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사람 사는 이야기>강진읍 십자양복점사장 장성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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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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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강진읍 십자양복점사장 장성균 씨
혼신의 정신으로 임하면 희망의 길이 보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의복은 인간생활에 있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식량 · 주거(住居)와 함께 생활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복장은 의복을 입는 법, 치장이나 옷차림까지도 의미하게 된다. 의복은 기후변화에 부응하여 한서를 조절하거나 외부로부터의 장애를 막아 신체를 보호하는 실용성에서 발생하여 점차로 장식성·사회성이 가미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의복衣服은 이처럼 여러 형태의 가치와 편리성 속에 변화성을 가지고 발전되어 왔다. 의복은 피복被服·의류·의장衣裝·복장이라고도 한다. 이 중에서 의복’ ‘피복이 가장 흔히 쓰이는 용어이다. 이들 2가지 표현의 구별이 자주 논의 되는데, ‘의복은 신체의 구간부軀幹部에 착용하는 것을 가리키고, ‘피복은 좀 더 넓은 범위의 모자 ·장갑 ·신 등 신체에 착용하는 일체의 것을 포함한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요즘은 패션의 감각을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하면 그 패션에 맞추어 따라가는 유행성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패션 fashion 어원은 라틴어의 팍티오이며, 만드는 일·행위·활동 등을 뜻한다. 주로 의복 또는 복식품의 유행을 가리켜서 말할 때 사용된다.

이와 같은 재료 면에서의 변천과 발달은 당연히 미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의복의 발달을 촉진시킨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목적에 따라 재료가 자유로이 선택되며, 보다 아름답고 기능적인 의복의 창조가 계속되어 왔다. 현재에 있어서는 지구상의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의복뿐만 아니라 지구 밖에서의 생존에도 적응할 수 있는 의복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발전되어 가는 우리는 옷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자기의 표현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옷이 날개로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장성균 십자양복점사장이다.

  장성균 씨는 누구?

오직 한사람의 모습이 의복으로 하여금 아름답게 보이도록

생각의 손길로 탄생시키며 평생 살아온 사람

 장성균 씨는 혼신의 정신으로 노력을 다하면 희망의 길이보인다고 생각하고 항상 그런 의식을 갖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길이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그 길이 막히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길에 성공이 보이고, 그 성공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다.

장성균 씨는 오직 한사람의 모습이 의복으로 하여금 아름답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그들에게 만들어 준 의복으로 하여금 그 의복을 입는 사람의 가치를 발휘하여 더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생각의 손길로 새롭게 탄생 시키는 사람이다. 평생을 그런 생각으로 자부심을 갖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장성균 씨는 강진 화산리 금곡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께서는 장성균 씨가 어린나이인 10살 때 세상을 떠나는 가슴 저린 아픔이 있었다. 그는 군대를 가기 전 17살 때부터 양복점에서 양복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진에 있는 미화양복점부터 제일양복점을 거쳐 장흥에 있는 운성라사라는 양복점에 근무를 했다. 착하고 충실히 근무해서인지 그 많은 직원들이 있었음에도 사장은 출타를 할 때는 장성균 씨에게 언제나 금고열쇠를 맡겼다. 믿음을 그는 사업자인 사장에게 심었던 것이다. 그는 열심히 모든 것을 배웠다. 배우지 않을 것은 눈여겨보지를 않았다. 사장은 그에게 직장 앞에 있는 양품점에서 운성라사이름을 적어놓고 사소한 물건은 거기서 가져와 사용하라고 했다. 그에게 믿음과 성실성 그리고 남다른 배려를 해준 것이다.

투철한 자세로 내일 할 일까지 미리 해두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해냈다. 집에도 오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꾸준한 계획 속에서 매일 일기를 썼다. 하루라도 빠지는 일 없이 일기를 썼다. 그것은 자기의 반성과 삶의 기록이었다. 가계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것은 남을 도우기 위해 남의 어음을 대신 받아 두었다가 그만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남을 돕다가 화근이 된 것이다. 다른 직원들은 직장을 빠져나갔지만 장성균 씨는 끝까지 남아서 장부정리를 마무리 해주고 나서 그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 때도 사장님 사모님이 서울로 가게 되면 교통비가 필요할 터니 가져가라고 돈을 손에 쥐어 주셨다. 장흥에서 강진으로 걸러오면서 사장님이 보시고 찾을 것을 알기에 강진 탐진강 둑을 숨어서 오기도 했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동안 믿고 잘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양복점이 빚으로 넘어가는 것을 곁에서 보기가 마음이 아파서였다.

그는 어려서부터도 성실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자 하는 일은 끝까지 해냈다. 어린 나이인 14세 때 혼자 집에다 샘을 팠다. 아버지께서는 어린자식이 하는 일이라 그저 설마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차마 끝까지 하겠느냐하는 눈길로 보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매일 쉬지 않고 어린 몸으로 해낸 것이다. 어느 날 샘을 깊이 파다가 큰 돌이 나오자 그 때는 아버지가 보시고 옆에서 대나무지팡이로 집어 보시고 그 큰 돌만 캐내고 나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지 함께 도와 주셨다. 물이 나오자 금곡사 주변의 돌을 주워와 우물 안의 담을 쌓아 오렸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성실하고 끝없이 노력해서 목표를 일구어 내놓는 사람이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변두리 양복점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양복점에 모르던 분이 오시더니 장성균 씨가 일하던 모습을 보고 명암을 주더니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당시 서울 삼일빌딩이라면 큰 건물로 알고 있었던 때다. 그 맞은편에 큰 양복점이 있었다. ‘삼성양복점이었다. 직원들이 100명이나 되었다. 찾아갔더니 그곳이었다. 그분은 그곳에서 한 분야를 맡고 있는 팀장급의 위치에 있는 분이었다. 자기 밑으로 일 잘하는 사람을 두기위해 찾던 중 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오게 한 것이다. 그곳으로 일자리를 옮겨 열심히 배우며 일했다.

어느 날 사장이 돌아다니며 일하는 곳의 개선점을 지적하고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때 장성균 씨의 일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더니 젊은이가 일을 너무 잘해주고 있다. 이렇게 잘해줄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명암을 주면서 찾아오라는 팀장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더니 6개월 지나서부터 특수수당을 장성균 씨에게 주기 시작했다. 일하는 양도 늘고 급여도 늘었다. 그리고 장성균 씨가 만들었던 양복을 문 앞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었다. 그렇게 인정을 받으며 열심히 노력하는데 힘을 기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 입대를 하게 되었고 ’72년에 군복무를 마쳤다. 그는 그리운 고향으로 가서 살면서 그 무엇인가를 이룩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아는 양복점에서 잠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모든 이를 위해 손수 양복점을 차려 오신 손님을 위해 만들어 드리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혼신의 정신으로 노력을 다하면 희망의 길이보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대동맨션 근처에 십자양복점을 개업했다. 그곳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다가 2년이 되지 않고 극장통로에 있는 지금의 자리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온 이후 지금까지 40여 연이 넘도록 한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군대복무를 빼고는 거의 평생을 외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물론 군복무기간에도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을 돕고, 새로 입대한 초년병을 위해서도 상병으로서 할 일을 그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의복에 관한 일도 했다. 군대 생활은 남자들은 안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그 때도 옥수수서리를 하다 걸렸던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그 때 같이 복무했던 초년병 한사람이 mbc 라디오 서경석과 양희은이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장성균 씨를 찾는 방송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못 찾자 군대에서 찍은 사진 뒷면에 강진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고 강진군청 홈피에 올려 그것을 본 군청직원 한사람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후 48년 만에 강진에서 해후를 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인연인지는 모르지만 인연으로 사는 것 같다.

장성균 씨는 십자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언제나 정도 걷기를 지키며 살았다. 영원히 노력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노력의 대가는 받겠다는 것이다.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싸게 받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올바르게 받겠다는 것이다.

옷을 입는 사람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아야 기쁘고 흐뭇하다. 항상 옷감은 최고의 것으로 양복을 제작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디자인 한다. 어디에서 누가 그 옷을 보아도 아! 하는 눈길과 마음이 있어야 장인의 정신으로 표현된 작품이 된다. 그는 그것을 실천사람이다. 자부심 하나로 색다르게 그 모습이 태어나도록 밑그림을 그리고 자르고 접고 바느질하는데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정이 담긴 표현 속에 이루어진다. 손길로 오는 아름다운 표현의 길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이름 모를 또 다른 마음에 품고 있는 꽃이다.

지금까지 십자양복점 장성균 사장의 손길로 태어난 옷을 입은 사람들을 거명하면 누구나 아는 높은 지위의 관직에 있었던 분들이 많다. 그런다고 해서 서민들은 없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어려운 환경의 변화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좀 더 좋은 옷이 필요했을 때장성균 씨는 먼저 손길을 내밀어 옷 한 벌을 선물로 입도록 하여 그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품위를 다시 찾게 만드는 일에 봉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런 봉사, 다른 표현으로 불가에서 말한 보시의 정신으로 사람을 대하다 오히려 더 많은 손님을 접하게 되는 일이 생기었다. 서울에서 강진으로 낚시를 왔다가 십자양복점 옷에 반해서 그만 양복을 맞추어 입고 서울에 가면 주위의 사람들이 감탄을 하게 된다. 시골 촌에서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다고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강진에서 만든 옷감보다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우수하고 값도 절반 수준이어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항상 최고의 양복기지로 아름다고 새롭게 디자인하여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주는 것을 자긍심으로 알고 그렇게 살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오신 손님들은 처음에는 시골이라서 가는 믿음이 별로 없다가도 한번 옷을 해 입으면 다시 꼭 찾아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며 선물을 주고 가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이 감동을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옷을 입는 것은 옷을 입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옷을 만드는 사람도 행복한 것이다.

한번은 서울 어떤 분이 장성균 씨에게서 양복을 맞추어 입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세계기능올림픽에서 금상을 받은 양복점에 가서 옷을 맞추어 입으려고 갔는데 값도 너무 높고 옷감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 면에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아 다시 십자양복점 장성균 씨에게 와서 옷을 맞추어 입으면서 당신은 참으로 정의로운 사람이요.”라고 말했다. 그럴 때 어떤 믿음과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주는 삶의 이야기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떤 높은 지위에 있던 분의 장인어른께서 광역시에서 제일가는 양복점을 운영해서 장인께서 만들어준 양복만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십자양복점을 우연히 들렸다. 그 때 입고 있던 옷이 외관상 보기에 호주머니가 약간 버러지는 느낌이 있어 장성균 씨가 그분에게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양해를 구해 승낙을 받고 잠간 두어 군데를 수정해서 입도록 했다고 한다. 다음에 처갓집을 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장인어른께서 깜짝 놀라 말하면서 그 양반 대단한 분이시라고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로 옷을 수선 받았던 분과 직원들도 십자양복점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천법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도 오랜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 그곳을 지키며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고 살고 있는 그의 삶이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정관웅-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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