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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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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옴천면 연동이장 손주현 씨
부지런히 힘써 일하며 정성스럽고 참된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

4차 산업 혁명으로 너와 나 할 것 없이 인공 지능열풍이 불고 있다. 농촌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순한 시설의 자동화를 넘어서 원격으로 농장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스마트 기술의 발전이 돋보인다.

아직은 크게 이루지지는 않지만 젊은 농부들은 스마트팜으로 혁신을 꿈꾸고들 있다. 언제 어디서든 PC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농장의 환경을 제어하고, 빅데이터를 수집해 내용을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그렇게 해 가도록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이루지지 않는다. 부단한 자기의 깨어있는 정신과 끊임없는 실천이 필요하다. 근면한 정신과 끊임없는 실천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 자기 노력 없이는 그 무엇을 하든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근면은 부지런히 일하며 힘쓰는 걸 말한다. 성실은 정성스럽고 참됨을 말한다. 부지런히 정성을 들여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근면 성실하게 업무에 종사한다고 말한다.

원래 '종사하다'라는 말 자체에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뜻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근면, 성실하게 업무에 종사하다는 열심이 일을 하다라는 뜻이다.

자고로 큰 성공은 모두 근면성실하게 작은 일을 완수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무리 높은 빌딩도 평지에 기초를 튼튼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수천 장에 달하는 비단도 한 자 한 자가 모여 만들어진다.

문왕의 업적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공은 하늘을 우러러 생각하길 밤낮없이 이어갔다. 다행이 깨달음을 얻으면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중산보는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큰일과 작은 일을 구분함 없이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제갈량은 재상으로서 곤장형에 처할 일까지 모두 직접 결정했다. 주자는 학자는 반드시 조금씩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정자로서 매일 글을 읽지 않고 큰 성공을 거둔 이는 없었다.  이렇듯 우리는 부지런함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노력한 끝에 모든 일들이 그 성실함에서 이루짐을 알고 있다.

농촌을 살리며 고향을 지키고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키워온 사람이 있다. 삶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력하면 그 노력과 성실이 자기를 보람되게 키워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거짓이 없고 바르게 노력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노력한 사람이다.

너무도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걱정이 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을 농촌에 투자를 했던 삶이다. 지금은 그의 노력이 그를 행복한 길로 안내하고 있다. 그가 바로 옴천면 연동이장 손주현 씨다.

손주현 씨는 누구?

손주현 씨는 부지런히 힘써 일하며 정성스럽고 참된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도리어 이익을 주었으면 주었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도리에 어긋나면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참지도 못해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하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생각만 주장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만 말하는 성격이다.

그는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농촌의 삶을 나름대로 연구하고 공부하며 살아간다. 논농사만 아니라 딸기도 재배를 한다.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이고 몸에 배어 있어 그를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손주현 씨는 이장을 2002년에 시작 했다. 도중에 이장을 쉬기도 하였다. 그것은 마을의 원칙 때문이다. 그동안 7년간 마을 이장을 맡아서 노력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농사짓기에 편리하도록 하천을 메꾸어 농로를 확장하고 포장을 하는 일을 추진해 완성을 했다. 마을 우산각이 낡고 헐어서 2016년에는 새롭게 개보수를 하는데 힘써 지붕과 마루를 고쳤다. 마을 어르신들의 휴게소가 되어 지금은 여름을 보내는 좋은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 모여 세상사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 공간이 되고 있다. 마음을 풀어서 소일거리와 정신건강에 좋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

마을 농로길(등영골) 진입로 600M가 불편해서 비포장도로를 포장을 하여 마을사람들이 농사짓기에 편리하도록 한 일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마을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노력했다. 윗마을 정자와 회관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일들을 했다. 올해인 2019년에는 골목안길을 아스콘으로 포장하는데 힘써 그 성과를 이루었다. 비오는 날이면 불편했던 길이 이제는 주민들이 오가는 데 편해졌다. 마을 아래쪽 정자를 보수한 뒤로 여름이면 인근 4개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놀이도 하고 노래하며 즐기고 있다.

손주현 씨는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시골 생활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직업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남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린 나이에 도시로 나갔다가 다시 24살의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지었다. 시간이 지나 36년 이상을 오직 농사일에만 전념하고 살았다. 어찌 보면 고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인 약 7년을 빼고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농부로서 삶을 이야기 하고 사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도시로 나간 친구들은 다들 퇴직을 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친구들은 이제 고향으로 내려와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농촌으로 내려와 할 수 있는 여건들이 되지를 못한다고 그는 판단하고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농사일에 투자해서 생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주현 씨는 17천 여 평의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거기에다 딸기를 900평을 하고 있다. 이정도면 도시 근로자의 급여보다는 평균적으로 보면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들 도시에서 정년을 하고 쉬고 있다. 이렇게 농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남이 부럽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농사를 한다고 해서 자기 취미 생활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시간을 활용하여 문화를 누리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는 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손주현 씨는 고향 연동에서 태어나 17살 되던 해인 76년에 집을 떠나 도시로 갔다. 부푼 꿈을 안고 취직을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처음 직장이 가구를 만드는 회사였다. 일을 했지만 적성에 잘 맞지가 않았다. 그런다고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도시로 나와서 이것하나 못하고 다시 내려간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도저히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3년 다시 고향을 찾아 내려왔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싶어서였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대를 이어 짓고 사는 것이 더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 되었다.

그는 고향에 내려와서 지금의 성과를 이루고 있다. 열심히 살았던 흔적의 결과로 지금의 환경을 갖게 된 것이다.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살다보니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 고향을 지키고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오늘날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이며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어가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도시로 나가는 일이 다 능사만은 아닌 것이다.

한 때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나 행동으로 웰빙 잔치라 해서 채소로 농가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논농사와 딸기로 전환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때로는 강사를 초빙하여 교육을 받으면서 농업 선진화에 노력하고 있다.

85년경을 생각하면 농사짓기가 힘들었다. 트랙터가 없을 때여서 경운기로 노타리를 쳤다. 이앙기를 가지고 보행으로 모를 심을 때라 다리 사이가 헐어서 아프고 상처투성인데다 농사일을 계속하니 상처가 잘 낫지를 않아서 힘들고 힘들었다. 논둑을 넘어가다가 경운기가 뒤집히기도 하는 위험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가정경제를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주현 씨는 옴천면 농업후계자 회장을 5년간 맡아서 활동을 했다. 농촌 발전과 회원 간의 유대관계 및 정보교환 등으로 발전을 모색했다. 옴천면 이장단 총무로, 옴천면 주민자치위원회 총무로, 옴천면 소방대 부회장 등으로 많은 활동과 봉사를 해왔다. 청자축제 미화작업 등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시골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산소를 대신해서 벌초를 해주고 있다. 아주 적은 비용만 받고 봉사목적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후배와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는 산소에 풀이 너무 많이 자라서 그것을 보고 안타가워 시작했던 일이다. 1년이면 약 100여 봉을 벌초를 해주고 있다. 내 조상의 묘를 관리한다는 마음으로 산소의 벌초를 하다 보니 벌서 10년이 되었다. 산속 깊은 곳에서 벌초를 하다보면 벌에 쏘이기도 하는 일들이 많다.

지금은 논에 물을 넣는 시기다. 523일 경부터 모 이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가 필요해서 눈뜰 시간이 없는 시기다. 노타리를 치고 이앙하는 기간은 약 15일 정도면 끝난다. 오늘도 그는 바쁜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농촌을 지키며 농부로 사는 그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으로 손주현 씨 이름을 대면 고개를 끄덕인다. 대를 이어서 농사를 짓고 사는 농업후계자로서 농가소득을 올리고 선진화 농업을 꿈꾸고 있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듬직한 그의 모습에서 밝고 정직한 생각이 나오는 것이 행복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벼가 아침 햇살 속에 피어오르듯이 그의 손끝에서 아름답고 따뜻한 희망을 느낀다. 영롱한 아침 풍경이 투명한 공기 속에서 찬란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오늘도 그는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향긋한 꽃을 피우고 있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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