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세 번째로 현현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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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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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현현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
김재영 강진미술관 세종대왕 동상건립에 이어 다산 초상화 제작

 

국내 최고 다산 동상도 제작 중, 내년 초 강진미술관에 건립 예정

28일 강진미술관 본관에 다산 초상화 전시, 150호 크기로 국내 규모 가장 커

첫 번째 초상화 고 장우성 화백이 그린 기존 초상화로 흰옷 차림

  두번째 초상화 수묵화가 김호석 교수가 그린 초상화로 남색 옷차림

  세 번째 초상화 - 서양화가 박만수 교수가 그린 초상화로 남색 옷차림

 

불교를 믿는 불자들은 왜 절을 세우고 그 안에 불상이나 불화를 모시는 것일까? 황금색의 부처님을 모시고 예경을 올리면 더욱 신심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속진의 때를 벗고 욕망의 바다를 건너 구나(求那 : 민중 속의 부처라는 뜻으로 그 시대의 불국토를 이룬다는 뜻)를 이루기 위해서일 것이다. 단순히 부처님을 닮은 하나의 조각품이 아니라 신심을 키우고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열망에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산의 초상화를 그리고 다산의 동상을 세우는 것도 한마디로 다산의 가르침을 따르고 다산을 닮고자 하는 열망에서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겨서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형성했다. 이를 다산학(茶山學)이라고 하는데, 주자학이나 양명학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경우로 한국의 학술사에서는 불교의 원효학, 유학의 퇴계학 등의 전례가 있다.

그렇다면 다산의 초상화는 어떤 변천을 가져왔을까? 지금까지의 초상화는 다산의 실제 얼굴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안경을 쓰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 선비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 십자가를 걸고 갓을 쓴 다산의 모습도 있다. 뿐인가. 안경을 쓰고 수염이 많은 인자한 모습도 있다.

다산은 평소 내 정분(精分)은 외가에서 받은 것이 많다라고 하였는데, 그의 말대로 그의 외증조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자화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은 자신의 외모가 윤두서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고, 윤두서가 뛰어난 재능과 높은 학문을 가졌으면서도 시대를 잘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다산의 말대로 다산의 초상화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많이 참조하여 그려졌는데, 일찍이 소치 허유(1807~1892)가 그린 것으로 사방관을 쓰고 흰옷 차림인데, 표정이 사뭇 근엄하다.

다음으로는 195912월에 박서보 화백이 그린 선각자 정다산님이란 초상인데, 일종의 삽화 형식이어서 상세한 묘사가 아닐 뿐 아니라, 이 그림에는 십자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다산이 천주교 신자였음을 나타냈다.

그 뒤로 다산의 초상화는 문화체육부에서 1973년부터 우리 역사상 위인과 사상가, 전략가, 우국 선열로 민족의 추앙을 받는 선현들의 동상과 영정의 난립을 예방하고자 표준영정을 만들었다. , 선현들의 제작과 관련된 전문 사항에 대하 권고 및 지도를 해왔던 것인데, 문화체육부에서는 동상·영정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작한 영정에 대해 표준영정으로 지정했다.

표준영정은 고 장우성(1912~2005) 화백이 그려 1974년에 지정한 표준영정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초상화 형식이다. 사방관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너그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다산의 초상화는 그렇게 최초로 우리 곁으로 왔다.

고 장우성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의 산증인으로 이당 김은호 문하로 한국화에 입문한 후, 만년에 후학에도 심혈을 기우려 서울대와 홍익대에 재직하며 제자 육성에도 힘썼다.

안경을 쓴 다산 정약용의 초상화

고 장우성 화백의 다산 정약용 초상화가 최초의 초상화였다면, 두 번째가 안경을 쓴 초상화이다. 2009년 황주홍 강진군수(현 국 회농수산위원장)가 김호석 화백에게 요청하였고, 이 때 안경을 쓴 모습의 정약용이 우리 곁에 왔다. 정약용은 왜 안경을 썼을까?

안경을 쓰고 두루마기는 흰색이 아니라 남색이었고, 사방관의 청태 또한 다른 모습이다.1974년 표준영정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이전 초상화보다 훨씬 여유롭고 온화했으며 지적인 풍모가 안경에서 비롯된 인상이다. 말하자면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서양문물의 영향을 대처하고 방대한 독서 및 저술 활동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이다.

이 초상화가 완성되었을 때 당시 황주홍 군수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중앙지와 중앙방송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며 정약용의 학문적 세계와 강진에 다산초당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했다. 비록 초상화 하나였지만 그 초상화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강진미술관 및 강진박물관 김재영관장, 세 번째로 정약용 초상화 제작

강진미술관 및 강진박물관 김재영 관장은 정약용 선생의 150호 크기 유상(遺像)628일 강진미술관 본관에 전시했다.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로서는 가장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서양화가이자 조선대학교 교수인 박만수(朴萬洙)화백이 3개월에 거쳐 그렸다.

박만수 화백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초대전과 단체전 십 수 회 하였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과 전라남도 미술대전 종합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세 번째의 정약용 초상화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초상화와 다른 점은 얼굴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안경 쓴 모습이나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란 모습, 그리고 남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모습은 똑 같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정약용의 표정이 한없이 연민에 가득 찬 눈빛이라는 점이다. 백성을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있다고나 할까? 따라서 근엄하거나 학문적 진지함보다도 <애절양>의 시를 짓는 마음이 그려져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게다가 그는 목민심서를 양손에 껴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실감케 하고 있다.

특히 화폭의 아래쪽에 <丁石>이란 글씨가 툭 튀어나 보인다.

이 글씨는 다산초당에 있는 정석바위에 새겨진 글씨로서 성을 딴 과 바위란 뜻의 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한 마디로 다산초당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글씨라고도 할 수 있겠고, 다른쪽으로 생각해 보면 다산초당이야말로 다산학의 산실이었음을 외표 시켰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아래쪽의 동백꽃 세 송이가 그려져 있는데, 백련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남도땅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장치였음이 엿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큰 다산 정약용 동상 제작 중

강진미술관 및 강진박물관 김재영 관장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보다도 더 큰 세종대왕 동상을 건립한데 이어 이번엔 정약용 선생의 동상을 제작 중에 있다. 1차적으로 정약용 초상화를 전시한데 이어 동상까지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정약용 동상의 모형물로써 세종대왕 동상처럼 황금색깔로 만들어지며, 높이 5m 50cm, 3m 50cm, 기단 2m, 7m 50cm이다. 현재 제작 중으로 20202월 말 내지 3월초에 강진미술관 및 강진박물관 광장에 건립된다.

이 또한 정약용 동상을 통해 다산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일로 김재영 관장의 자발적인 출연이다. 그만큼 강진은 다산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진미술관 건물 정면에 전시된 신비로운 종유석

강진미술관 및 강진박물관 김재영 관장은 십여 수 종유석을 구입, 강진미술관 건물 정면에 전시했다.

 

강진에서 종유석 동굴 발견되었나?

강진미술관 건물 정면에 전시된 동굴 속 신비로운 종유석들

강진미술관 및 강진박물관 김재영 관장 십여 수 종유석 구입,

미술관 건물 정면에 전시

자연의 깊은 맛, 새로운 볼거리 제공, 앞으로 더욱 수집예정 밝혀

강진미술관 개관 위해 수준 높은 작품 구입, 강진 제1관광지로 급부상

종유석은 그 출처가 동굴이다. 동굴의 천장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원추형의 광물질이 종유석이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에 종유석 동굴이 있어 관광지로 알려져 있고, 세계 각국에서도 종유석 동굴이 관광 상품으로 잘 팔리고 있다.

각국에서는 종유석을 보호하기 위해 고액 보험 상품에 가입할 정도이고 보면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영월고씨굴은 천연석회동굴로 동굴 안의 종유석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내부를 관광할 수 있도록 제반시설을 완비해 놓았는데, 지정관광지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동해 천곡동굴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듯 종유석의 동굴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거나 지정관광지로 지정되어 사실상 관광상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재영 강진미술관장 및 강진박물관장은 이러한 점을 착안해 수년 전부터 수집한 종유석을 일차적으로 강진미술관 건물 앞에 28일부터 전시했다. 제주도나 강원도, 경북 등 멀리까지 않아도 종유석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규모가 작은 것은 전시를 하지 않고 크고 우람한 종유석을 전시하였는데, 종유석의 오묘함을 감상하노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만 년의 세월 속에 만들어진 종유석을 쉽게 감상하면서 참으로 오랜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이어 앞으로도 더욱 많은 종유석을 수집해 종유석의 다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이러한 종유석을 기반으로 강진박물관의 개관도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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