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사람 사는 이야기> 동문마을 이장 정길용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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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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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동문마을 이장 정길용 씨
마을 어르신을 위하고 주민들과 함께 가는 일에 최선의 노력으로 실천한 사람

인류가 생활하기 위해 지표를 점거한 주거양식을 우리는 취락이라고 한다. 다른 표기로는 마을, 향리라고 부른다. 한자문화권 에서는 즉 한문화권(漢文化圈)에서는 촌락(村落부락(部落향리(鄕里) 등과 함께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취락 본래의 의미를 살려 재창조한 슈라쿠(집락集落)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원은 회()의 의미를 지닌 '한곳에 모인다'는 뜻으로 군집(群集)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간적으로 가옥이 모여 있는 집촌(集村)에 일차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나 지금은 산촌(散村)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취락에 함축된 또 하나의 의미는 역사적 발전과 더불어 한 장소에 누적되었다는 염()의 의미가 있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이 생겨나는 신촌(新村)까지도 포함한다.

구성요소는 인간이 거주하는 가옥, 물자 생산과 공급 장소로서의 경지를 말한다. 농가와 인간과 물자의 소통을 담당하는 도로 등이 주된 것이다.

취락은 좁은 의미로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로서 가옥의 결합체로 규정하고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인간생활과 관련된 생활무대의 전반을 가리키므로 가옥은 물론 경지·도로·수로·창고·울타리·공한지 등을 모두 포함하여 말하고 있다.

주거양식이 한곳에 모여 산다는 것은 함께 더불어 가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동체라는 의미는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그곳에는 마음의 고리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 바라보는 사회의 가치가 형성되고 노력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협의체로 가는 것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정길용 씨는 누구?

유형은 도시적인 것과 촌락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오늘날 도시가 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발생근원이 취락이라는 모체에 있는 까닭에 접근방법과 연구과제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영어권에서 도시와 촌락을 각각 취락을 의미하는 용어를 공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와 촌락의 모체는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도시와 촌락은 행정구역, 인구수, 인구밀도, 경관, 지가, 주민의 생업기반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인간의 거주공간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도촌(都村)의 구분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도시는 비촌락적(nonrural), 촌락은 비도시적(nonurban)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남에게 작은 소리라도 허튼 소리를 듣지 않고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

정길용 씨는 마을 어르신을 위하고 주민들과 함께 가는 일에 최선의 노력으로 실천한 아이돌 이장이다. 아이돌 이장은 군에서 그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정길용 씨는 강진군 마을 이장단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40대라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남에게 작은 소리라도 허튼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항상 내가 먼저 주민을 찾아가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남보다 좀 더 젊으니 그 또한 큰 자산이다. 생각이나 일처리 면에서도 좀 더 빠르게 처리 할 수가 있다. 열심히 뛰어 다니기 때문이다.

사의재 저작거리 개선 사업에 그는 열심히 노력했다. 마을이 너무 낙후되어 생동감이 떨어진 환경이었다. 교육면에서부터 문화적으로 강진의 동부권이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낙후된 동부권(목화, 동명, 고내)을 위해 노력을 했다. 그것이 사의재 복원 사업과 한옥체험관, 사의재 저작거리 추진 활성화 방안에 군의 협조에 힘을 기우렸다. 그것은 동문 마을을 발전시키는 일들이기에 그는 열심히 뛰어 다니며 문제점 해결에 힘을 기우린 것이다.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문제점이 노출되기 마련이었다. 지역에서 본디 살던 사람들 다시 말해 원주민原住民의 이주문제가 걸려 있었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두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갈등이 없을 수는 없는 문제였다. 사의재에 관한 일들과 한옥체험관은 잘 이루어 졌다.

그러나 침체된 주거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면에서는 동내의 도시재생사업이 꼭 필요한 사업들이었다. 그는 주민부담이 10%이어서 그것도 갈등해소에 힘써야 했다. 마을 전체가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사업계획이 잡혀있기에 그 점 또한 문제가 되었다. 그 사업비는 국비와 도비, 군비로 이루어진 보조 사업이다.

정길용 씨는 직접 주민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찾아오신 분들에게 이해와 설득도 해야 하는 노력도 필요했다. 도시재생사업 센터 위치를 동문마을로 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그는 근본적이고 마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은 최선을 다해 군에 건의를 했다.

강진읍 도시재생 뉴딜사업(일반근린형) 지역 내 노후 주택 슬레이트 지붕개량 및 외부 집수리를 위한 정비사업도 계획 되어있다. 이러한 사업도 필요한 여건 개선의 한 면이기도 했다.

동문 마을은 사실 강진의 관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균형적인 발전으로 보았을 때 동문마을은 낙후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기에 동문 마을을 떠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제 터를 지키며 사는 것이기에 때로는 힘들어도 터를 지키기 위한 삶의 가치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을 깊숙이 보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는 현실들이 있다. 땅을 팔아서 보상을 받으면 받는 돈을 가지고 자식들은 모시고 산다고 부모를 도시로 모셔가지만 결국은 돈이 없어지면 시골인 고향에도 집이 없기에 오고 갈데없는 독거노인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런저런 문제점을 이장으로서는 참 어려운 문제를 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결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동문마을은 독거노인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40명이고 차상위계층 저소득자가 40여명으로 모두 합하면 약 80명이나 된다. 상당히 많은 숫자임을 알 수가 있다. 환경조건과 마을의 활성화 방안이 모색이 절실하다.

정길용 씨는 동문 마을에 공공임대주택 150세대가 살 수 있도록 하기위한 사업이 계획 되어 있어서 부지 매입에 힘을 기우리고 있다. 독거노인들의 주거환경 개선에도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9평에서부터 10, 12, 15평형을 이루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25평형 아파트도 건립해 주기를 군에 건의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환경조건이 열악한 환경인데 평수가 너무 적은 평수의 건물만 지은다면 문제가 됨을 지적한 것이다.

아주 적은 평수의 아파트만 지으면 젊은 세대들이 이사를 오지 않게 되고 동초등학교 같은 경우 학생들 수에 따른 문제점도 발생하게 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건의를 한 것이다.

그는 동문을 제외한 다른 구역은 보다 큰 아파트 평수의 주택이 있거나 새로 짓고 있기에 균형적 발전을 기하기 위한다는 면에서도 동문에 좀 더 큰 평수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개발 된다면 죽어있는 지역의 공간성에 활력소를 불러 넣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단지 개발이라는 명제에는 관과 주민이 협력하여 합일점을 도출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다. 관의 사업들이 시작되면 때로는 주민들이 군에 협력하고 양보를 할 점은 해서 하는 일을 계속 추진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부분의 공간이지만 지난날에 비해 조금씩 개발되다 보니 점자 경제적 요건에 문제점이 도출되어 어려운 점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위의 땅값의 상승으로 공시지가, 기준시가가 감정가라는 것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파는 사람은 좀 더 받으려 하고 사들인 관은 공시지가나 기준시가라는 감정가라는 잣대를 대고 있다.

주차장으로 수용되어 팔리게 되자 동내를 떠나기 싫어서 근처의 빌라로 이사를 가는 분들도 있다. 정길용 씨는 그런 문제들도 손 수 뛰어다니며 나이가 많으신 분들 위해서 해결사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정길용 씨가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전에 알아보고 그 마음을 읽어서 행한 일이다. 그분들의 마음을 바라보고 주선하는 자식처럼 앞장서서 해결하는 그 마음은 생각이 남달랐음을 알 수 가 있다.

정길용 씨는 사소한 일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며 주민들의 일처리를 하고 있다. 때로는 도와주면서 그분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처리했는데도 고맙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별의별 민원이 들어오는 경험도 겪었다. 건축허가가 잘못되던 일들도 중재적 관계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장이 중간에서 금전적 관계를 받았다고 말하거나 왜 그 일을 하느냐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일을 추진함에는 미래의 마을이 잘 되어가도록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일임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어 때로는 실망하기도 했으나 마을의 발전하게 되는 일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그는 젊은 열정으로 정직하게 마을 일을 처리하는 아이돌 이장임을 다시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사소한 민원들도 제도적으로 이장으로서 솔선하여 앞장서서 해결하는 사람이다.

주민을 위하고 조금 더 지역이 발전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일을 찾아서 시작하는 사람이다. 마을에 위치한 시설물도 주거지역에 맞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요건들이 발생한다. 그런 문제도 사회적으로 관례가 되는 측면에서 새롭게 제도적으로 해결해나가도록 힘쓰고 있다.

정길용 씨는 동문의 교통적으로 유통성이 떨어지고, 도로와 안전성 확보가 되지 못하는 좁은 길 때문에 등하교의 아이들 문제에서부터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 까지도 안전사고 문제를 안고 있어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젊고 젊으니 그 패기로 밖의 세상으로 뛰쳐나갈 법한 일인데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인 동문안 터를 지키며 살았다. 대학 때인 21살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기에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슈퍼를 30년을 운영했다. 그동안에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교눈높이 강진장흥해남 교육팀장을 2001년부터 12년간 했다. 아내와 다시 살고 있는 슈퍼자리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큰아들이 아닌 42녀 중 막내아들이면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형들은 외지로 나가 살게 되니 막내아들인 정길용 씨가 모시고 살게 되었지만 그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성품이 것이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하겠다는 효정신이 더 강해서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 된다. 그런 동생을 보고 형제들도 모두다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니 걱정을 놓을 수 있으니 좋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본다. 아버지께서 사시는 집도 모두 동생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길용 씨 아내도 23살에 도암에서 시집을 왔지만 96살 되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인지 부모에 대한 효정신이 따뜻하게 살아있어서 젊은 나이에도 지금 사람들 같지 않고 부모님 모시는 일을 잘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남에게 이만큼의 작은 말이라도 남에게서 나쁜 소리를 듣지 말고 살아야 된다고 듣고 살았다. 그래서 인지 항상 바르게 사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인지 그는 주변에 친구가 많다. 남에게 먼저 다가서고 베푸는 일들을 좋아하는 성품이다. 동창들의 모임에서 야유회를 갈 때도 자기 집에서 모두 준비해가는 일들하며 제이시아이(JCI) 청년 회장을 하면서 봉사 활동도 했다.

정길용 씨는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강진교육지원청 인사위원회 위원으로 지금도 5년째 활동하고 있다. 학부모 대표로 강진여중운영위원회 활동을 했고 강진고등학교 학부모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진동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3년 하면서 학교어린이들 성장에 다소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 끝에 동내 샘의 이름을 따서 <큰샘골 장학금>이라는 명칭으로 정길용 씨 본인 부담으로 1년에 50만원씩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개학식 날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서 지금은 입학생을 뺀 나머지 재학생들이 다 해택을 받는 것이 되었다

원래 이장학금은 다른 이름으로 동창들이 모여서 장학금을 전달하다가 다들 못하겠다고 해서 정길용 씨가 새롭게 어린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시작된 봉사심의 발로이다.

그는 방학기간에 반찬공급을 한 유치원에 하고 있는데 그 수익금을 생활이 어려운 어린이들 발전기금으로 내고 있다. 남을 바라보고 함께 가는 일에 앞장서는 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낙후된 지역을 사려서 활성화 시키겠다는 의욕 또한 열정이 가득하다.

그는 그동안 어린 나이에 동네의 총무 일을 맡아서 마을 회관부터 동내의 잔심부름과 장부정리를 어르신들을 위해서 해왔고, 새마을 지도자를 2년간 봉사로 마을을 위해 힘써왔다.

나이가 가장 적은 이장인 아이돌 이장으로서 그 닉네임에 맞게 마을 어르신들을 위하고 주민과 함께 더불어 가는 일에 충실하게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열심히 낙후된 마을을 활성화 하는데 오늘 아침도 열심히 발길 가는 곳으로 뛰고 있다. 젊은 40대 초반의 향기로 가득하다. 남을 위하여 자기의 생각을 잊고 애쓰는 모습이 참 곱기도 하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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