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본 세상 –암행어사 박문수 어떤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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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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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본 세상 –암행어사 박문수 어떤 인물일까?
박문수는 왜 암행어사의 전설이 됐나?

 오직 백성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전념했던 박문수

21대 국회의원선거가 2020415()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실시가 된다. 사전 투표가 410() ~ 411() 2일간 오전 6~ 오후 6시까지 실시했다.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뽑는 일이다. 백성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전념한 암행어사 박문수를 생각해본다.
박문수는 온갖 사회에 부조리함과 더불어 어쩌면 사사로운 것들까지 세심히 백성들의 곁에서 숨 쉬며 살아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정에서도 백성의 세금을 감면하고 당정 정치를 비판한 인물이라고 한다. 현대에도 이러한 굳은 의지를 지닌 어사 박문수와 같은 관리가 많다면 주목받지 못한 소외계층들의 삶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경상도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오래전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섬기면서 사는 문수신이다, 사람들은 문수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그런데 이 신을 모시는 신이란 암행어사 박문수를 말한다. 사람들은 왜 박문수를 신으로 받들고 있는 것일까? 암행어사 박문수는 조선시대의 문관으로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다. 암행어사 박문수 일화를 통해 본 암행어사 박문수 어떤 인물일까?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명문출신 가문이다. 박문수 부모는 늦게까지 자식을 두지 못하여 속으로 애만 태웠다. 하루는 부부가 서로 상의하기를 우리가 자식을 못 가지는 것은 아무래도 전생에 닦은 복이 없어서인 듯하오. 오늘부터 부지런히 복을 지어 나가면 틀림없이 좋은 과보가 있을 것이요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복을 짓는 일이 불승 삼보에 대한 공양이라고 생각하고 3년을 작정하고 닷새에 한번 오는 장날마다 시장에 나오는 스님을 모셔 와서 성심 성의껏 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만 3년을 채우는 마지막 날 하인이 시장으로 스님을 청하러 갔으나 날이 저물도록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 문둥병 걸린 스님이 한 분 나타났다. 데리고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다른 스님이 결국 없어 그 스님을 모시고 갔다.
주인은 흔쾌히 빨리 스님을 사랑채로 모셔라음식을 먹는데 수저에 피고름이 묻고 음식에도 흘러서 보기가 너무 흉했다. 주인은 문둥병 스님을 대문까지 배웅하고 말하였다.
다른 곳에 가서 우리집 사랑채에서 공양 대접 받았다고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당신은 다른 곳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 는 말을 남기고 문둥병 스님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얼마 지나서 부인이 아기를 가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낳았다 하여 애기 이름을 문수로 지었다. 그 애가 훗날 그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였던 것이다.(기도영험록)
 
성현들은 우리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 모습으로 ,저 모습으로도 오신다. 그래서 관음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은 장사꾼, 무사, 동자, 동녀, , 재상, 승려, 산신령 기타 등 등 33가지의 모습으로 변하여 우리들을 구제한다고 말씀하였다. 우리 주변의 하잘 것 없고, 볼품없는 이라도 혹시나 성인의 화신일 줄 모르니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오듯이 만중생을 갑질하지 않고 지극 정성 공덕지으면서 받들고 공경하며 살다보면 모든 소원 이루워 지고 불보살의 가피가 곳곳에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는 이야기다.
백성의 편에 서서 바른 말을 했던 인물이기에 벼슬길은 그리 평탄하지 못해 정승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어릴 때 돌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독신인 숙부 밑에서 자랐던 그는 1723년 경종 3년에 문과에 급제해 사관이 되었다. 어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 중 하나인 어사 박문수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 이다.
그중에서도 암행어사 박문수로 활동했을 때가 지금까지 가장 큰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가 실제로 암행어사로 활동한 시기는 1727년부터 1728년까지 고작 1년이 전부인데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공훈을 세웠다.
그는 소싯적 방탕한 생활 인해 민초들과 관련된 세간 사정에 매우 밝았다. 이 경험이 어사 역할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빈민 구제 활동을 활발히 펼친 영남 지역에서는 거의 신격화되었으며, 영양군에서는 수호신으로 받들어 서낭당을 만들기까지 했다.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실제 관찰사로 활약한 지역은 영남 지역뿐이다.영남 지역을 제외한 지방도 그가 왔다 갔다 했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일반 백성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조선시대 인물 중 구전 설화가 가장 많은 인물 중 한 명인데, 그가 등장하는 설화가 무려 97개나 된다.이항복이나 이이가 2~30개로 2위를 차지한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라 할 수 있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몇 가지 설화에 대해 알아보자. 이 설화는 개화기에 쓰인 박문수전 초반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박문수는 왜 암행어사의 전설이 되었나?
 
박문수는 우리에게 암행어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만 등장했던 특별한 직책이다. 임금님의 명을 받아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관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주로 수령들의 비리를 고발하고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일을 도맡아 해결했다. 힘없고 가난한 조선의 백성들의 마지막 희망이 바로 이 암행어사에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명종이후 약 350여 년간 무려 600여 명의 암행어사를 파견했다. 이 많은 어사들 중에서 오늘날 까지도 기억 되고 존경받는 암행어사가 바로 박문수 이다. 그런데 암행어사 박문수의 구체적인 행적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박문수만이 암행어사 대명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일까?
경상도 문경새재의 세 번째 관문인 조령관은 어사 박문수와의 관련 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조령관을 지날 때 산봉우리에 마패을 걸어두었는데 그 때부터 마패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명을 받고 내려오면서 여기에서 잠시 쉬었던 곳이다. 영남으로 암행어사 명을 받고 내려오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자기의 업무에 대한 마음의 각오를 다짐을 했던 것으로 보아지는 곳이기도 하다.
 
옛 선비의 흔적 따라, 산수의 지저귐 따라(조령관)
 
박문수의 이야기는 뜻밖의 기록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보관 되어있는 곳에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 15,000여 편을 모아놓은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책이다. 인물분야 설화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설화가 암행어사 박문수에 관한 부분이다. 예를 들면 <억울한 누명을 벗긴 박문수(朴文秀)>.<초립동의 원한을 갚아 준 박문수>.<꼬마한테 멸시 딩한 박문수>,<박문수와 영자 원혼> 등 수없이 많다.
어사 박문수에 관한 내용의 끝부분에 <어사출두>란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주 구천동에 출두한 박문수> 어사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중의 하나다. 설화속의 암행어사 박문수 이야기와 교훈점을 아라본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전라도 구천동 마을을 암행 중이던 암행어사 박문수는 밤이 깊어 하룻밤 묵을 곳을 찾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불이켜진 한집을 발견했는데 방 안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지는 걸 보게 된다. 박문수는 뛰어 들어가 멈추라고 소리쳤다. 노인이 젊은 아들을 죽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캐묻자 마을 부자 천 씨가 자기 며느리를 뺏어가 혼인하려 해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한 것이었다. 동반자살을 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 박문수는 하루만 자기를 믿으라며 말했다. 다음 날 박문수는 천 씨의 혼례식장에 출두하였다. 그리고 천 씨를 끌어내어 그 죄를 물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가면 박문수를 신으로 모시는 성황당이 남아있다. 경상도 어사로 내려와서 백성들의 억울한 누명도 벗겨주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원칙으로 곡식도 나누어 주었는데 그 고마움으로 박문수가 죽은 뒤에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백성들이 성황당을 지어 지금가지 신으로 모시며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야담집을 보면 박문수가 암행어사 시절 백성들에게 베푼 선정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것은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가 무수하게 이야기와 전설로 만들어졌다.
어느 날 암행어사 박문수가 홀어머니와 아들과 단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무게 되었다. 아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좌수 댁 딸에게 청혼을 한 사실이 있었는데 좌수가 자기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노발대발 하였다는 것이었다. 좌수는 총각을 불러서 매일 모욕을 주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암행어사 박문수는 좌수집을 찾아갔다. 박문수는 총가의 사촌 행세를 하며 외조카를 왜 모욕하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좌수가 들은 척을 하지 안차 결국 박문수는 자기의 신분을 밝혔다. 마패를 보는 순간 좌수사가 결혼을 시키겠다고 하는 언약을 받아냈다. 그리고 좌수사의재산을 사위에게 주도록 하였다. 실제로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못한 처녀들의 혼인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줄 정도로 민생에 귀를 기울이는 어사였다. 그 때 당시 서울 밖의 처녀로 나이가 20~30이 넘도록 시집을 목산 자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원망이 가슴에 맺혀 화기를 손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암해어사 박문수의 활약담은 조전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1926년경까지 소설로 이어였다. 오직 백성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전념했던 박문수는 더욱 전지전능한 구원자로 재탄생되었다.
박문수(朴文秀)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호는 기은으로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성보, 시호는 충헌이며 구당공 장원의 증손이다. 박문수는 숙종 17(1691) 98일 진위현 현평대군에서 학자 항한(恒漢)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723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고, 병조정랑에 올랐다가 노론의 집권으로 삭직되었다. 1727년에 사서로 다시 등용되었고 영남 지방의 암행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 군정과 세정에 밝아 당시 국정의 개혁 논의에 중요한 몫을 다한 인물이다.박문수는 지혜가 명석하고 기지가 뛰어나 영조의 신임을 받게 되어 영조 3년 안집어사(安集御使)에 차출되어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억울한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고 지방관리들의 수탈과 횡포를 뿌리 뽑아 명성을 떨쳤다. 박문수는 이처럼 암행어사 직책을 맡았을 때 곳곳을 떠돌며 억울하게 짓밟히는 민권을 옹호하고 구제하기에 힘썼으며 숱한 업적을 남겼다.양역(良役)의 폐단을 개혁했을 뿐만 아니라 탁지정례(託支定例)제도를 만들어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했고 오로지 고통 받는 백성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초지일관 하였다.옳다고 생각하면 임금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품으로 인하여 모함을 받고 파직되기도 하였으며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박문수가 당시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는 항상 정의의 편에서 약자를 돕고 진실을 규명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박문수가 암행어사 임무를 수행했던 기간은 일 년 남짓이다.설화 책은 이 책은 전 3권으로 1권은 그동안 우리가 박문수에 대해 많이 들어오던 암행어사로서의 행적을 구전되는 일화나 야사를 중심으로 내용이 이루어져 있고, 2~3권은 지금까지 우리가 거의 접해보지 못했던, 한 시대를 학자 그리고 관료로서 왕에게 직언을 마다않던 곧은 절개를 가진 선비로서의 그의 행적이 사료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특히 1권에서는 선인이 등장, 박문수의 재목됨을 알아보고 조부와 아버지의 묘자리 이장 권고와 더불어 과거의 글제를 미리 암시해주고, 그에게 선인도를 익히게 하는 등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재미와 더불어 박문수의 재기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소년시절의 박문수는 매우 불행했다. 여섯 살 때 조부와 백부가 돌아가시더니 여덟살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 어머니 경주 이씨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외가에 가서 외숙 이태좌의 밑에서 수학(修學) 하였다.성장할수록 매사에 얽매이지 않고 큰 뜻이 있었으며 친우들의 모임에서도 의기가 뛰어났고 담론이 펄펄 날아서 항상 한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굴복시켰다.이와 같은 박문수의 재기는 식우지기(食牛之氣)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호랑이 새끼가 아직 자라지 않았어도 충분히 소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기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박문수는 금강산에 올라 허균의 형 허봉이 지은 풍악기사제를 읊으며, 벼슬길에 나가더라도 당쟁에 휩쓸리지 말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벼슬길에서 물러나겠다는 뜻과 더불어 진심으로 백성을 위해 일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풍류객이 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한다.이와 같은 그의 다짐대로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활약하며 위험을 마다않고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고 탐관오리의 횡포로부터 백성들의 고단함을 덜어준다.도깨비 불의 정체를 밝혀 과년한 딸의 혼수비 장만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털려던 박수무당의 소행에 벌을 준 이야기와, 평소 권진사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가 권진사가 과부가 된 며느리와 못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을 내 권진사에게 복수하려던 것을 박문수가 몰래 며느리의 방에 숨어들어 손목을 잡아 보며 며느리의 반응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모든 것이 헛소문임을 밝혀 권진사와 며느리의 억울함을 밝혀주는 이야기 및 어린 신랑의 사인을 규명해 가엽게 죽은 혼을 달래주었다는 이야기, 원한 맺힌 남매의 한을 풀어준 이야기 등 책 1권에는 암행어사 시절의 이야기가 신비적 요소와 결합되어 박문수의 인물됨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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