 작은 쉬는 일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지는 않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서로 돕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아서 쉬는 것 하나도 그렇지를 못한 사람이다. 오직 믿음하나로 세상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하며 농사를 짓고 사는 일이 전부였다. 일을 하고 저녁이 시작 되어가는 어둑어둑한 시간에 들어와서도 항상 집에서 기다리시는 시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시부모님과 남편 동생들 까지도 저녁을 지어서 먹게 했다.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마는 부모님을 섬기고 받들어서 모시는 일들에서는 항상 다른 일들에 앞장서 하는 일이다. 그는 말없이 실천하는 효부다. 23살에 결혼하여 45년 동안을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일들이 다 행복할 수는 없다고는 쉽게 말하지만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해서는 다들 겉만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저렇게 들여다보면 그런 일들이 다 세상사는 일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살아가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모든 일들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이치는 다 같을 것이기에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생활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길이 달라질 수박에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삶이라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항상 부정적인 생각으로 불만과 남의 탓이라는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강복순 씨는 항상 긍정적이고 모든 일들을 이해하고 오직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데만 집중해서 살았다. 항상 내 마음대로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에 대한 불만은 한 번 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다.

시집을 와서 보니 장남이 아닌 장남 집이었다. 남편의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시아버지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인데 시아버지께서는 장남이 아니고 차남이었다. 단지 남편이 장남일 뿐이었다. 거기에다 남편의 동생들과 함께 살았다.

남편의 동생들은 나이차이가 많았다. 어떨 때는 강복순 씨 집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손님이 와서 남편의 여동생 보고 하는 말이 너희 아버지 어디 갔느냐고 물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오빠라고 말하게 되는 일도 많다. 남편의 형제는 4남매였다. 거기에다 내 자녀들까지 합하면 대가족이었다. 남편의 동생들을 모두 다 가르쳤다.

남편은 덤프트럭 운전을 하고 강복순 씨는 농사를 짓는 일에 전염을 했다. 시어머니가 젊었을 때는 농사짓는 일에서 밭일을 많이 도와 주셨다. 시할머니께서 93세까지 사시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큰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현재 시어머니께서도 93세로 모시고 살고 있다.

남편과 만나 좋아서 사귀고 결혼하였다. 와서 보니 시댁이 너무 없이 산데다가 가족은 많고 빛까지 안고 있어서 살기가 참 힘든 하루하루였다. 그런 환경에서 13여의 자녀를 키우며 살아야 했다. 돈을 모으면 시동생들 가르치고 결혼 뒷바라지를 했다. 농사라고 해야 약 800평정도였다.

강복순 씨는 논과 밭에서 엎드려 살았다. 그것이 일이고 삶이었다. 한번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생들이 돈을 달라면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물어보지도 않고 주라고 하는 대로 그 돈을 다 주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도 없는 살림에 빚을 내서 주느냐고 했다. 그 때 남편은 형제간의 정을 끊으려면 산에 가서 혼자 사라고 말했다. 생각하면 그 말도 맞는 말이라서 그 뒤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시동생들을 모두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가르쳤는데 시동생이 말썽을 부린 적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납부금을 내지도 않고 해서 학교에서 퇴학을 시킨다는 연락에 다시 빚을 내서 학교 담임께 사정을 해서 졸업을 하게 만들었다. 부모 역할을 형이 다 했던 것이다. 결혼을 해서도 아파트 분할금을 대주다가 어느 날 강복순 씨가 이제는 못하겠다고 시동생에게 말하고 납부를 하는 분할금 통장을 주었다고 한다.

그 시동생은 집에 와도 농사일 돕기는커녕 손 끝 하나 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남편과 시부모였다. 그런다고 강복순 씨도 탓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세상사는 일이 다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심지어 시집오기 전에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살았는데 이런저런 일들을 다한다고 친정 동내 사람들의 말이 강복순 씨의 귀에까지 들려오곤 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기에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쉬는 일도 나를 바라보고 나를 찾아가는 일보다는 가족의 화목과 행복이 먼저였다.

돌아보면 남편은 시동생들에게서 부모였다. 동생들 보증을 서주고 그 뒤의 빛 값은 일을 혼자서 해냈다. 그 와중에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다 대학을 졸업 시켰다. 지금은 남편도 그동안 했던 덤프트럭운전을 그만두고 농사일을 같이 하고 있다. 남편도 참 열심히 사는 남자다.

눈을 뜨면 논밭에서 엎드려 일만했다는 기억 밖에 없다. 그동안 모으고 절약하고 열심히 살았던 결과인지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많은 농토를 보유하게 되었고 하는 일도 더 많이 늘었다.

속 썩히던 시동생도 이제는 철이 들었는지 손에 무엇 하니 씩 들고 집에 오고, 그 시동생 동서도 집에 한 번씩 오며는 강복순 씨 일을 돕고 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라고 강복순 씨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멀리 떨어져서 살지만 형제간의 정이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지는 않으나 시골에 살면서 농사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것이다. 이른 아침에 나가서 저녁별을 보고 들어와 저녁을 준비해서 식사를 하며 살았던 일들이며, 고생하고 살았던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어쩌면 일에 묻혀서 살았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살아서 인지 평온한 마음이다.

산다는 것이 모두다 하나의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일속에는 희로애락이 들어 있어서 삶을 살아가는데 받아들여야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네 가지 감정. 곧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곧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을 위하는 마음이나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것들은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내가 비라면 그대의 지친 마음을 적셔주고 내가 햇살이라면 그대의 창에 보석 같은 빛을 줄텐데 나는 언제나 미약하여 사랑이라는 선물이라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복순 씨는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삶을 살아왔다.
세월 속에 장사는 없다고 했듯이 시어머니께서 나이가 많으셔서 약간은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안타까워지고 강복순 씨 자신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은 정정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봉양하며 사는 것이 즐겁다.

현대 사회가 비록 핵가족화 되고 가족이 붕괴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다하며 사는 일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신이다. 그런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분이 강복순 씨다.

그는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바라보아주는 아름다운 정으로 꽃피어 왔던 사람이다. 오직 정직하고 바른 노력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봄의 노란 민들레의 강인함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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