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타파’가 대한해협 을 통과하며 일본과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우리 남해안의 항구도시에도 여러 피해가 있었고, 일본의 오키나와와 큐슈 지역에도 많은 피해가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70대 여인이 새벽에 신문을 돌리다 강풍에 쓰러져 사망했다는 소식은 씁쓸하다. 70대 할머니가 신문을 배달해야하는 일본의 현실이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또한 미야자키현에 송전탑이 쓰러져 1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고 한다. 방재시스템이 탁월한 일본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이렇게 때때로 남쪽에서 불어 닥치는 태풍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우리 남해안과 일본 큐슈는 동일 영향권에 드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본 기자(이하 필자)는 작년 쓰시마(對馬島)를 방문했다가, 한 북쪽 언덕에서 우리 부산항이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렇게 한반도가 가까이 있구나...
이렇게 부산과 지척인 쓰시마를 징검다리 삼아 우리 선조들이 일본 열도에 진출하였다. 큐슈에 진출, 벼농사를 전파하여 농경문화를 일으켰고 , 선진 철기문화를 가져가 고대 국가를 성립시겼다. 큐슈에 산재한 고대 유적, 유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기간에 필자는 일본 큐슈의 관문 후쿠오카에 상륙(?)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일본을 가느냐며 만류하였지만, 오래 전부터 계획한 일정이라 미룰 수 없었다. 작년에 대마도에 진출했으니 올 해는 꼭 큐슈 하카타(博多)에 상륙해야 했다. 물론 배를 타고 가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무안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 만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를 둘러보니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다. 뒷자리는 아예 비어있어 작금의 한일 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필자에게 큐슈 상륙은 쉽지 않았다. 입국카드 일본 내 숙소란에 “Fukuoka Hotel”이라고 기재한 것이 화근이었다. 젊고 깐깐해 보이는 입국심사관이 후쿠오카 어느 호텔에 묵느냐고 물어 왔을 때, 필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직 호텔을 정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던 것이 문제를 키웠다. 그는 호텔 예약이 안 돼 있으면 입국허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니 지금이라도 호텔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번에 두 곳을 방문할 예정인데, 아직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정하지 못했다. 여러 상황을 봐서 지금 이동할 것인지 아니면 후쿠오카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이동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입국 심사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한국인 통역 안내원이 급히 뛰어왔다. 그사이 다른 여행객들은 모두 입국심사를 통과하였고 주변의 입국심사관들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러다 휴대품 조사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내 가방을 뒤진다면 나는 분명 일본 상륙도 못하고 추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방 안에는 [ N0 安倍 YES 日本 ]이라 적힌 1인 시위용 현수막이 들어있었다.
다행히 한국인 통역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필자가 방문할 가라쯔(唐津)와 다자이후(太宰府)를 설명하고 이틀 후 돌아가는 항공편을 증명한 다음에야 상륙허가를 받을 수 이었다(실제로 일본은 외국인이 입국할 때 여권에 <上陸許可>라는 스터커를 붙여준다).
이렇게 어렵사리 후쿠오카에 상륙하여 필자는 먼저 후쿠오카 공항을 둘러보며 어디서, 어떻게 아베(安倍)규탄 시위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입국심사야 어떻게든 통과했지만, 1인시위도 무사히(?) 마쳐야 다음 일정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일본 현지에서, 그것도 공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현직 일본 수상을 규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추석 연휴에 일본 큐슈에 상륙한 첫 번째 이유는,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아베를 일본인들에게 고발하고 규탄하는 것이었다. 이는 필자의 양심과 역사인식에 근거한, 작지만 정당한 항거이다.
필자에게는 정당한 시위라고 해도 일본 국내법은 지켜야 했으므로 공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관광가이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난처하다며 모두 거절했다. 서운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일단 도착홈 앞에 프랑카드를 펼치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지나가는데, 한 일본인이 다가오더니 우리말로 “고생한다. 대단하다”며 격려해주었다. 자기도 아베를 싫어한다면서 다시 한 번 “힘내라”고 위로해 주면서 “조심하라”는 당부를 여러 번 한다. 게다가 본인의 핸드폰으로 나의 1인 시위 모습을 찍으면서 주변에 알리겠다고 했다.
이런 일본인이 있기에 필자는 1인 시위 프랑카드에 [ YES 日本 ]이란 문구를 쓴 것이다. 다시 한 번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느끼면서 흐믓한 마음으로 공항을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리고 이었다. 필자는 가라쯔(唐津)행 기차를 타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음호에 계속)
본지 객원기자 임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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