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그 남자의 봄
이윤(광주 북부경찰서장)
지난 3월 인사시기와 맞물려 둘째 아들에게서 쿠웨이트로 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두 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간 후 떨어져서 지낸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이번처럼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전화에는 사뭇 평소와는 다른 애틋함이 밀려왔다. 그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어디서든지 최선을 다하라는 짧은 말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최전방에서 군대생활도 했으니 잘 적응하겠지 하는 안도감도 가졌다. 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잠시도 마음을 놓을만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들들의 대학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고, 스스로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라는 말만 통신으로 전했다. 그런데 최근 북구로 오게 되어 전남대학교 앞을 매일 지나다니면서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런 느낌은 바로 靑春에서 오는 것이었다. 靑春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과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봄과 패기가 넘치는 젊음, 그래서 젊은 시절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던 아들의 목소리가 새삼 다시 들려왔다. 나는 1970년도 초에 대학생활을 했다. 대학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를 가졌다는 서울의 대학에서 두꺼운 법률 책만 끼고 살았던 시절이었으니 기억나는 靑春(봄과 젊음을 함께 누린 시기)도 거의 없다. 오로지 법률 책에 꿈이 있었고 이상이 있었으니 대학의 낭만도 오로지 법에 있었다고나 해야 할까. 하여간 두 개의 靑春중에 한 개(매년 돌아오는 봄)는 해마다 다시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위안해 본다. 몇 해 전 어느 지역의 서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인사시기 때였다. 직원들을 대함에 있어 얼굴과 이름만 알뿐 그 사람에 대해서 깊이 알 길이 없기에 자신을 최대한 알릴 수 있는 소개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때 그들이 적어낸 자기소개서를 읽고서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겉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던 능력보다 대단한 실력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남모르게 여러 자격증을 갖추기도 했으며, 표면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들이었다. 최근에 한 번 들어오면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으로 경찰직을 최고로 선호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2009년 남자 전.의경 대체인원 1차 공채에서는 2만 5248명이 몰려 966명을 채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26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 지원하게 된 이유를 안정성을 꼽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정성’ 이라는 단어에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누구든지 말한다. 그렇다면 지팡이는 언제든지 민중의 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려 말 승려인 식영암이 지은 정시자전은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어느 날 식영암이 졸고 있을 때 정시자(지팡이)가 찾아와 제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시자는 복희씨와 여와가 자신을 낳아 수풀 사이에 버려둔 채 돌보지 않아 수백 년 풍상을 겪으며 자랐다고 말한다. 진나라때는 범씨의 가신이 되어 옻칠을 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당나라때는 말 잘하는 조로의 문인이 되었으며, 그 뒤 정도 땅에서는 정삼랑을 만나 생김새가 (丁)자와 같다하여 정씨 성을 받았으며, 자신은 항상 사람을 붙들어 도와주는 것인데 지금은 자신을 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한다. 식영암은 정시자에게 후덕스러운 정상좌라고 칭찬을 하지만 자신은 감히 스승이 될 수 없다고 사양을 하면서 화산으로 각암이라는 화상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이 가전체 소설을 통해 나는 경찰직에 대한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말하려 한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이기에 지팡이의 주인인 민중에게 쓸모 있는 존재일 때만 안정적인 직업이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때엔 주인에게 버림받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불안정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잘 이해한다면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가 靑春이란 뜻에서 경찰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나는 아름다운 봄에 젊음의 이상을 함께 발견하고 싶어 대학의 캠퍼스를 기웃거려보지만 그럴 틈도 잠시일 뿐 연일 건조한 날씨 탓에 일어나는 화재와 사건사고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오다가다 젊은이들의 발랄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다행이며 화단에 피어난 작은 봄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데서 기쁨을 찾으려한다. 靑春(봄)에 기대어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고나 해야 할까. 어쨌든 멀리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며 캠퍼스의 봄을 바라보니 그 남자는 마냥 하뭇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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