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그늘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눈물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런 눈물이 시대의 멍에가 되곤 하는 법이다.
2008년 1월 30일 <이명박 인수위를 보며>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새해 사자성어로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라는 ‘시화연풍(時和年豐)’을 선정했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일성이었다. 그러나 취임 전 단계에서부터 대통령인수위 활동은 여러 논란을 낳으며 태평을 무색케 했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이 영어몰입교육을 부적절하게 주장하며 “처음에 미국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더라. 그래서 ‘아뤈지’라고 했더니 알아듣더라.”라는 말을 한 뒤 ‘아뤈지 정권’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인수위가 국가 비전을 세우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휴대전화 수신료 인하, 출퇴근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공무원시험 가산점 같은 편중되고 자극적인 내용만 발표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재선 의원 이낙연은 당시 인수위 활동을 비판하면서 “선택의 그늘에서 희생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런 눈물리 시대의 멍에가 되곤 하는 법이다.”라면서 그늘과 눈물을 언급했다. 시민들의 삶에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의 그늘에서 눈물짓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회의 그늘을 없애가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생각했다.
이낙연의 국정감사 현장취재보고서 제7탄은 제목도 <개발의 그늘>이었다. 그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소중한 삶의 터전에서 쫓기듯 내몰린 이웃들을 만나러 갔다. 서울 난곡동과 종암동 재개발 지역 등 수도권 임대주택 10여 곳을 둘러보고 입주민, 관리소 직원 등 40여 명을 만나 영세민들이 거주하는 영구임대주택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이곳을 취재하기로 한 동기에 대해서는 보고서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흑자는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흑자는 자본주의를 무시한 감상적 접근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취재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해보기로 했다. 아직도 개발의 그늘에서 수많은 사람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수많은 세입자가 철거에 쫓겨 삶의 터전을 터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취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현실을 드러내고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취재를 계속했다.”
그는 보좌관에게 영구임대 주택에 사는 주민의 방 안에 직접 들어가 보고, 표정까지 살피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내몰린 주민들은 어떻게 해달라는 것보다는 그저 자기네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말을 하는데, 정부도 지자체도 그들의 사연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보좌관에게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듣고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보고서는 “힘들게라도 살아보려는 사람을 나라에서 도와주지는 못해도 살게는 내버려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민의 절규를 전하며 ‘빈곤층 청소’가 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을 질타했다. 개발로 인해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있는 이들의 사연부터 관계공무원까지 다양한 입장을 전하며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렇게 이낙연은 사회의 명과 암, 빛과 그림자를 놓치지 않았다. 소외된 곳에 대한 관심은 농촌 출신 정치인으로 표를 의식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가 기자 시절에 쓴 기사에서도 이낙연만의 눈빛을 찾을 수 있었다. 1983년 상반기에 쓴 부촌과 빈촌은 서울의 양극화를 집중 조명한 기획기사다. 이낙연 기자는 서울의 지도를 펴놓고 조명하는 시선으로 기사를 시작했다.
“서울의 현판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이곳에서 반경 5킬로미터의 동그라미를 그려보면 그 안에 몇 개의 산이 들어온다. 그 가운데 하나는 관악구 방배동의 산이고, 또 하나는 동작구 사당동의 산이다. 사당동 산과 방배동 산은 직선거리로 3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 이들 두 개의 산은 예전 집들이 들어서 있기 이전과 같은 똑같은 산이 아니다. 더구나 이를 두 개의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른다. 사당동 산동네는 가마니 촌이다. 서울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동네 중의 하나다. 방배동 산동네는 억대부촌으로 불린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직선거리는 불과 3킬로미터지만 삶의 간극과 마음의 거리는 절대 수치화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이낙연은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서울의 달동네 현자응로 옮겨간다. 그가 쓴 기사는 소설가의 문장처럼 묘사가 촘촘하기 이를 데 없다.
“질척하고 시끄러운 시장골목을 지나 사당 3동의 산동네를 올라가 본다. 너비 2미터 가량의 좁고 가파른 언덕길이 양편으로 낡은 판자 대문을 한 대지 6평짜리 블록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집 앞마다 빨래가 내걸린다. 그 빨래들 틈 사이에서 때 묻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왁자지껄 딱지놀음에 열중이다. 얼굴이 푸석푸석한 아낙네들은 멀거니 햇볕을 쬐고 있거나 이웃과 시름 섞인 얘기를 나눈다. 남정네들은 일을 나가고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할 일 없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문다. 이 마을에는 가구당 한 달 수입이 10만~30만 원쯤 되는 목수 미장이 등 건축 잡부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주로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낙연이 의원이 되어 정책보고서에 담은 ‘난곡동과 종암동’은 그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다. 난곡동은 그가 신혼 시절에 살았던 곳과 가깝고,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러 다녔던 곳이며, 종암동은 기자 시절에 그가 머물던 누나네 집이 있던 곳이다.
좁은 골목을 걸으며 꼴똘했을 이십대 젊은 기자. 그는 훗날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총리가 되었다. 남들은 그가 양지에 서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추는 언제나 세상의 그늘진 곳에 드리워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 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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