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계룡산에 다녀오면서 군산 즈음에서 고속도로가에 붙여놓은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졸음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또 ‘깜박 졸음, 번쩍 저승’ 너무나 무시무시한 문장이었다. 아무리 졸음을 방지하는 방책이 필요하다지만, 그와 같은 문구를 꼭 써야 하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 전 서울 가던 고속도로에 줄줄이 붙여놓은 무시무시한 졸음방지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에 싹 사라져서 다행이다 싶었었다. 그런데 비슷한 문구들이 또 보이는 것 아닌가. 말씨하나 문장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삭막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지 우리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가슴이 철렁하는 문구를 보고 졸음이 방지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시를 써놓아도 졸음이 방지될 것 같은 마음은 나만 그런 걸까.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생각났다.
풀꽃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풀꽃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아, 이것이 비밀
풀꽃3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워봐/참 좋아
고속도로 문구하나에 괜한 분노가 일었다. 그런 분노는 왜 생기는 걸까. 어떤 화나는 일이 생겼고, 그 화를 참지 못해 일어나는 마음의 격한 감정이 겉으로까지 표출되는 것, 심하면 조절이 되지 않아 싸움으로 커지고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져 서로를 망치고 사회적인 피해를 주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다. 물론 고속도로 졸음방지 문구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그런 분노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떤 일이라는 게 언제나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가볍게 생각했어도 한쪽에서는 크게 분노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일이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는 마음으로부터 큰 분노가 일어나게 된다. 오래전일이지만 누군가에게 크게 분노가 일어난 적이 있고, 참을 수 없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미묘한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을 때 그랬던 것 같다. 그럴 땐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상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과 아주 작은 일에 분노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자칫하면 서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한번은 장날 복잡한 시장으로 승용차를 타고 지나게 되었는데, 그 틈에 걸어가던 한 남자분의 한쪽 팔이 내 차의 백미러에 닿는 일이 발생했다. 복잡한 길이어서 아주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저 닿기만 했을 뿐인데, 그 사람은 내 차의 창을 세게 두드렸다. 그리고 내가 창을 열고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했는데도 그 남자 분은 성을 내며 “너 돈 많이 벌어놨어? 나 장애인이야. 이런...”하면서 화를 내며 주먹질 흉내를 냈다. 순간 아찔했다. 그 뒤편에 계시던 분이 아무 말 하지 말고 어서 가라는 손짓을 했기에 나는 다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는데도 그 남자 분은 눈알을 불알이며 나를 노려봤다. 또 교차로에서 서로 차가 교차할 때 서행을 하며 지나갈 때다. 젊은 남자가 갑자기 자기 차의 앞 창문을 내리더니 “씨발...”하면서 노려보면서 지나갔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다. 음식접 등지에서 종업원의 작은 실수에도 화를 참지 못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소한 일에 야단법석을 떨며, 신고를 하겠다느니 각종 험한 말을 다 쏟아내며 요란스럽게 분노하며 나간다. 아무리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해도 소용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서로 기분과 상할 뿐인데 화를 참지 못해 하고 싶은 말을 마구 뱉어낸다.
분노는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분노하는 사람들이 더 많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화가 너무 넘쳐나는 것 같다. 제발 분노하지 말자.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 있는 풀꽃을 먼저 들여다보면 쉽게 화가 나는 것은 방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국민 전체가 분노해 있는 형국이다. 정치인들은 당파싸움으로 서로 분노하는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으며, 국가적으로는 미중간 무역 전쟁이 점점 험악해지는 가운데, 일본의 아베에 분노하여 NO아베 현수막만 여기저기 보이고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다시 마주 않을 생각도 없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는 북한에 대한 분노도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또 나라 안 사회에서는 잔혹한 살인사건과 무차별 폭력사건에도 분노를 낳고 있다. 제주 한 펜션에서 이혼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고유정 사건은 재판 중에서도 뻔뻔함이 계속 이슈가 되면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서로 매우 가까운 사람사이에서 일어난 분노의 극치를 이룬 사건 속에서 나온 대중의 분노이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한강 몸통시신 사건도 모텔 종업원이 피해자의 시비에 화가 나서 살인하고 사체를 토막 내어 한강에 버리고도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제주에서 빨간 모자를 쓴 30대 운전자가 옆 차선에 정차한 차량의 운전자를 가족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완전 서로 간 모르는 사이에 화를 이기지 못해 일어난 사건으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든 완전 모르는 사이든 불쑥불쑥 일어나는 개인적 분노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은 정서를 남기고 있다. 삭막한 들판에서 사이좋게 어우러져 잔잔한 꽃들을 피우는 풀꽃들이 매우 그리워진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풀꽃을 가꾸는 일, 우리 사회의 분노를 치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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