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현숙 기자의 영화로 읽는 명작소설⓺ 무진기행(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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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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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기자의 영화로 읽는 명작소설⓺ 무진기행(안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 당신의 무진은 있나요?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그 안개는 어쩌면 서울과 무진 사이에 놓은 하나의 장막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주인공 윤호중은 각박한 서울에서의 삶을 잠깐 동안 무진에서 도피하려 했지만 안개 속에서 보이는 것은 자신의 자화상뿐인 것이다. 그래서 명산물이라고 했던 것일까.

김승옥 소설가의 무진기행은 한국문학사상 가장 화려한 찬사를 받은 단편소설이다. 특히 문학도들에게는 꼭 필사를 해야 할 교과서 같은 소설로 통한다. 무진기행은 1967년도에 영화 안개로 제작되었는데 김승옥 작가가 직접 각색하였고 신성일 윤정희 배우가 열연한 추억의 한국영화다. 흑백 영화 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주인공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마치 그 옛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지만 꼭 살았던 것처럼 기억나는 듯 아련하다. 그것은 안개에 가려진 듯 했다가 다시 햇빛으로 나아가 웃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이고, 때로는 그 안개 속에서 머물러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허무함이다. 주인공 윤호중은 서울의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하여 출세 길에 있는 서른세 살의 남자다. 그는 재직 중인 제약회사 주주총회에서 전무자리에 앉히려는 아내와 장인의 권유로 잠시 무진으로 내려온다. 무진은 그의 고향이자 젊은 시절 어둠의 그림자가 안개처럼 드리워진 곳이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안개 속에 가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골마을이다. 무진에서 고시에 합격하여 세무서장을 하는 친구 조를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 끼어 있는 하인숙이라는 여선생을 보게 된다. 서울에서 성악을 전공했다는 하인숙은 밤마다 속물 기질의 조 집에서 세무서직원들과 함께 화투를 치며 심심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조가 그날 노래를 부탁하자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그 여자의 <목포의 눈물>은 이미 유행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비부인>중의 아리아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양식의 노래였다. 그 양식은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과는 다른 좀 더 무자비한 청승맞음을 표현하고 있었고 <어떤 갠 날>의 그 절규보다도 훨씬 높은 옥타브의 절규를 포함하고 있었고, 그 양식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의 냉소가 스며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 가는 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며 있었다.‘

하인숙은 무진의 안개 같은 여자이다. 무진의 안개는 밤 12시면 울리는 통금 사이렌소리와 함께 밤새 무진을 적막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한동안 자신을 잃어버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어서 무작정 흘러가는 시간이고, 현실을 떠나서 또 하나의 주어진 현실로 떠나는 도피시간이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요. 하여튼 서울에 가고 싶어요. 절 데려가 주시겠어요?”

생각해 봅시다.

꼭이에요. ?”

그녀는 처음 만난 유뷰남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한다. 어디 갇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갇힌 새처럼 날아가고 싶어 하는 절규의 지저귐을 한밤에 윤호중에게 흘려 놓는 것이다. 무조건 서울에서 왔다는 이 남자에게 여자는 무조건 서울로 데려가주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밤새 청산가리를 먹고 방죽에서 자살한 여인의 시체처럼, 이미 그녀의 절규는 이 무진에서 시체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다음 날 둘은 오래된 연인처럼 서울이라는 지명 하나로 하나가 되는 듯하다. 그녀는 서울에 가고 싶어요. 단지 그것뿐예요.” 라고 또 지저귄다. 서울에서 공부하여 시골 음악선생으로 있는 처지를 서울에서 왔다는 이 남자에게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그녀는 맡겨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선생님,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 라며 전 선생님께서 여기 계시는 일주일 동안만 맛있는 연애를 할 계획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남자는 서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현실은 다가온다.

“27일 회의 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이라고 쓰인 아내의 전보를 받는다. 모레면 무진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윤호중이 고향 무진에서 속물처럼 느껴졌던 친구 조보다도 더 속물인 자신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하인숙을 잠시 사랑한 것은 자신의 그 옛날 어둠속의 자신을 본 것, 그녀를 햇빛 속으로 끌어내고 싶은 욕망, 무진을 떠나 서울에서 출세의 길로 달려가는 자신의 과거는 이미 무진의 안개일 뿐이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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