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현숙기자의 시선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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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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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기자의 시선20190611
꽃들은 사이가 좋다

요즘 우리나라가 온통 막말의 최고 끝판 왕을 가리는 대회를 하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이제는 다음에 어떤 말이 또 나올 것인지 기다려진다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 막말은 막되어먹은 사람들이나 하는 말로서 보통 한 사람의 말투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얼마나 무식하고 예의 없는 사람인지 평가하게 되고 상대조차 하기 싫었었다. 처음 강진에 왔을 때 남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이쪽 사투리가 말이 빠르기도 하지만, 욕설이 섞인 듯한 사투리여서 듣기가 싫은 때가 많았었다. 그런데 요즘 막말은 그런 사투리와는 전혀 다른 완전 막말이란 점이다. 인신 공격성 막말을 마구 쓰는 그런 사람들이 늘 뉴스 첫 장식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이 막말을 잘해야 이기는 사람이고 잘 나가는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 늦은 밤 술 취한 10대 여성승객이 40대 택시기사에게 택시회사 밥 벌어 먹고 사니?”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식은 무슨 죄냐고 시비를 걸자 격분한 택시 기사가 화가 나서 여성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리고 간 뒤 차 뒷좌석에서 얼굴을 3~4회 때리고 청테이프로 양손을 묶고 흉기를 들이대고 움직이면 죽여버린다고 한 사건을 보면서 누가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갑자기 멍해진다.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디까지가 존중해야 되는 인권인지 늘 생각된다. 왜냐하면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말하는데, 우리가 보통 사람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사람, 때로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사람에게도 그 인권이라는 것을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가이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무서운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최근 두 사건을 보면서 가해자들에게 인권이 있나 싶을 정도다.

점심을 먹고 나서 대화중에 18세 엄마, 21세 아빠의 모성애 부성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나이에 애만 낳아서 부모에게 맡겨놓고 가서 어쩔 수 없이 부모가 키우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가하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나이에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해서 어리나이부터 아이를 낳고 평생 살아왔다. 옛날과 현재 삶이 사회변화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가족관계 구성에서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기를 며칠씩 굶기며 애완견처럼 방치하고 놀러 다닌 비정한 어린 부모와 아기의 죽음을 통해서 그 나이대의 어린 부모들의 실태 파악이 제기됐다고 본다. 분명 사회의 책임은 없는 걸까. 그런가하면, 이혼한 전 남편을 죽여서 시체를 유기하고 아예 없애버린 30대 중반의 여자의 사건은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런 무서운 사건들과 인신공격 막말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최소한 인권이라는 것은 던진 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자신을 알아주라고 울다가 더 세차게 울고 안 되면 짜증을 내며 자신의 소품을 내던지는 것을 보게 된다. 뜻대로 안되면 목소리를 높이고 기물을 파괴하고 사람을 밀치고 계획적으로 흉기를 들고 덤비는 무서운 사회에서 인권은 재조명 되어야 한다.

며칠 전 첫 시집을 출간하신 원로 시인에게서 시집을 선물 받고나서 시집 제목에 풍덩 빠져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요즘 매일같이 무서운 사건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오랜만에 아름다운 사이를 본 느낌이었다. 모두가 꽃들처럼 사이가 좋으면 세상이 꽃처럼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꽃은 말이 없어서 아름다운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오 시인은 목회 사역에 따라 강진에 오신지 벌써 10년이 넘으셨지만, 내게는 처음 뵈었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인데, 달라지신 건 강진에 와서 20대에 꿈꾸었던 문학을 꽃피워서 문학인이 되셨다는 점이다. 나도 전주가 고향이고 오 목사님도 전주가 고향이어서 빨리 통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 때부터 꽃을 만져온 나로서는 오 시인께서 붙이신 <꽃들은 사이가 좋다>라는 글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도 있다.

돌아서 가는 친구이듯/ 동백꽃 이운 자리/ 모란꽃이 줄을 잇는다

무거워진 모란꽃 바람에 나부끼며/ 순명으로 가는 길에/ 함박꽃, 꽃 몽오리가 탱탱하다

양귀비 수레국화 금계국/ 무늬마다 물이 오르고/

벌개미취 칸나 배롱나무꽃들은/주춤거리며 차비를 한다

곡우를 지나는 동안

꽃들은 사이가 그리도 좋았다.

아침에 나오면 먼저 꽃들을 본다. 그러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그래서 오 시인께서 아침에 마당에 나와서 마주하는 꽃들과 인사를 나누는 기쁨을 알 수 있다. 밤새 사이좋게 어우러져 싱싱한 자태의 꽃들처럼 자고나면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예쁜 꽃처럼 많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도 꽃들처럼 사이가 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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