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냄새가 짙은
⌜내 고향 강진⌟ 기획전
고향다운 냄새가 짙은 ⌜내 고향 강진⌟ 기획전을 이번에 연다. 이번 기획전은 강진의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다.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진 전시회는 강진의 현대미술을 감상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작가들의 창조적 미학이 우리 마음을 이끌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전시 기간 : 2019. 8. 31(토) ~ 2019. 9. 30(월).
. 관람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 전시 작품 수 : 60여 점
이번 전시는 1917년부터 1989년 사이에 강진에서 태어난 미술가 60여 명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기획전을 통하여 강진 군민과 여러 지역 사람들이 함께 강진군의 미술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각각의 작품에 담긴 예술성과 창조성을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개인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모처럼 한자리에서 강진의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를 통하여 강진 미술의 형성과 발전을 이해하고, 작가들마다 다양한 작품세계를 통하여 독특한 예술성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미술은 발전한다. 그래서 시대마다 다른 미술작품들을 남겨 놓았다. 그 다름을 파악하여 시대성과 역사적인 현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미술사이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바로 강진의 미술사라는 학문적 방법을 기초로 한 여건들을 재조명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술작품을 단순히 시대 순으로 전시하고 설명하는 것만 아니라 미술사적인 방법의 다양성으로 인해 각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토대로 미술을 찾아보고 때로는 미술을 넘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하는 즉 관객의 심리적인 측면까지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술은 정말로 다양하다. 그 장르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같은 종류의 그림이라도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더 나아가 바라보면 같은 사람이 그린 것이더라도 다르다. 이 다양함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 다양함 속에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이나 유사한 흐름을 찾아내는 것도 미술의 감상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태도와 정서가 사람마다 다양할 뿐만 아니라, 미술 자체가 슬프고 아프고 때로는 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과 맞닿아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재료로 빚어낸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곧 삶에서 끊임없이 배출되는 인간의 감정을 예술이 깎고 다듬어서 정련하고 나름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삶의 의미를 담아서 전달하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창조적으로 우리에게 보여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전시는 고향 강진에 대한 정체성 및 애향심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는 시간이다.
강진의 미술은 의외로 역사가 깊고,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독창적 문화가치를 조상들로부터 가지고 있는 강진의 고려청자를 비롯해서 조선시대의 최고의 불화인 무위사 벽화(국보), 다산 정약용의 유배문화를 토대로 이루어진 실경산수화가 있다. 추사 김정희의 예술혼이 담긴 소치 허련(許鍊,
1808~1893)의 남종화 전통을 토대로 한 강진의 현대미술과 호남 및 한국의 남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시작은 1917년 병영으로 이사한 미산 허형(許瀅, 1862~1938)으로부터 이루어진다. 그가 8년 남짓 작품생활을 했던 병영은 우리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두 아들 남농 허건(許楗, 1907~1897)과 임인 허림(許林, 1917~1942)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미산의 아버지 소치가 추사 김정희에게 물려받은 남화를 새로운 한국화로 그들은 발전시켰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도암에서 태어나 일본에 미술을 유학했던 강진 최초의 서양화가인 윤재우(尹在玗, 1917~2005)와 강진읍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김영렬(1923~2003)이 있다.
타지 출신으로 강진읍과 작천면·성전면·도암면 등의 중학교에서 미술반을 모아 함께 사생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던 양규철(1939~) 등의 교육 및 창작 활동은 강진의 미술계 형성과 서양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밖에 고려청자를 재현한 조기정(1939~2007)과 함께 강진의 현대 도예를 이끌어온 이용희(1939)를 비롯해 미술의 여러 장르를 선도한 한국화 김용국(1950), 서예 정윤식(1944), 조소 마영진(1956), 목공예 이정욱(1959), 사진 전학출(1946), 서각 임길선(1963), 평론 김이천(1960) 등의 활동이 주목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조사한 자료를 종합한 결과, 강진의 미술은 장르별로 사양화가가 32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한국화 16명, 도예 15명, 조소 11명, 서예 6명, 사진·매체미술·목공예·서각·기타 각 1명 순이다.(장르 미확인 10명) 다른 광역단체들보다 도예가들이 많은데, 이는 강진의 고려청자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청자의 재현뿐 아니라 기형이나 도화의 독창적 표현까지 다양한 도자예술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서문에 ‘강진 미술의 어제와 오늘’(김이천/미술평론가)이라는 내용을 보면 강진의 지명부터 서술되어있다.
강진(康津)은 ‘건강한 나루’라는 뜻을 가진 남도의 고장이다. 면적 500㎢에 3만8천여 명이 거주하는 아름다운 농촌이다. 1417년(태종 17)에 강진현으로 통합한 고려시대의 도강현과 탐진현의 가운데 글자를 따온 지명이다. 도강현의 별호는 금릉(金陵), 탐진현의 별호는 오산(鼇山)이었다. 이런 강진을 옛 선비 김극기(1379~1463)는 강진이 “산과 시내는 바로 그림 같고, 환영 같은 누대는 귀신의 솜씨를 빌렸다”고 칭송했다.
강진은 곳곳에 다양한 문화유적이 있어 남도답사 1번지라고 불린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청자축제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축제는 고려시대에 이곳 대구면에서 만들어진, 송나라 사신 서긍이 찬탄했던 비색(翡色) 청자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의 국보 및 보물 청자 중 80%가 강진의 도예가가 만든 걸작이다. 이러한 청자의 아름다운 도자의 형태와 그림[陶畫]을 창조한 예인의 숨결이 강진의 미술문화 역사를 출발점이다.
강진은 1417년(태종 17) 광산현(지금의 광주)에서 전라도 병영(兵營)이 이곳 병영으로 옮겨지면서 조선의 군사요충지로 자리 잡았다.
이후 숙종(1674~1720 재위)과 영조(1724~1776 재위)는 화사군관(畵師軍官)이나 화사비장(畵師裨將)을 두어 왕실 화가들을 파견해 그 문화를 화폭에 담아냈다. 조선후기의 풍속화가 김두량(1696-1763)의 증손자 김국빈(金克彬)과 19세기의 화원화가 조재흥(趙在興)이 이곳에 파견된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병영은 상업으로 번창했다. 당시 이곳 상인이던 김치윤·허사첨이 1820년대에 일본에 표착해 네덜란드의 상인 지볼트(1796~1866)를 만나 화가 빌레네뉴(Villeneuve)의 그림에 사실적인 모습으로 표상되었다. 한국 최초로 서양인이 그린 인물화다.
최초의 강진 출신 미술가는 고려의 충신 안지(安止, 1377~1464)로 알려져 있다. 1414년 문과에 급제해 태종·세종·문종·단종 네 임금을 섬긴 중신이다. 1442년(세종 24)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1418~1453)과 김종서·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 중신 19명의 글을 모은 <비해당소상팔경시첩>(보물 1405호)에 그의 글이 남아 있다. 안평대군이 형 수양대군(세조)에게 살해된 계유정난(1453년) 때 강진으로 낙향해 10년간 시화를 벗 삼아 은거했다. 청백리로 비바람조차 피하기 어려운 집에 살았던 고은이 죽은 뒤 1476년(성종 7)에 해련(海連) 등 13명의 화가들이 성전의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에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를 그렸다. 조선시대의 최고 불화로 평가되는 걸작이다.
조선후기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강진에 유배되어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쓰면서 실학을 완성하고, 서화를 즐기면서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의 토대를 이루었다. 다산은 1805년(순조5) 그의 초당과 가까운 백련사에서 만난 혜장선사(1772~1811)를 통해 알게 된 초의선사(장의순, 1786~1886)와 교류하면서 미술사에 기록되는 흔적들을 남겼다. 다산은 1812년에 부인 홍씨가 보내온 색 바랜 다홍치마에 두 폭의 <매조도(梅鳥圖)>를 그렸으며, 그 이듬해 강진의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탐승하고 읊은 시 '백운동 12경'을 초의선사가 그린 두 폭의 실경산수(<백운동도>·<다산초당도>)를 화첩 《백운첩》으로 엮었다. 이들 그림은 1853년(철종 4) 초의의 제자인 소치 허련(1808~1893)이 다산의 강진 제자 황상(1788∼1863)의 대구면 <백적산장도>·<일속산방도>와 함께 19세기 강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실경산수로서 중요하다.
황상의 거처를 그린 소치는 다산의 제자 초의에게 서화를 배웠으며, 다산의 외조부 윤두서의 그림을 익힌 뒤 초의가 소개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가르침과 후원을 받아 “압록강 동쪽에서 따를만한 화가가 없는” 화가로 성공했다.
그는 추사의 남종화를 완성했으며, 그의 화풍을 1917년부터 1923년까지 병영에서 살았던 그의 아들 미산 허형( 1862~1938)과 손자인 남농 허건(1907~1897)·임인 허림(1917~1942), 그리고 그의 족손이자 아들 미산의 제자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을 통해 근대 한국회화로 연결시킨 남도화단의 꽃이다.
1938년 남농은 조부의 스승 초의가 그린 <백운동도>의 본가인 성전 ‘금릉백련당 전경’을 화폭에 담았는데, 일제강점기 강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진귀한 실경산수화다.
한편, 다산의 학문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재 윤두서(1668∼1715)는 다산의 외증조부로 겸재 정선(1676~1759), 현재 심사정(1707~1769)과 함께 삼재로 꼽히며 특히 <자화상>(국보 제240호)으로 유명한 문인화가다. 공재의 사실주의 그림은 그의 아들 윤덕희(1685~1766)와 손자 윤용(1708~1740)에게 전해져 오늘날의 민족미술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공재의 7대조인 어초은 윤효정(1476~1543)은 도암 덕정동에서 태어나 김종직(1431~1492)의 제자 최부(1454~1504)에게 학문을 배우던 중 해남 갑부 정호장의 외동딸과 결혼해 해남에서 살았다. 결국 다산의 삶과 학문 및 예술, 그리고 다산의 제자 초의의 친구 및 후학을 통해 이루어진 남종화 전통은 강진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이러닉하게도 1917년 다산의 외가인 해남윤씨의 뿌리인 도암에서 고산의 13대 족손으로 태어난 귤원 윤재우(1917~2005)는 일본 오사카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운 뒤 광주사범학교와 조선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의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했으며, 사실적이고 목가적인 정경을 즐겨 그리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귤원의 유화작품 123점이 울해 강진군에 기증되었다.
귤원 이후 100여 명의 미술가들이 강진 출신으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귤원보다 5년 늦게 강진읍에서 태어난 완향 김영렬(1923~2003)은 1943년 일본미술학원 서양화과를 수료한 뒤 성요셉여자고등학교 등지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고향의 산하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완향에 이어 1930년대에 손두옥(1930)·류근홍(1939~1998)·신광옥(1939)과 이용희(1939)·조기정(1939)이 태어나 각각 서양화와 도예 창작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강진 미술의 2세대로서 다음세대의 미술문화 기틀을 놓았다. 이후 출생의 강진 미술가는 더욱 많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타지 출신으로 강진의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친 미술인은 앞서의 다산과 초의, 소치 이외에 광주 출신의 양규철(1939~)이다. 그는 배동신·강연균 등과 함께 호남의 수채화가 1세대로서 1970~80년대에 강진읍을 비롯한 작천·성전·도암 등지의 중학교에서 정규의 미술 수업과는 별도로 미술반을 모집해 학생들과 함께 스케치를 다니는 등 예비 미술가를 직접 양성한 진정한 미술교사였다. 그의 지도 아래 송절종·김충호 등 10여 명의 미술가를 배출했는데, 그 중 평화한반도 문화인회의 공동대표 이제훈, 미술평론가 김이천, 큐레이터 김하기·윤영필의 활동은 창작을 지원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강진의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내 고향 강진’ 기획전을 마련해준 강진원 강진군수님을 비롯한 이를 추진해온 김하기 큐레이터 등 관련 인사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계기로 강진의 우수한 미술이 널리 알려지고, 강진의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이천/미술평론가)
모처럼 마련된 ‘내 고향 강진’ 기획전은 강진 출신의 미술가들이 창작한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다. 이를 통하여 미학과 예술론의 역사와 개념들 보다는 아름다움의 의미와 그리고 세상에서의 자유로운 삶의 가치, 예술과 인간과의 어떤 관계를 바라보고 관객들이 미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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