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와서 문이 열려 있는 어머니 방을 보았을 때, 침대에서 오그리고 잠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아기처럼 잠들어 있었는데, 목 언저리에 놓은 두 손은 배 속 양수에 있는 태아처럼 쭈글쭈글했다. 이제 내가 엄마고, 구순 엄마는 아기가 되어 나를 기다리다 잠이 들어 있다. 우리 엄마는 강인하게 살아온 분이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치마를 입어서 여자지 남자 못지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들 말했었다. 그렇게 세상을 헤쳐 나온 엄마가 나를 보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신다. 내가 자신의 기질을 닮아서 바쁘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엄마는 평생 놀아본 적이 없는 분이다. 젊어서는 농사를 지으셨고, 도시로 나와서는 장사를 하셨는데, 본인말로는 어떤 이에게 외상값을 떼어 본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악착같이 사셨다. 그 악착은 세상 모진 풍파에 자식을 여럿 잃어버린 어머니의 한이었고 그래서 두 딸만은 잃지 않고 잘 키워야 한다는 집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나에게 말씀 하신다. “나대고 살지 마라. 내가 나대고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아픈 것뿐이다. 맨날 놀고만 산 여자도 나만큼은 살더라. 결국 남는 것은 아픈 몸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늘 엄마가 언제 들어오시나 기다리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나를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어 있다. 그런 나에게 “나대고 살지 말라”는 명언을 남기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코로나가 무서워서인지 매일 목욕을 하시고 자면서도 마스크를 쓰니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나대시는 분은 분명하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장가처럼 들려주고 싶은 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떠올랐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태어났을 때 80살인 사람이 있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말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80세의 늙은 외모로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양로원 앞에 버려져 노인들과 생활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제목의 영화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삶과 죽음 그리고 젊음과 늙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노인 모습의 벤자민 버튼이 오로지 일하기 위해 배를 타면서 인생의 멘토인 선장을 만나는 것은, 삶은 스스로 노를 저어서 앞으로 나아가며 절망하지 않는데 있는지 모른다. 벤자민 버튼이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면서 우연히 단추공장으로 성공한 아버지를 만나 상속으로 부자가 되고, 평생 못할 줄 알았던 멋진 사랑을 하며, 점점 멋진 젊은 남자로 변해간다. 그러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는 늙어가고 자신은 거꾸로 아기가 되어가기에 그 행복은 영원할 수 없다. 결국 버튼의 삶은 아내와 딸을 떠나 혼자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꿈이 예술가였다는 마이크 선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예술은 온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몸이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는 전쟁 중에 죽어가면서 자신의 예술이 아까운 듯 고통 속에서도 통통거릴 수 없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 갑작스럽고도 허망한 죽음은 정신과 신체가 분리됨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있는 것을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번개에 7번 맞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고, 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세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어머니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는 것. 삶이란 찰나의 순간이 운명의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는 것을 벤자민 버튼과 그 주변 인물들이 말해준다. 수많은 만남, 인연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한다는 답은 없지만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이 삶이라고 말해준다. 벤자민 버튼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진실 되게 살아간 것은 80세에 태어나 거꾸로 사는 삶이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결국 아기가 된 벤자민 버튼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할머니가 된 데이지의 모습에서 두 사람은 슬픈 운명으로 여운을 남기지만, 그 안에는 젊음, 행복, 사랑, 좌절, 분노 그 뒤에 순리대로 살든 거꾸로 살든 되돌 릴 수 없다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말한다. 침대에서 아기처럼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한평생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나대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말 속에 있는 것일까 싶었다. 어머니는 한 송이 예쁜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게 애쓰며 살아오셨다.
요양원 앞에 버려진 노인 아기를 키운 흑인 요양사 퀴니의 말처럼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우리는 단지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퀴니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80세 벤자민 버튼은 평생 노인일 것 같았던 삶에서 젊어지는 또 다른 인생을 맛볼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기념일이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광복절이다. 이런 날 수도권에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게 아니라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지고 있다는 뉴스가 가득하다. 긴 장마와 수해로 상처 받은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또다시 여름은 폭염이 시작되고 있다. 여름이 어서 지나고 가을이 되어 예쁜 국화꽃을 빨리 보고 싶어지는 날들이다. 벌써 마음은 가을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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