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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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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기자의 시선 4.16
모란이 피기까지는

지난 322일 이낙연 총리의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육 사회 문화 분야에 대한 마지막 대정부 질문 중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이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앙갚음이고, 탈원전 반대 관련 국민 서명이 40만 명이 넘었는데도 답변을 안 한다고 거론 정부가 두 얼굴이다자기들이 좋은 것만 답하고 나쁜 것은 답변 안 한다고 하여 장내에 앉은 한국당 의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술렁거릴 때 한 말이다.

버닝썬이 정부에 좋은 겁니까?”

이낙연 총리의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의 이 말이 나가자, 장내가 일시에 잠잠해졌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을 뚫고 나가는 촌철살인 같은 말은 재밌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으며, 그 말에는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내포한 현실적 무게를 담고 날아가서 정치이견이 얽히고설킨 답답한 국회에 통쾌하게 던진 신의 한 수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요지를 관통한 버닝썬이 좋은 겁니까라는 말은 소설의 제목으로 써도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총리는 언어를 오래 가꾸어진 자신의 내공으로 정곡을 찌르는 화법이지만 그 안에는 언어의 유희를 담고 있고 굉장히 해학적이어서 사람을 끌어당긴다. 부드러운 것 같지만 순간적으로 허를 찌르는 맹수의 카리스마도 담고 있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을 물리친 친 것처럼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언어의 마술 같은 것이랄까. 아니면, 영랑시인의 찬란한 슬픔의 봄같은 아픔의 외침으로도 들렸다.

커피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뜨거워서 다 못 마시고 가네요,”/ “이 집 커피는 왜 이렇게 맛있어요.”/ “다음에 또 올께요

미소를 짓게 하는 기분 좋은 말이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남길 때 맛이 없어서일 때도 있고, 입맛이 없어서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음식점 주인은 남기고 간 음식은 무조건 버려야 하니 손님이 맛있게 모두 먹어주고 가는 일이 기쁨일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남기고 간 음식에 대해 혹여 하게 될 주인의 생각까지 배려해서 한마디 고운 말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 또 그냥 가지 않고 좋은 말 한마디를 해주고 가는 사람도 그렇다. 아름다운 말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손님이 음식을 남겼더라도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에 주인은 미소가 지어지고 안도감을 갖기도 하고, 맛있다는 한마디에 요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은 무심코 한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음에 말조심할 것을 경고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듯 평소에 누군가 한 말은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때가 되면 뿌린 대로 그 싹을 틔운다는 사실이다. 농부도 씨앗을 뿌릴 때 그 씨앗 선정이 수확의 좋은 결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르고 더 비싼 금액을 주고 구한다. 그래서 말이나 행동은 농부의 씨앗과 같은 것이고, 그만큼 가볍지 않은 언행 습관은 인생길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탐스런 열매를 맺게도 한다.

가끔 유명 인사들이 예전 자신이 했던 말들로 인해서 뜻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예를 요즘 정부인사 청문회를 통해 보게 되었다. 통일부장관 임명자에 대해 대중 언론에서 나온 그의 말들이 사실이라면, 재산증식 방법이라든가 그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추천되었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과거에 했다는 말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천암함 폭침 5주기 해병대를 방문하자 군복 입고 쇼나 한다또는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씹다 버린 껌이다추미애 의원을 감염된 좀비라고 한 표현들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최고 학위를 가졌다는 사람이 골라서 한 언어라고 하기에는 인문학의 자질이 모자라 보이고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난으로 주고받는 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장관급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그렇게 조목조목 따지고 봤을 때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도 하지만, 보통 사람보다 존경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볍지 않은 평소 언행이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그 분이 그런 자신의 언어습관에 대해서 반성하고 리더의 위치에서 어떤 언어를 써야하는지 좀 더 신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아름다운 서정적 언어로 표현한 우리 강진의 낳은 최고의 시인 김영랑 시인의 시어를 보자. 인문학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언어 습관을 갖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랑 시인은 나라를 잃은 당시 아픔을 모란, 장독, 누이, 내마음, 돌담, 강물, 등 주변 현실에서 찾으며 답답한 마음을 풀어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버닝썬이 좋은 겁니까라고 표현한 이낙연 총리의 말은, 영랑시인이 당시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한 것처럼 현실적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버닝썬이라는 추악한 사건의 '슬픔''슬픔'으로 끝나는 '절망적 슬픔'이 아니라 미래의 꿈을 잉태한 슬픔, 영랑시인이 모란꽃의 아름다운 정서로 승화시킨 봄, 그런 봄을 우리가 만들어 보면 어떨까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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