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밑줄을 그었다.
‘꿀벌들이 의도적으로 꽃씨를 퍼트려 꽃을 번식하는 일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꿀벌들은 꽃에 있는 꿀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다리에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전달하면서 수분작용을 도와 언덕을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채운다’
어제는 베란다로 들어온 말벌을 잡으려다 벌에 쏘인 아들 때문에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왔는데, 오늘은 책 속 꿀벌이야기에 감동을 한다. 어제는 왜 하필 벌이 집안에 들어와 시끄럽게 하더니 오늘은 책 속의 꿀벌이 나를 감동시키는가. 아름다운 꽃밭이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은 꿀벌의 의도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이듯 인간도 자연의 한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읽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의도적으로 벌침도 맞는단다. 너는 그 벌침을 그냥 맞았다고 생각해라” 이렇게 말했지만 그 벌침이 한방이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크게 맞았다면 큰 문제였을 것이다. 벌에 쏘인 팔뚝은 아직도 벌겋게 부어 있다. 그래도 어제의 벌과 오늘의 벌이 내게는 달라져 있고, 어제는 벌에 화가 나고 오늘은 벌 때문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지난번에 대화를 나누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었다. 나는 가방에 항상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순간 기억하고 싶은 것은 메모를 해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다 기억하고 사용하느냐 하고 묻는 말에 그렇지 못한다고 했다. 수첩을 꺼내 한 줄이라도 메모를 해두는 것은 순간 기억하고 싶은 습관일 뿐이다. 요즘처럼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디지털 세대에 끼지 못하니 수첩에 메모해야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아날로그 시대인의 한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럼 그 기억하고 싶었던 수첩들과 수많은 책들에 밑줄을 그었는데 그것들을 다시 보는 날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대답에도 역시 한번 서랍에 들어가면 다시 보기 힘들지만 그 지식은 무의식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가끔 힘든 시기를 보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알고보면 많은 날들이 그냥 지나가버렸고, 소중하다고 밑줄을 그으며 또 수첩에 적었던 것들은 모두가 옛날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더 고통이기에 그 어떤 것들도 잊어야만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고 새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랜터 윌슨 스미스의 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통해 순수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내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 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 순간에 불과 함을 기억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코로나19로 힘들고, 연이어 밀고 오는 태풍으로도 힘든데,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 개천절에 또 집회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 세상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지만 시끄러운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는 혁명의 시대와도 같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난다고 해서 천국 같은 날들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문재인 정부가 독재라고 써놓고 외쳐댄다. 그 어떤 독재나라에서 그런 문구를 써 붙여놓고 대중을 모아 선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의사들은 정부와 협의를 하고도 말을 바꾸고 기득권을 놓지 않지 않으려 정부를 뒤흔들고 있다. 이처럼 지나온 많은 부분의 잘못된 가치를 바로 잡는 것이 혁명이라는 것이고, 그 가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지금이 좀 시끄러워도 행복한 시대라고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벌에 쏘인 아들 때문에 한바탕 시끄러웠지만 벌겋게 부었던 부분은 점점 가라앉고 있다. 그 붓기가 가라앉으면 언제 벌에 쏘였냐 하고 팔뚝은 원래의 피부를 찾을 것이다. 죽을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도 수첩 속에 있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도 수첩 속에 있다. 그러나 의도적이지 않았던 벌들이 뿌려놓은 꽃씨는 산과 들, 언덕에 그리고 집안 정원에 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나쁜 언어로 선동하고 추한 행태를 보이는 무리들이 종교의 탈을 쓰고 벌떼처럼 모여들어 쏘아댄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결국 꽃씨만을 남긴다는 사실, 태풍이 할퀴고 간 자국은 남았지만 모두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찬바람이 나고 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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