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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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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김도연 강진소방서 서장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에 덕을 보는 일보다 조금 손해를 보고 사는 것이 마음이 더 편안 사람

김도연 강진소방서 서장 

삶을 바라볼 때 자기를 낮추어 바라봄과 자기를 남보다 위에 놓고 바라봄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소한 일에도 그 누가 되었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어 놓고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낮추어야 그 바라봄이 눈 안에 보이기 때문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알 수 있으니, 타인에게 묻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고사는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공자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위나라에는 공어孔圉라고 하는 대부가 있었는데 죽은 뒤에 시호를 문이라 하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불렀다. 이 일을 두고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자공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그 공문자가 남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는 등 평소 행실이 도저히 문이라는 시호를 받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문자의 인간성이 이와 같았는데도 시호를 문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공이 의아하게 여겨 물은 것이다.  그 물음에 공자는 그가 영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이다(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문야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라고 대답했다.

불치하문은 바로 공자의 이 말에서 유래한 성어로, 오늘날에는 겸허하고 부끄럼 없이 배우기를 즐기고 진심으로 남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수도인의 입장에서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연운에 따라 도인들은 사사상전師師相傳으로 맺어져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 서게 된다.” 수도과정에서 도인들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 서게 되므로, 윗사람은 물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함은 불치하문의 고사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 ‘배움은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둘이 함께 보완해 가는 것을 뜻하는 상호보완相互補完적인 관계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보완의 의미야말로 상생으로 도통진경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 수도인에게 도전님께서 사사상전을 통해 알려주시고자 하신 깊은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남보다 나를 낮추어 먼저 바라보아주는 상생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는 김도연 강진소방서 서장을 찾아간다.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누구?

내가 먼저 다가서서 화합을 찾으며 덕을 베푸는 일을 먼저 하고 참된 일에 몰입하여 전력 질주하는 사람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에서 덕을 보는 일보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사는 것이 마음이 더 편안 사람이다. 각종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하며 동료애를 가지고 그들의 모범된 사례들을 찾아 최선을 다해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다가서서 화합을 찾으며 덕을 베푸는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이다. 참된 일에는 그 일의 가치를 알고 몰입하여 목표를 위해 전력 질주하고 그 결과를 얻고 마는 사람이다.

그는 전남소방본부 행정계장으로 있을 때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수습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수습과정에 어려움이 참 많았다. 잠을 자는 것도 차에서 잠시 자는 것인지, 자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의 상황이었다. 오직 수습과정에 뛰어 들어 업무수행 하는데 정신이 없었고 그 책무에 전력을 기했다. 열약한 환경에서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사고현장의 유가족을 위로하는데 총력을 기우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416일 오전 9시경, 대한민국은 믿을 수 없는 소식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날인 415일 오후 9시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더구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350여 명을 포함해 476명이 타고 있는 대형 여객선의 대형 참사였다. 세월호 같이 큰 여객선이 허망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그것도 6825t급 규모인 대형 여객선이 심한 파도나 안개도 없었던 바다에 침몰하고 만 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서 발표한 해양사고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나라 해역에서 전복사고가 난 배 118척 중에서 여객선은 단 한 척도 없다. 어선이 뒤집힌 경우가 8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예인선이나 군함, 요트가 나머지다. 암초에 걸리지 않고서는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이 이렇게 멀쩡히 항해하다가 뒤집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 사고가 드문 일이라는 말이다.

그는 세월호 당시 한 달 동안 그곳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시신안치, 운구, 이송 등 업무를 총괄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그 통곡의 한의 울름소리는 바다와 하늘을 덮고 감히 그 울음소리를 피하지 못하고 같이하는 한과 눈물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특히 시신을 임시 안치소로 옮겨 사람의 생김새와 옷차림(인상착의人相着衣), 소지품 등을 보호자에게 알리면 기다렸던 가족 분들께서 그 전달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확인하면서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말 할 수 없는 가슴의 아픔이 파도를 쳤다.

그 당시 죽은 딸의 뺨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찢어지는 심장과 사지가 찢기는 울음소리 속에서 소방관들도 얼마나 같이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당시 김도연 전남소방본부 행정계장도 함께 울고 또 울고 얼마나 울었던지 며칠사이 4kg의 몸무게가 빠져나갔다.

어느 할머니는 이성을 잃고 어서 빨리 일어나 집으로 가자며 시신의 살을 후벼 상처가 날정도의 실신 직전의 울부짖음이었다. 간신히 뜯어 말리는 현실 앞에 그 누가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겠다고 말을 하겠는가 싶다. 임시안치소에서 행정 절차를 통해 안산으로 운구 이송을 하면서도 가슴은 울고 있었다. 이 또한 한의 소리는 바다를 덥고 땅도 하늘도 울었다. 그런데 그곳의 울음소리는 달랐다. 그 우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의 파장부터 달랐다.

김도연 전남소방본부 행정계장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달랐다.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달랐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피를 토하는 애절한 죽음의 울음이었다.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868월 여수소방서에 첫 발령을 받았다. 고흥, 담양 군청을 거쳐 ’95년 전남도청에 소방본부가 개설 되고 그곳 광산동 전남도청에서 15년을 근무했다. 92년에 광역소방체제로 개편되면서 95년에 소방본부가 전남도청에 개설 된 것이다. 승진시험을 두 번 거쳐 행정감찰 6년을 했다.

그는 여러 곳에서 근무를 했다. 나주소방서 행정팀장, 소방서 본부 근무, 소방항공대장, 감찰계장 및 인사계장(행정계장), 승진해서 전남소방본부 방호구조과장, 등 전반적인 행정전체를 관할하는 업무를 수행했을 했다. 여러 요직을 맡아서 직무수행을 열심히 했다. 담양, 영광, 화순, 나주 소방서장을 거쳐 202011일자로 강진소방서장으로 부임했다. 강진소방서장은 장흥까지 관할하고 있다. 앞으로 장흥소방서가 올해 개설될 예정이다.

 

그는 나주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슬하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께서는 한학공부를 많이 하셨다. 그런 환경에 자라서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고사성어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버지께서는 40여년을 넘도록 마을 지도자 역할을 하셨다. 자녀교육에 관심도 각별하셨다. 24살 딸들에게도 엄하시어 회초리를 내리칠 정도였다. 그 때 회초리를 맞은 여동생이 면장을 거쳐 나주시 문화예술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아버지의 성품도 많이 닮았다. 그런 그는 어린 시절 활기가 넘쳐 그 활기를 주체를 못하고 향기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아버지께서는 둘째 도연이가 공부를 잘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보낼 계획이었으나 종행무진 활기를 주체를 못하고 돌아만 다녔으니 그 때 부모마음을 알듯하다.

그는 군대를 갔다 와서 인생의 정상계도를 달렸다. 학교도 스스로 독서실에서 공부해서 대학까지를 졸업을 했다. 항상 공부는 자신이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고 해결을 해냈다. 사회생활도 친화력이 있었기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던 덕분에 아는 지인이 소방공무원으로 있는 것을 보고 시험을 쳐서 합격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버지 말씀 중에 평소 듣고 자랐던 고사성어중에 불치하문 不恥下問,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불유식...이 있다. 항상 겸손하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뜻을 새기고, 이 구절을 항상 새기면서 남에게도 내가 먼저 다가서서 바라보아주고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먼저 베푸는 사람으로 살았다.

어떤 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를 위해 성취의욕을 갖고 전력 질주하며, 소방공무원으로서 민중의 지팡이가 되도록 노력하고 내 가족처럼 여기며 지금까지 해왔다. 어떤 일을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그 것에 몰입하여 성과물을 이루어야 한다. 그는 승부욕이 강한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근무 할 때도 도청으로 불러들이는 일들이 많아 그곳에서 근무를 할 때가 많았다. 그러한 일들은 남들은 들어가려 해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소방업무란 것이 항상 응급상황이라는 것이 앞에 놓여 있다. 그가 일선에서 근무를 할 때다. 숨이 넘어가는 전화를 받았다.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를 물어보고 심폐소생술을 가르쳐주고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주의 사항을 안내를 했다. 도착해서 상황을 파악 해보니 할머니가 혼자 사시면서 강아지를 길렀는데 그 강아지가 숨을 쉬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자식보다 중요하게 여기시는 외로운 독거노인의 마음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 그 뒤부터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보는 그 마음은 점점 더 커갔다.

나주에서 생긴 일이다. 화재는 발생하는 대상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으나 30초 내외 인명을 구해야 한다. 그 화재사고는 현장에 출동해보니 할머니께서 손자가 안에 있다고 춤추듯 손짓하는 상황에 있었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구해내는 일은 구급대원에서부터 그 아이의 생명까지도 한순간에 결정이 된다. 그 때 손자를 구해놓고 나니 서로 끌어안고 우는 모습에서 더욱 의무감에 무게가 실렸다. 그는 그 때 대원들에게 몸이라도 좀 닦으라고 금일봉을 그 자리에서 전달했다. 그것은 보살핌이고 덕을 베푼 것이며 소방관들의 노고와 사기를 진작 시키는 일이다.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이런저런 일들을 그동안 많이 실천해 왔다. 방송을 통해 여성소방대원이 인명구조를 하다 죽음에 이르러 있던 동료 직원의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이야기를 <지금은 여성시대> 방송에 직접 내보낸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두 분! 저는 전라남도소방본부에 근무하는 김도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한 소방대원의 헌신적인 아름다운 이야기, 죽음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 여성시대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981224일 오후 전남 순천시 서면 선평리 부근에서 알콜성분의 위험물을 싣고 가던 탱크로리 차량의 전복으로..”

시작되는 방송은 들을수록 책임감과 죽음의 문턱에 있는 동료를 구하고자 여자 소방관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해 냈던 사랑과 희생의 감동 이야기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 하기는 어렵지만 이렇다. 981224일 오후 440분경 전남순천시 서면 선평리 선평교 부근에서 메탄올 3를 싣고 서울로 가던 탱크로리 차량과 엑센트, 프린스 승용차의 충돌사고로 인근 주택가로 돌진 전복되면서 화재사고가 나고, 그 현장에서 소방대원의 필사적인 진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화재가 난 차량의 탱크(메탄올)가 폭발하면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10여명의 사망을 당한 비극적인 일이였다.

그 때의 상황은 치솟는 화염, 운전석에 끼어 불에 타고 있는 운전기사의 처절한 모습, 탱크가 폭발 할지도 모른 급박한 상황과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소방관 30여명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탱크의 뒷부분이 화염에 데워지면서 펑하고 터져 화염에 휩싸였다.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던 7~8명의 구조대원도 불에 휩싸여 아비규한 이 되었다. 다른 소방관들은 불타고 있는 그 곳에 진화작업을 했다.

그 때 화재진압간부로서 이흥노 소방관(순천소방서 방호과장)이 몸을 사리지 않고 진화 중 알콜이 몸에 뒤범벅이 되고 차량 뒤의 탱크가 폭발하면서 아비규한의 상태가 되었다. 이흥노 소방관은 불에 휩싸였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쓰러지고 말았다. 소방대원들은 가슴으로 타는 눈물로 화재를 진압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검게 타버린 아수라장의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광주로 긴급하게 후송했으나 그 때 당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흥노 소방관을 서울 화상전문병원으로 다시 긴급하게 헬기로 후송했다. 이송 헬기 안에는 보호자, 병원의사 구급대원이 동승했다. 환자의 입과 코에서 분비되는 이물질을 수동 제거기로 빨아들이는 일을 시작했으나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의료진이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다. 이송 중에 상공에서 사망할 수 있는 난감한 위기의 상황이었다. 이 때 조신자여자구급대원은 환자의 입과 코에 들어있는 이물질을 빨대를 이용하여 직접 자신의 입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뒤 서울에 도착해 의료진에게 인계하며 희미해진 이흥노 방호과장에게 조신자구급대원은 과장님! 힘내세요. 괜찮을 거에요. 저는 내려가야될 것 같아요, 순천에서 뵈어요.” 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보통사람으로선 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나 어떻게든 살려 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의 가래의 이물질을 입으로 빨아내는 행동은 구급대원의 사명감을 뛰어넘는 숭고한 사랑과 희생정신이었다.

혼수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며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의 화상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18일의 시간은 그의 고통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끝내 1999111일 오후 시민이 그에게 부여한 화재진압의 소임을 다하고 사랑한 가족과 동료들을 남겨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인륜과 도덕이 문어지고 사회질서가 파괴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내 몸을 바쳐 남의 생명을 구하고 보호한다는 숭고한 희생과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조신자> 여자구급대원이 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 곁에는 이렇게 삶을 아름답게 빛내는 이가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있어 행복한 것이다.

이렇게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아름답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여성시대 가족에게 방송을 통해 여자의 위대한 정신과 여성 구급대원의 사명감을 알리는 일에 앞장을 섰다. 그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숨어있는 사람이다.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강진으로 부임해서 산업단지 공장과 노인요양병원, 요양원의 화재예방 대책을 위해 비상사다리를 옥외로 설치하도록 권장하여 설치하였다. 노인 안전문제와 4

안에 소생시키는 심폐소생을 할 수 있도록 전 군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차적 교육 계획 및 실천을 하고 있다. 마을 및 학교, 직장에서 신청을 받아 전문 강사가 파견하여 실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갖고 인명을 소중히 여기고 구할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강진의 119구급대가 병영, 도암, 마량의 4개가 있다. 그는 앞으로 장소가 협소하여 100평 정도에 국비7억 예산으로 작천 119구구급대 건물 추진 중이다. 칠량에도 10월에 배치할 계획이다. 성전면에도 119안전센터를 강진성전상단에 1,000평 부지에 2층 건물로 내년에 신축 개설할 계획이다. 그는 이렇게 되면 거의 지역별로 하나씩 119구급대가 갖추게 되어 강진전체가 안전에 대한 빠른 대처로 확충된 운영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칠량의 경우 자연 환경도 살려 은행나무 한 구루를 자르지 않고 미래의 환경 속에서 숲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힘썼다.

김도연 강진소방서장은 항상 오늘만을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군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아 나서는 은혜로운 마음이 있다. 맑은 미소로 그리고 적극적 자세로 실천해 가는 그의 마음은 오늘도 배려와 먼저 상대를 바라보아주는 아름다운 마음의 꽃밭으로 가득하다.

 

 정관웅

힐링코칭᛫뇌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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