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제1회 세계문학상)의 작가
김별아의 역사소설 이야기
제193회 강진다산강좌(4,3일 15:00)
69년 강릉출생. 강릉여고졸업, 연세대국문과 졸업. 실천문학<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1993)>로 등단
저서: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백범. 미실. 논개1,2 개인의 체험, 장화홍련전,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꿈의 부족,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영영이별 영이별 등 다수
강연내용 요약
끝까지 노력하는 작가가 부럽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재능은 있어야 하되 98%의 노력이 필요하다
책벌레의 유년시절
혼자서 작업만 하다가 직접 독자를 만나면 두렵고 떨린다. 작가란 직업이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강릉출신으로 남도에 다섯 번째 왔다. 오면서 바깥 풍경을 보며 남도는 정취가 있고 예향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적당한 땅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학자도 아니고 소설가일뿐인데 소설기법을 강연하는 것도 아니어서 제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여러분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로 마흔이다. 보모님은 초등학교 부부교사였기 때문에 외롭게 컸다. 다른 손에 의해 자랐으므로 일찍부터 외로웠고 친구가 없었다. 유일한 친구가 책이었다. 7살 때 신곡이란 산골에서 5년간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연 속에서 감성의 영향을 받았던 게 크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년소녀문학전집 30권을 아버지가 사다주셨다. 그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이 시인이었는데, 이 글을 네가 썼느냐며 칭찬을 하고나서 이청준, 이문열, 김원일 등이 쓴 책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그 때 나는 외국소설만 읽었고 허영에 들떠 있었다. 읽었으되 이해는 못했는데, 세계문학은 성인의 오락이고 애들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진정 그 삶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국소설을 전혀 읽지 못했던 나는 이문열의 <그해 겨울>이란 작품을 읽었다.
부모 속 썩이며 성장한 소녀시절
하지 말라는 일을 골라가며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문학이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태연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학교는 가지 않고 경포대 모래밭에서 땡땡이를 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여고1년, 그 찬란한 시기에 세상이 뭔지 몰라도 세상을 날아다닐 것 같은 환상은 어쩌면 문학을 통한 삶의 출구였다고나 할까. 그런 사이에 성적은 자꾸 떨어졌고 아버지와의 갈등은 심해졌다. 대학시험보기 일주일 전, 아버지는 화를 내며 밥상을 뒤엎었다. 그 때 나는 담배까지 피우던 여학생이었고 사실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가, 란 말에 짐을 싸들고 친구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학교 앞에서 울고 계신다는 말에 막상 가보니 앉아서 울고 계셨다. 창피했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대학에 무난히 입학했는데, 그 때 광주항쟁이 일어났다. 희생자의 사진들을 보며 첫날부터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17살 때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 그것 외에는 장래 희망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학생운동을 시작하고서는 문학이 힘들었다, 그래서 문학을 접었다.
다시 펜을 잡은 것은 91년 4월이었다.그 때 나는 연세대 총학생회 교육부장이었는데, 강좌가 있는 날이어서 서울대 지역집회에 참석을 못했다. 그 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했다. 강경대 열사가 죽은 날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92년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졌고, 노동자, 학생들이 우리 학교로 몰려들었다. 분신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은 역사에 희생을 위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보냈다. 그 후 소강상태가 되면서 서울 한복판에 구름처럼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으로 돌아갔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다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그런 얘기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문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문학으로 돌아왔고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런 과정의 끝 속에서 친구보다, 농활보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한 권을 낸 적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문학은 졸업후였다. 등단자체에 연연해 한 적도 없었고, 그래서 신춘문예에 보낸 적도 없었는데, 절차는 필요하다고 해서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창작에의 길
초기작들은 성적인 성장소설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96)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지금 내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이를 출산했던 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기적이었지만 제 생에 갇혀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하게 되는 일이었다. 3년 동안 내 손으로 키웠다.
문학을 하면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수산 작가도 쓰기 위해 공사판을 따라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탓에 사서 고생을 많이 했다. 아버지를 졸라 버스 안내양 노릇도 한 달 정도 했다. 그러나 경험은 한계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디를 나간다는 게 힘들어졌다. 급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좌절을 맛보았다. 그 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자기 자신을 가둬두지 않으면 안되는 게 문학이다. 잡기에 능하면 힘든 일을 못한다. 골방에 틀여박혀 공부도 했고 작품도 썼는데 축구를 좋아한 나머지 <축구전쟁>이란 작품도 썼다. 자연스럽게 문화사적인 배경을 공부하게 되었고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공부의 욕심으로 했는데, 삼국이 형성되는 것부터 공부하다가 미실이란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화랑세기로 관심이 넘어갔다. 미실을 처음 쓸 때 중, 단편 정도로 생각했는데, 세계문학상 공모가 있어 응모를 해보자 마음먹고 썼다. 그리고 당선되었다.
나는 내 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사랑 잘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여인을 쓰고 싶었는데 백범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백범을 썼다.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일 따라 하게 된다. 내가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 잘나가던 친구들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평론가, 독자들의 각광이 없어졌을 때 작가는 그 힘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끝까지 가야 한다, 문학을 함에 있어 돈이나 명예를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을 얻는 순간 다 끝나버린다. 무엇 때문에 힘든 소설을 쓰겠는가.
이 시대가 지나고 나면 시대를 지켜냈던 사람들이 드러난다. 역사를 배우다보면 현재를 크게 좌절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닌가 싶다. 모든 일은 지나가는 일이고, 지나가는 것은 역사의 한부분일 뿐이어서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태평양 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써보고 싶다. 처음처럼 두렵게 혼자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쓸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여성의 얘기, 약자의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단종대왕비 송비 얘기를 쓰고 싶다. 단종대왕비는 폐비가 되어 걸인도 되었다가 중이 되었다.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단종과 세조와의 권력다툼에만 관심이 있어 그같은 소설은 많이 나왔지만 정적 단종대왕비의 삶이 더 궁금했다. 역사소설이란 장으로 폄하되는 면도 있고, 박범신 작가도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다며 지적한 바도 있지만 나는 내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논개 역시 단면적으로만 떠오르는 고정적인 것을 떠나서 쓰고 싶었다. 그 때 풀숲에서 내 발목을 잡는 영혼들이 있었다. 역사소설을 쓰다보면 신비에 빠진다. 내가 미실, 백범, 논개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처 등을 겪게 되면서 작품이 진행되었다. 경청해 주신 강진군민께 감사드린다.
정리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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