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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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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한국전력공사강진지사 시설관리책임자 김영수 씨
음악으로 소통하고 노래와 통기타로 봉사하는 사람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예술  

음악은 소리의 높낮이·장단·강약 등의 특성을 소재로 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예술과 구별되며, 또한 시간예술이라는 점에서 공간예술과 구분된다. 소리는 대체로 악음(樂音)과 소음(騷音)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음악은 악음을 소재로 삼고 소음은 제외시킨다. 물론 악음과 소음의 개념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비록 소음으로 규정된 소리라 하더라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악음의 구실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서양음악에 기초한 개념정의에서는 음악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로 선율(멜로디장단(리듬화성(하모니)이 언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는 서양의 특정시대에 정의된 것일 뿐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는 음악의 3대 요소는 아니다. 따라서 음악을 이루는 요소는 세계적으로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선율과 장단(리듬), 두 가지로 규정하는 것이 보다 포괄적인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괄적인 개념설명으로 음악이 무엇인가를 논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음악이란 개념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정의될 수 있으며, 또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일은 사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작업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느 특정한 시대의 좁은 음악세계에 바탕을 둔 개념정의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두루 포괄하는 범세계적인 관점에서 내려져야 할 것이다.

음악이라는 용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이름으로 일컬어져 왔고, 그 의미도 나라마다 서로 달랐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한데 아울러 (hy)’라 불렀는데, ‘라는 말은 본래 즐거움을 뜻하였다.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는 ‘hy’꽃을 피운 향기로운 연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상에서 주변을 보면 젊은 사람이건 나이가 드신 분이건 간에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흔히 주변에서 볼 수가 있다. 노래방에 한번쯤 가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악기 하나 연주해보려고 취미로 해보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 생활 속에서 깊이 머물러 인생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도시나 여러 영상매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장면이 길거리의 공연이다. 흔히 말하는 버스킹이다. 버스킹이란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장소에서 하는 모든 공연이 버스킹에 속하지만, 주로 음악가들의 거리 공연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은 버스커(Busker)라 한다. 버스커가 공연을 하면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버스킹이란 말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 영국에서다. 버스킹(Busking)은 영어로 공연하다라는 뜻의 버스크(Busk)’에서 유래했다. 버스크의 어원은 찾다, 수색하다, 구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 버스카르(Buscar)’. 당시의 버스킹은 거리 공연뿐 아니라 고용인을 찾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부랑인들이 구걸 대상을 찾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쓰였기 때문이다. 부랑자나 떠돌이 들은거리에서 공연하고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버스킹하는 공연자를 버스커(busker)라 부르며 버스커들은 악기, 작은 마이크, 휴대용 앰프 등을 들고 다니며 거리 곳곳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음악을 즐긴다. 버스킹이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로는 프랑스의 파리,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홍대 인근이 활발하다.

김영수 씨는 버스킹하는 공연자로 봉사를 하고 있다.

김영수 씨는 누구?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

노래와 기타로 재능기부를 아끼지 않는 사람

 

김영수 씨는 생활에서 노래와 통기타로 자기의 삶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말이 지니지 못한 열정과 표현법을 지니므로 말의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해온 음악, 즉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예술을 좋아해 통기타 치며 노래로 봉사하는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재능기부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본인의 삶의 가치로 알고 꿈꾸며 실천해 가는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삶은 오직 음악과 관련지어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마음이 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지 않고 그 수학여행비로 음악학원을 다니며 통기타를 배울만큼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런 청춘의 열정을 그 누가 막겠는가 싶다. 오직 그런 길이 자기가 갈 길이라고 어려서부터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으로 소통 하고 노래와 기타로 봉사하는 사람, 그러기에 항상 화합을 먼저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다.

김영수 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저두 출렁다리 입구에서 혼자서 버스킹을 하고 있다. 버스킹Busking'길거리에서 공연하다.'라는 의미의 버스크(busk)에서 유래된 용어로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혼자서 201610월부터 강진을 찾아오는 여행객을 위해서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관광객을 맞이하며 노래와 통기타를 연주하며 봉사를 하고 있다. 강진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강진의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안내를 하여 다시 찾아오게 하는 마음의 정서를 일깨우고 있다.

모란꽃을 관련지어 영랑을, 동백꽃을 보며 백련사를, 다산초당과 사의재를 통해 다산을, 강진의 청자를 통해 고려의 문화유산 등을 알리는데 열심히 하고 있다.

본인의 마음이 거기에 머물러 있기에 즐겁고 때로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한 때는 몸이 좋지 않아서 삶의 의미를 잃고 시간을 힘들게 보낸 적도 있다. 그 때는 생각 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도 버리고 싶을 정도의 나날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진단결과는 하늘이 무너졌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그를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주었다.

김영수 씨는 강진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형님들이 치던 기타를 만지고 좋아했다. 그 때 좋아보였던 그 형들의 모습에서 기타를 동경했었다. 중학교 때도 그런 생각은 계속 되었고 공부할 때도 좋은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적어 노래를 배우고 불러보고 했다. 중학교 2학년 초에 친구와 성당에 갔었는데 저녁 미사에서 성가가 너무 좋아서 성가 부르는 것에 재미에 빠져 저녁 미사에 무조건 참석했다. 그 때의 꿈도 성악가가 꿈이었다. 심지어 주세퍼 스테파노라는 세례명도 지었다.

고등학교는 광주로 가서 다녔다. 1학년 초 여름에 주인집 가정교사가 평상에서 스트로크와 아르페이지오 주법으로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모습에 반해 버렸다. 열심히 배우고 싶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는데 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보내준 수학여행비로 기타를 1,700원주고 샀다. 그리고 학원비 1,000원을 내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는 수학여행보다 기타가 생각이 더 컸다.

1976년 겨울 방학 때부터 동성리 집에 내려와서 기타를 가르쳤다. 19785월에 통기타 학원을 물려주고 군대를 갔다. 군대를 마치고 19812월에 통기타학원을 다시 시작했다. 그 과정에 조대일, 이수정, 김영배 등 1984년 까지 계속 후배 양성을 했다. 그 해 5월에 조대일 제자에게 물려주었다.

다시 서울로 상경을 했다. 피아노 조율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길을 접고 내려와 한국유리공장에 취직을 했다. 4년간 다니는 과정에 부인을 만나서 결혼도 했다. 90년 초에 터미널 옆인 지금의 파리바게뜨 자리에서 해바라기 음반 샵을 운영했다.

2005년에 젊은 미소 라이브카페에서 가수 활동을 3개월 하다 접고 2006년에 다시 라이브카페를 운영했다. 2009년에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김영배와 이수정, 조대일이 모여서 소리조아 결성을 하게 되고 초대회장을 했다. 당시 강진 터미널과 의료원, 생테공원, 요양병원 공연을 했다. 매월 셋째 주 거리공연으로 농협 앞에서 했다. 2010년 금곡사 벚꽃음악회를 금, , 일을 공연했다. 지역에 소리조아를 알리고 많은 봉사를 했다. 그 때 회원들의 고생도 참 많았다. 9명의 회원이 열심히 참여하여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2년을 회장을 하고 물려주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역문화를 위해서 노력했던 마음은 모두 한결 같았다. 음악활동 속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다 놓고 희망을 잃어버린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자연 치유를 위해 2년을 다녔다. 그때 당시 이상구 박사를 찾아 가기도 했다. 여수 요양병원에서 자연 치유를 했다. 그러다가 수술을 하고 그 결과가 좋았고 극복하고자 히는 열정이 있어 지금까지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 싶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성당의 신부님의 말씀을 항상 생각한다. 사람은 나를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위해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일로 시작된 혼자만의 일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며 시작했던 것 중의 하나가 저두 출렁다리 입구에서 강진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버스킹을 하는 것이었다. 눈이 오거나 적은 가랑비거 온다 할지라도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에서 언제나 노력하고 싶었다.

그는 2018931일에 명랑대첩 OST 1회 가요제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좀 더 젊은 세대에서 그런 가요제에 참석해서 실력을 더욱 깊게 쌓아갔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마음에 많이 남았다. 음악과 평생을 사는 것을 삶의 의미로 삼고 살아가는 그는 행복하다. 음악을 할 수 있기에 행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할 수가 있어서 행복한 것이다.

이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내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느껴질 때 이 세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 그 때 만나는 한 사람마다 이루어지는 교감은 서로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 버려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런 깨달음과

그런 느낌을 가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서로가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한다.

김영수 씨는 그런 꿈과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노래 소리에 묻어나오는 소리는 듣는 이에게 깊은 감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바다가 노래와 섞여 강진만의 노을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정관웅/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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