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7개월 유복자 키우며 靑孀(청상)으로 살아온 창녕조씨 조남현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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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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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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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유복자 키우며 靑孀(청상)으로 살아온 창녕조씨 조남현 여사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불행을 이겨낸 어느 불자 이야기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효부상시상

집안에선 부인 공덕 받들어 효열비

홀로 인생시댁·친정에 행복 안겨줘

안씨가훈

조남현 여사의 얘기를 꺼내기 전에 안씨가훈(家訓)’을 먼저 언급해 본다. 안지추(顏之推 531~590 무렵)는 중국 역사상 혼란이 심했던 시대 가운데 하나인 남북조시대 말기에 활동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는 격변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경험을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기 위해 지은 책이 있으니 그 책이 안씨가훈이다. 고금의 가훈들은 바로 안씨가훈을 모델로 하거나 원조로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중국의 가훈서(家訓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과 변화무쌍한 오늘날에도에도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안지추는 안씨가훈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이제 다시금 이 책을 짓는 까닭은 심히 사물에 법도를 세우고 세상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집안을 바로잡고 자손을 이끌고 타이르는 일을 위해서다. 무릇 똑 같이 말을 할지라도 친한 사람의 말은 미덥고, 똑같은 명령을 하더라도 따르던 사람의 명령은 행하기 마련이다.

아이의 심한 장난을 그치도록 하는 데에는 스승의 훈계보다 평소 돌보던 여종의 이끎이 낫고, 평범한 사람들의 형제간 다툼을 그치게 하는 데에는 요순의 도리보다 아내의 달램이 더 낫다. 이 책이 너희에게 여종이나 아내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미덥게 여겨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안씨교훈은 그 구성과 내용에 있어 총 제20편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제4편은 재혼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재혼으로 인해 가족간의 화목이 깨진 사례와 가족간의 화목을 위해 재혼을 포기한 옛사람들의 사례를 교훈삼아 재혼 문제에 대해 신중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안지추는 하나의 사례를 들어 기록하였다. 윤길보란 사람의 얘기다. 윤길보는 어진 아버지였고 아들 백기는 효자였다. 백기의 어미가 일찍 죽자 다시 후처를 들였다. 후처는 백기를 헐뜯어 말하기를 백기가 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더니 사심을 품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윤길보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후처가 저를 빈 방에 놔두고 당신은 다락으로 올라가라고 말하고 벌을 잡아다 옷깃에 넣고서 백기를 불러 꺼내달라고 했다. 백기가 손을 넣어 벌을 잡으려하자 후처가 자신을 겁탈한다고 외치니 윤길보가 크게 노하여 백기를 들판으로 내쫓았다. () 선왕(宣王)이 유람을 나갈 때 윤길보가 수행을 하였다. 그 때 백기가 노래를 불러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선왕이 말하기를 이는 쫓겨난 자식의 노래로다고 말하자 윤길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리고 평생 재혼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며 계모가 남겨진 자식들을 학대하고 혈육을 이간질시켜 상심케 하고, 애간장을 끓인 사례들은 어찌 이루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신중히 하라! 신중히 하라!

이번엔 낳은 자식과 데려온 자식에 관한 얘기다.

보통 사람의 본성은 새 남편이 전 남편의 자식을 아껴주는 경우는 많아도 후처는 반드시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단지 여자들은 질투심을 품고 있고 남편들은 무엇에 잘 빠져 혹하는 성향이 있다기보다도 일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전 남편의 자식은 내 자식과 감히 집안의 주도권을 다투지 못하며, 이끌고 키우며 오랜 세월 가까워지다 보면 애정이 생기게 되므로, 그를 총애하게 되는 것이다.

전처의 자식은 늘 자기가 낳은 자식 위에 있으면서 벼슬이나 학업, 혼사 등 방해되지 않는 일이 없으므로 그를 학대하게 되는 것이다.

배다른 형제가 총애를 받으면 부모는 친자식으로부터 원망을 당하게 되고, 계모가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면 형제간은 원수가 된다. 집안에 이런 일이 있으면 모두 가정의 불행이다.

안씨가훈은 이러한 예를 들어가며 재혼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재혼에 수반되는 가족간의 갈등은 사회적 관습으로 인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친부모를 더 사랑하고 친자식을 아낄 수밖에 없는 인간 본능의 불가피한 성향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면서 상당히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남현 여사의 뜻밖의 비운

조남현 여사는 올해로 52세이다. 목포여상을 졸업한 후 행남자기에서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다가 남편을 만났다. 스물다섯 나이에 엄마의 계원이 소개를 해주어 목포역전을 중심으로 1년 가량 데이트를 즐기다가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다. 199312월이었다. 당시 일곱 살 연상인 남편은 친형과 함께 여러 곳의 빌라를 짓는 건축가였기 때문에 신혼생활을 20평 가까운 빌라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결혼과 함께 임신이 되어 94111일에 첫아이(이종원)가 출생했다.

그런데 임신 7개월 째였다. 행남자기를 그만 두고 집에서 남편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평범한 새댁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빨리 한국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배퉁이가 불러온 상태였지만 택시를 불러 타고 한국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어찌나 놀란 가슴에 택시에서 제대로 내리지를 못했다. 가까스로 지인들의 부축을 받아 병원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이미 손도 쓰지 못한 채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었다.

목불인견(目不忍見).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담함 그것이었다. 공사 중 감전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해야 옳을까. 당장 남편 따라 죽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홀로 살 바에는 함께 흙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긴 조선시대만 해도 남편이 급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진(自盡)이 많았다. 그 시대에는 남편은 곧 하늘이요, 남편 없는 여자야말로 사람 취급 받기에도 어려웠던 시대였다. 그래서 집안에서나 문중에서는 열녀비를 세워주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자식이 없었을 때의 자진이었고, 자식이 있다면 자식을 위해 사는 것 또한 미덕이었다.

조 여사는 배퉁이의 아이를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루기 전 이미 뱃속의 아이는 발길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남편의 유일한 혈육 한 점이 자신의 뱃속에서 발길질을 한다는 것은 생명의 고귀함과 함께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의 싹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 여사는 보상금 7천만 원을 쥐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그 상황 속에서 임산부로서 혼자 지내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흘러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도무지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고 세상 밖으로 홀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머릿속은 아무 생각이 없는 텅 빈 채였다. 10개월을 다 채우자 아들 이종원을 낳을 수 있었다. 종원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아는 후배가 소개를 해주어 커피숍을 3년 남짓 운영했다. 친정엄마가 종원이를 키워주어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정엄마가 조 여사의 속내를 물어보았다. 재혼을 않을 거냐고,

젊으나 젊은 나인디 새 사람 만나서 새롭게 시작을 해봐사 쓸 것 아니냐? 청춘이 구만리 같은 내 딸인디 청상으로 늙어죽을 수는 없잖냐?”

친정엄마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딸이 재혼을 하든 안 하든 모친의 입장에서 한번쯤 재혼 의사 여부를 물어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 여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 저는 전혀 재혼할 생각이 없어요. 예쁘게 자라는 종원이만 보고 살래요.”

친정엄마는 두어 차례 물어보더니 그 뒤론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딸의 의지를 알아채고 더 이상 재혼을 권하지 않았던 것이다. IMF가 터진 후 권리금도 받지 못한 채 가게를 넘겨주고 행남자기 경리 경력과 여러 개의 자격증으로 목포 첨본자기에 들어갔다. 2002년도에 들어가 10년 정도 근무를 했는데, 어찌나 사장님, 상사, 동료들이 잘해주는 바람에 외로움도 잊고 직장생활 재미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명절 때면 찾아가곤 했던 시댁에서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시댁은 본디 남편 형제자매가 아들 여덟에 딸이 둘인 10남매였으나 웬일인지 자손이 귀했다. 시숙 한 분은 자식이 없어 딸 하나를 입양해 기르고 있었고, 또 다른 시숙도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종원이를 양자로 들였으면 한다는 소식이었다. 마침 남편은 형제자매간 중에서 막내이기도 했다.

종원이를 양자로 들이겠다는 뜻은 재혼을 하거나 개가를 할 것으로 아예 예상하거나 치부해버린 생각에서였다. 시댁의 생각은 종원이를 양자로 들이겠다는 것에 결코 조 여사에게, 혹은 제수씨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를 주고자함은 결코 아니었다. 제수씨가 아직 청춘이기에 보랏빛 계절을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요, 사랑 없는 청춘은 벌써 실패된 인생이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자식이 있을지라도 그 자식이 엄마의 행복의 실체는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종원이를 양자로 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원이는 시댁에서 무탈하게 자랄 수 있고 조 여사는 딸린 자식 없이 자유롭게 재혼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소식을 들은 조 여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자 내 남편의 핏줄을 내가 키우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만을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조 여사의 의지는정자어록(程子語錄)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묻기를 어떤 과부가 있는데 빈궁하여 의탁할 곳이 없습니다. 이를 재가시켜야 합니까? 아니면 견뎌야 합니까?정자(程子)가 대답하기를 세상엔 그런 일이 많다. 춥고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재가를 하는 일이 있지만, 그러나 굶어 죽는 일은 극히 적은 일이고, 실절(失節)한 일은 극히 큰 것이다.

절개를 잃은 일이야말로 극히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조 여사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의 마음을 굳게 세웠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번 맺은 사랑을 차마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흐르는 황하의 물이 이리저리 만 번을 굽돌아도 동으로 흐르고 만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사람들이 이러한 절개의 과부를 대함에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옛적에 안숙자(顔叔子)가 홀로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이웃에는 홀로 사는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비바람이 몹시 심했는데 여자의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과부는 할 수 없어 안숙자에게 달려와 피신을 요청해 왔다. 안숙자는 군말 한 마디 않고 그녀를 방으로 맞아들인 후 촛불을 밤새도록 밝혔다. 또 부엌으로 가서 그녀를 위해 불을 지펴주었다.

성경에서도 과부에 대한 얘기는 90여 번이나 나온다. 과부를 학대한 자는 자기 아내가 과부가 될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도 있고,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했다. 성경은 아흔 번이나 과부를 언급하며 그들에게 배려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많다.

종원이는 이러한 엄마의 마음을 잘 아는지 잘 커주었다. 명절 때 시댁에 가면 아버지 형제분들이나 고모들이 듬뿍듬뿍 사랑을 주었다. 당연히 조 여사에게도 사랑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댁 식구들이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지내는 기제사에도 참석해 주고 위로해주던 시댁 식구들이었다. 목포와 강진 성전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조 여사는 경주이씨 가문으로 시집을 간 이상 경주이씨 가문에 뼈를 묻을 생각뿐이었다.

불심으로 이겨 낸 세월

조 여사는 어린 시절부터 친정엄마를 따라 절엘 곧잘 다니곤 했다. 친정엄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참석하곤 했는데, 엄마의 손을 잡고 절을 갈 때마다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이 솟구치곤 했다. 그래서 친정엄마가 하는 것처럼 108배를 올리기도 하고 스님의 말씀을 귀를 곧추세우고 듣곤 했다. 시어머니 역시 강진에 있는 사찰의 신도이기도 하셨지만 경기도 여주에 있는 사찰까지 기행을 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래서 친정에 있든 시댁에 있든 자연스럽게 불심은 깊어갔고 마음의 평안이 늘 계속되었다.

조 여사가 어느 한 사찰을 찾아갔을 때였다. 사찰의 주지 스님은 어떤 여승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을 먼저 저승으로 보내고 미친년처럼 방황하며 지내다가 부처님을 만나게 된 여승 얘기였다. 여승은 부처님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들이 죽은 뒤로 머리를 산발한 채 천지를 쏘다니며 지냈습니다. 그러기를 3년 동안 하다가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길들여지지 않은 것을 길들인 사람, 바르게 깨달은 사람,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부처님께 예배를 올린 후 자리에 앉았는데,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설해 주신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 저는 출가하였고, 집 없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환희로운 경지를 얻을 수 있었고, 아들을 잃은 일은 이제 까마득한 옛 얘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슬픔은 사라지고 슬픔이 시작되는 근원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어리석은 집착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번엔 아들을 잃고 그 아들을 이름을 처절하게 부르는 여인에 대한 예기도 들려주었다. 부처님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인이여. 그대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구나. 여인은 그대 자신을 알라. 그대 아들과 똑같은 이름의 사내아이들이 84천명이나 이 화장터에서 다비되었는데 그중에 누구의 죽음을 그대는 서러워하는가.

이에 아들 이름을 부르며 울던 여인이 부처님께 아뢴다.

아아, 부처님께서는 제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화살을 뽑아내고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평화를 얻었습니다. 죽음은 제 아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죽음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불··승에 귀의하겠습니다.

스님은 또 어느 기생 얘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제 자신의 용모와 자태 그리고 행운과 명성에 도취한 나머지 다른 여자들을 깔보고 업신여겼습니다. 어리석은 사내들이 눈독을 들이댄 이 육신을 아주 좋게 단장하고 그물을 던져놓은 사냥꾼처럼 저는 유곽의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육신을 은밀하게 드러내 놓고 요란한 몸단장을 과시하면서 많은 사람을 희롱하고 갖가지 야릇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쾌락에 잠기면 잠길수록 마음에서 괴로움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습니다. 바르게 생각하지 못했기에 저는 욕정으로 괴로워하고 지금까지 계속 들떠 있어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번뇌에 사로잡혀 쾌락적인 생각만 쫓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저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바짝 야위고 흉한 몰골로 저는 7년이나 헤맸습니다.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안락을 얻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끼줄을 구해 들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참하게 살기 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저는 새끼줄을 단단하게 매듭지어 나뭇가지에 매고 그것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때 건너편에서 부처님이 걸어오시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순간 저의 마음은 해탈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습니다. 모든 욕정과 갈등이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조 여사는 스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느 틈에 자신의 마음 가운데 집착의 끈이 없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에도 전혀 부러움이 없어진 것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망의 찌꺼기도 없어진 대신 어떤 숙명도 고스란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었다.

집착이 끊어졌으므로 번뇌가 있을 수 없었다.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슬픈 마음에 눈물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아들이 착하고 예쁘게 커주면 착하고 예쁜 대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이것은 수도의 경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설령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죽으면 그 뿐이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털끝만큼도 마음이 아플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가 있을 리 없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 말이 좀 거창스럽게 느껴질지 몰라도 명경지수와도 같은 평정심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니 하루하루가 즐겁고 하루하루가 잘 지내갔다.

시련이 와도

늘 건강하게만 생각했던 친정엄마가 96년도에 중풍으로 오른쪽 몸을 못 쓰게 되었다. 그런 몸인데도 딸을 위해 종원이를 봐주고 키워줬으니 어찌 은혜가 바다와 같지 않으랴.

어쨌든 종원이를 키우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영국 속담에 자식을 갖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진미를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종원이는 조 여사에게 있어서 빛이요 소금이었다.

그런데 고 3때 종원이가 혈액암에 걸리고 말았다. 놀러갔다가 돌아와서 배가 아프다기에 급하게 병원으로 갔었는데 장이 꼬이는 장중첩이었다. 그것을 수술하다가 발견돼 화순 전대병원으로 옮겨 여섯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2015년도에는 조 여사 자신이 건강검진을 받다가 오른쪽 유방에 암이 생겨 전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이제 5년이 지났으므로 염려할 것까지는 없지만 종원이의 혈액암 수술, 조 여사 자신의 유방암 수술 등을 겪으면서 부처님의 가피로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있음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병마가 찾아오는 시련이 와도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약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불심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어떤 현상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편한 친정아버지를 모시는 일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효부상과 효열비

경주이씨중앙화수회에선 조남현 여사에게 효부상을 시상했다.

--귀하께서는 경주이씨 가문의 며느리로 평소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동기간의 우애도 돈독히 해 타의 귀감이 되어 명문거족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가 지대하므로 제52회 정기총회를 맞이하여 효부상을 드립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회장 직무대행 이 재환.

집안에서는 효부상 수상을 기념하여 효열비를 세웠는데, 앞면은 상장 내용이 새겨져 있고, 뒷면은 공적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창녕 조씨 남현 부인(26)께서는 남편이 안전사고로 사망할 당시 임신 7개월 중이고 그 후 홀몸으로 가정을 지키며 유복자인 아들과 함께 시부모를 찾아 뵙고 성묘와 벌초를 계속 해 왔음.

부인께서는 주변에서 재혼을 권장했으나 백년언약을 지키며 아들을 기르고 교육시키는 일념으로 살았으며, 아들은 대학교 졸업 후 물리치료사로 취업하였음.

남편과 형제자매는 부인(51)의 공적을 높이 받들어 마음을 모아 선산에 효열비를 세웁니다.

2020419

형제 자매 : 병호 병철 병일 병택 병대 현란 영주 현숙 영기 일동

조남현 여사. 참으로 조 여사는 시댁과 친정에 행복과 우애를 안겨준 사람이다. 이는 청춘을 고스란히 바쳐 얻은 행복과 우애였다. 조 여사가 집착을 하고 욕심을 부렸다면 많은 사람이 불행을 맛보았을 것이었다. 자기 자식 남이 키우고 남의 자식 자기가 키우는 일도 있었을 것이요, 어떤 형태로든 아들에게도 불안전한 환경이 되었을 것이며,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얽히고설킨 가족사가 펼쳐지면서 마음고생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혼과 재혼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소나무처럼 절개를 지킨 조남현 여사의 절개에 대해 장덕조 소설가의 광풍(狂風이란 작품 한 대목의 소개를 대신한다.

--세태 인심이 바람에 나부끼는 진개(塵芥) 모양으로 풍세를 따라 이리 날려가고 저리 날려가는 세상에서 한 남자를 향하는 일편단심은 곧 충의와도 통하고 지조와도 상통하는 여인의 절개였다. 이 여인들은 위엄에 굴하지 아니하고 부귀에 나부끼지 아니한다. 임 향한 일편단심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명리이욕이랴.

공자도 논어에서 엄동설한이 되어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조 여사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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