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강진읍 영파리 팔영마을
조남순 할머니(99)
“올 살먼 맹년에는 100살이고만.”
군동 금사리에서 태어난 조할머니는 17살 되던 해 느닷없이 시집가라는 말에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낯익은 아낙이 집안을 자주 드나들더니 드디어는 결단이 난 모양이었다. 부모가 가라하면 두말없이 가야하는 것이 시집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이상형은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친정살림보다는 좀 더 나은 집안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저 먹을 것만이라도 친정보다는 넉넉한 집안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이상이었을 뿐 잘 생기고 자상하고 이런 등등의 됨됨이는 생각도 못하는 나이였다.
“징하게 가난해·····쌀 서되나 받을 라고 엿새를 일허던 시절여.”
그러나 영파리 25살 총각에게 시집온 조할머니는 시집오던 날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눈물이 흘렀다. 가마에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 쓰러져가는 외딴 초가집 한 채가 눈앞에 보였다. 혼례식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 잔치분위기였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내가 새로 살아가야할 낯선 집, 이제 저 집이 내 집이로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콱 미어지고 있었다.
“신랑이 첫날밤에 뭣을 헌지 생각안나, 아이구 귓 구녁할라 꽉묵어가고 죽겄고만.”
조할머니가 가난과 고생을 미소진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여유를 보면서 공자의 논어에‘克己復禮爲人’ 이라는 구절을 생각해본다. 인생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감정과 욕망을 절제하여 예로 조정하며 극복해 갈 때 비로소 인이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표정이 아닐까 싶다.
“구식에는 멍청헌게 한하고 애기만 났어. 그래도 남편과 서로 맘이 맞은게 살재.”
가난한 시집은 땅 한 평 없었다. 오로지 신체가 건강해야만 살 수 있는 살림에서 조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온갖 궂은 일투성이였다.
“그때는 쌈싸운 시상이라·······배가 고프고 자식들 맥일랑게 일만하고 살재.”
4남 4녀를 둔 조할머니는 그때 세상은 세상이라고 말 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도 남편과 오순도순 지내던 순간들이 있어 험한 세상 그런대로 살아왔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술을 좋아한 남편은 늘 주막에 있는 날이 많았다. 호인이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 자리에는 술이 빠질 수 없는 간식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술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어느 저녁에는 술기운에 힘이 넘치는 남편을 부축이고 오다가 함께 수렁에 빠져 겨우 기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술 호랭이가 되어서 흥에 겨운 노래를 목청껏 불러내며 돌아오는 남편은 바가지를 긁어대도 그러든지 말든지 떨어져 코만 골아댄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 하며 아내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던 남편이어서 미운정 고운정 모두 섞여 그러면 그런갑다 저러면 저런갑다 하며 다독거려주며 사는 것이 부부라고 귀띔 해준다. 남편은 혈압으로 떨어진 후 8년간을 누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누웠응게 꼴배기 싫더만, 죽을라고 헌디 어짤것이요. 인자는 생각도 안나.”
조할머니는 순하디 순한 성격이다. 그러한 심성이었기에 급한 성격이었던 남편의 허물을 가려주고 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집안에 큰소리한번 나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전 가마니치고, 생전 나물 캐고 논둑에 업져서 살었어도, 좋은시상 보고갈라고 그랑가 이렇게 오래살아.”
조할머니가 기자의 귀에 대롱대롱 걸린 귀걸이를 바라보더니 만져본다.
“이뼈, 마음은 뭣이든지 허고잡은디, 애기가 되가고 멍충이가 되았어.”
흰머리를 몇 가닥 가늘게 딴 머리가 귀여워서 만졌더니 며느리가 아침에 따 주었다고 한다. 함께 사는 막둥이 내외(김정수71, 김점자63)와 너무너무 정이 들었다는 조할머니는 막둥이아들과 며느리가 효도한 만큼 해줄 것이 없으니 또 멍충이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나보다 덜 먹은 사람도 벽에다 똥 볼르고, 밥통에 밥이 하나 있는디 거기다가 물 흠뻑 부어놓고는 며느리한테 밥해 놨다고 헌 사람도 있다요.”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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