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인간의 善한 마음을 드러내면 ..." 오종근 동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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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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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善한 마음을 드러내면 ..." 오종근 동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간이 善한 마음을 드러내면>


나는 상대방과 언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라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각기 요구하는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다 보면, 마침내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논리를 지나 감정싸움으로 변해 버린다.


언쟁에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유효한 방법의 하나는, 상대를 흥분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자극적인 말을 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이 상한 말을 생각나는 대로 골라서 마구 내뱉어야 한다. 상대의 진심이나 의도는 상관없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아주 나쁜 쪽으로 풀이해서 퍼부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는 흥분하다 못해 기가 막힐 것이다. 아마도 나를 상종 못할 저질로 생각할 것이다. 논쟁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싸움에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밀어붙이다가 돌아서서 꼬리를 보이고 피하는 쪽이 지는 것으로 결정된다. 멍청한 나는 저 소싸움을 생각하며, 상대가 언쟁을 중단하고 피하면, 내가 이긴 것으로 풀이하곤 했다. 상대가 내 이름에 가위표를 그으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나의 약점만을 너무도 잘 골라서 공격하는 이도 있다. 어떤 말은 내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내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게임을 좋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직접 겨루지 않더라도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관심을 두고, 또 내심으로 한 쪽에 점을 찍어 두고, 그 쪽이 이기기를 바라기도 한다. 자신이 멋대로 지어서 보는 상대의 건방짐과 당돌함을 꺾어버리고, 굴복시키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상대가 바짝 엎드려서 순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투었다고 해서 영원히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떨어놓고 대화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싸움은 두 사람을 더욱 친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툼 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화해를 하게 되는데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라거나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라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알리고 화해를 청한다.


우리의 의문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본래부터 있을까? 아니면 공존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격적 행위를 반성한 후에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킬까?”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성인이 될 성품이 있다”고 가르치는 면에서 보면 우리의 마음 본바탕에는 세상의 모든 대상에 대해서 잘 되기를 바라는 선의(善意)가 있다. 상대를 얕보고 세상사 모두를 게임으로 생각하고 일단 이기고 보려는 생각 때문에 상대를 공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내면 바닥에 항상 깔려 있다는 것이다.


주변을 위하겠다는 소원을 다듬은 정도에 따라서, 惡業의 때를 벗겨서 본래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 드러나게 하는 수행에 따라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처음부터 의식할 수도 있고, 또는 사후에 그러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지만, 선후의 시간차에 큰 의미가 없다. 만약 상대에 대한 선의가 우리의 마음 본바닥에 본래부터 있지 않다면, 앞이든 뒤든 반성하고 화해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해, 바람, 구름, 땅은 의식이 없고, 자연의 법칙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저것들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이익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들의 본래 모습도, 각기 서 있는 자리에서, 나름대로 다른 것들에 이익을 준다. 그 이익을 주는 본래의 법칙을, 또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상대의 마음 바탕에 깔린 본래의 선의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다투더라도 훨씬 아름답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어쩌면 상대의 장점만을 말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이기려는 업이 발동하기는커녕, 주변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의에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한 기러기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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