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제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명저
제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세균도 자연선택의 산물?
* 역사에서 병원균이 맡았던 역할을 보여주는 가장 무시무시한 사례는 바로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와 함께 시작되었던 유럽인들의 남북아메리카 정복이었다. 스페인의 잔혹한 정복자들에게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스페인의 잔혹한 세균에 희생된 원주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남북아메리카와 유럽 사이의 세균 교환은 왜 이렇게 불평등했을까? 스페인의 세균이 그랬던 것처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질병도 스페인 침략자들을 마구 죽이고 유럽으로 전파되어 유럽 인구의 95%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유라시아의 병원균에 몰살당한 많은 원주민 민족들의 경우,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열대 지방에서 몰살당한 유럽인 정복자들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렇게 인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일들 뒤에, 그리고 오늘날 인류의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쟁점 뒤에는 동물에게서 얻은 질병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가령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는 인간 질병 에이즈는 아프리카의 야생 원숭이가 지니고 있던 바이러스가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고 있듯,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박쥐가 지니고 있던 바이러스로 인해 진화했다는 최초의 설과 비슷한 점을 이해할 수 있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위 사례들을 들며 ‘질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생명체들은 우리를 ‘병들게’하지 않는데 어째서 일부 세균들은 우리를 병들게 하도록 진화되었는지를 다음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에이즈나 중세에 자주 유행했던 흑사병(선페스트)처럼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전염병들이 왜 유행병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지도 살펴보고 있다.
그 다음으로, 현재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세균들의 조상이 원래의 숙주였던 동물로부터 우리에게 옮겨 온 과정을 고찰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으로 있어온 전염병들을 통해 인류의 전염병들이 동물에게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중요한 문제, 즉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거의 일방적인 병원균 교환이 이루어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감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중국인보다 미국 유럽에서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점도 유의해 볼 필요도 있다.
* 우리는 주로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본다. 우리가 이 세균들을 죽이고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못된 놈들을 깡그리 죽이고 없애버리자! 녀석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랴? 삶을 살다보면 혼자 그렇듯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 적을 잘 알아야 한다. 특히 의학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편견은 잠시 접어두고 세균의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자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어쨌든 세균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연선택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성기를 헐게 하거나 설사를 일으키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우리를 병들게 함으로써 이 세균들이 진화의 측면에서 얻게 되는 이익은 무엇일까? 그리고 세균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죽일 수 있도록 진화해야 했을까? 이것은 특히 알쏭달쏭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균이 숙주를 죽게 만들면 자기도 곧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균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진화한다. 진화의 과정은 가장 효과적으로 새끼를 낳아 그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장소에 전파시킬 수 있는 개체들을 선택한다. 세균을 말할 때 ‘전파’라는 용어를 수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원래의 환자 한 명에 대해 새로 생겨나는 피해자의 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숫자는 각각의 피해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새로운 피해자들을 감염시킬 수 있느냐, 세균이 한 피해자로부터 다음 피해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느냐에 달려 있다.
세균들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또 동물들에게서 사람들에게로 전파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진화시켜 왔다. 잘 전파되는 세균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남길 수 있으며 결국 자연선택에서도 유리해진다. 인간의 질병에서 비롯되는 ‘중성’들은 사실상 매우 영리한 세균들이 인간의 몸이나 행동을 세균이 전파되기에 알맞도록 개조시키는 과정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때가 많다.
병원균이 가장 힘들이지 않고 전파되는 방법은 다음 피해자에게 전해질 때까지 그냥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이 전략을 사용하는 세균들은 한 숙주가 다음 숙주에게 먹힐 때까지 기다린다. 예를 들어 살모넬라균은 우리가 이미 감염된 달걀이나 육류를 먹음으로써 전염된다. 또한 선모충증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돼지로부터 전염되는데 우리가 돼지를 잡아서 제대로 익히지 않고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 사키스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생선회를 즐기는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이 생선을 날로 먹었을 때 가끔 감염된다.
이 같은 기생충들은 우리가 먹은 동물에게서 전달되지만, 뉴기니의 고지대에서 웃음병(쿠루병 이라고도 하는 치명적인 변형 프리온에 의한 뇌신경병)을 일으키던 바이러스는 먹힌 사람에게서 먹은 사람에게로 전해졌다. 즉, 식인 풍습을 통해서 전염된 이 병은 고지대의 엄마들이 죽은 쿠루병 환자를 요리하기 위해 막 잘라낸 머릿골을 아이들이 만지작거리거나 그 손가락을 빨았을 때 전염되었던 것이다. 코로나19 또한 먹지 않아야할 박쥐를 인간이 식용함으로써 박쥐가 갖고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들의 신체를 통해 전염되었다는 설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 어떤 세균들은 원래의 숙주가 죽어서 잡아먹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곤충들이 그 숙주를 물고 나서 새로운 숙주에게 날아갈 때 그 곤충의 침 속에 편승하여 옮겨간다. 이렇게 무임승차를 허락해 주는 곤충들은 모기, 벼룩, 이, 체체파리 등이며 각각 말라리아, 페스트, 발진 티푸스 혹은 수면병을 퍼뜨린다. 수동적인 전달 방식 중에서도 가장 치사한 세균들은 여자에게서 태아에게로 전달되어 그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감염되도록 하는 놈들이다. 매독, 풍진, 그리고 오늘날의 에이즈 등을 일으키는 세균들이 그런 수법을 쓰는 병균들로, 우주는 본래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들도 이 윤리학적인 문제로 몹시 고민해야 했다.
다른 세균들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이들은 전달을 가속화하기 위해 숙주의 신체나 습관을 바꾸어 버린다.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매독 같은 성병으로 성기가 헐어 버린다는 것은 끔찍한 수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숙주의 도움을 얻어 새로운 숙주의 체강속으로 옮겨가는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 쳔연두 때문에 생기는 피부 상처도 직간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세균을 전파시킨다. 저자는 때로는 매우 간접적인 경우를 들고 있는데, 가령 미국의 백인들은 ‘호전적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킬 목적으로 천연두 환자가 쓰던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 더욱 적극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인플루엔자, 보통감기, 백일해 등의 세균으로, 이들은 피해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새 숙주들을 향해 구름처럼 뿜어 나간다. 콜레라균은 피해자가 심한 설사를 하게 만들고 물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피해자를 찾는다. 또 한국형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생쥐의 오줌을 통해 퍼진다. 숙주의 행동을 개조시키는 세균 중에서도 광견병 바이러스를 따를 만한 것은 없다. 이 세균은 감염된 개의 침 속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개가 발광하여 마구 물게 해서 많은 새로운 피해자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병원균 자신의 육체적인 노력 면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일등상은 십이지장충이나 주혈흡충 따위의 기생충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 녀석들의 유충은 피해자의 똥에 섞여 배설되었다가 물이나 흙으로부터 새로운 숙주의 피부 속에 능동적으로 파고든다.
이상과 같이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기는 헐거나 설사, 기침을 하는 것은 ‘질병의 증상’이다. 그러나 병원균의 관점에서 본다면 병원균을 퍼뜨리기 위한 영리한 진화적 전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병원균에게는 이익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자멸하는 짓인데도 병원균이 자기 숙주를 죽이는 전략까지 진화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병원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세균을 효과적으로 퍼뜨리기 위해 숙주에게 일으킨 여러 증상들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일 뿐이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가령 콜레라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하루에 몇 리터씩 설사를 쏟아내다가 결국엔 죽고 만다. 그러나 적어도 한동안, 즉 환자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음 피해자들이 사용할 물속으로 콜레라균이 대량 유포된다는 이익이 있다. 그리하여 각각의 피해자가 한 명 이상의 새로운 피해자를 감염시킨다면 첫 번째 숙주가 재수 없게 죽더라도 콜레라균은 무사히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총균쇠 저자는 세균도 자연선택의 산물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발생된 감염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환자 한 명으로 인해 전파되는 세균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해서 자기들의 살길을 선택해지는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리: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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