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61회)
도암면 석천리 성자마을
김갑인할머니(86)
“아버님, 꼭 큰사람 똥댕이만 허요. 아따 너는 큰 사람 똥댕이도 봤는게비구나”
“게으른 것들은 본시 그래롸알.”
깨밭에 앉아 맨손 맨발로 땅을 고르시던 김할머니가 일어서려 하지만 구부러진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낮 두시에 일하시는 김할머니께 해가 좀 가신 후 일하시지 그러냐고 물었더니 하신 말씀이다. 알고보니 어제가 시아버지 기일이어서 조금 전에야 큰 아들이 갔다는 것이다. 아들이 떠나자마자 깨밭으로 나온 것이다.
“아들이 포크레인으로 다 파불란다고 해, 그래서 가분게 이라고 나와 있어. 그라도 그냥 있겄소, 마음은 청춘이여······무장청춘이여.”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티끌하나 없는 깨끗한 마당과 깔끔하게 정돈된 주변이다. 하지만 김할머니는 대뜸 말씀하신다.
“우리집은 아조 볼 수가 없어, 지저분해가고·······나 발 시치고 오요.”
스무 살에 도암 봉황마을에서 동갑인 갑자생에게 시집와 스무 살에 청상과부가 되었던 시어머니는 큰 집 아들 성제 중 둘째 아들을 양자로 들여 키웠다. 부잣집 딸로 자랐던 시어머니는 언행이 한결같은 분이었다.
“밥만 먹으면 일만해, 같이 밭을 매며 걸어가도 나는 왜그렇고 떨어진가 몰라, 질쌈을 해도 떨어지고 평생에 시어머니를 못 따라갔어. 우리 시어머니처럼 점잖으까······.”
아무것도 고생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김할머니는 애잔한 표정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세월들을 더듬었다. 107살이던 제 작년 밤 한 방에 앉았다가 그대로 돌아가셨다는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구구절절하다. 평생 시어머니와 남편과 셋이서 한방에서 잠을 잤으나 어려운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다.
“다 못 키웠지만 낳기는 10남매 낳았소. 시어머니가 너그까지 자거라 소리 안헌디 어쩌롸알.”
주변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김할머니는 낙천적이고 유머스럽다.
동지섣달 긴긴 밤에 밤새도록 질쌈질을 하던 시어머니는 그 곁에서 잠을자도 ‘어찌 너는 잠만자냐 소리 한 번 안하시던 시어머니’였으며, 못해도 못한다고 말 한마디 안하고 묵묵히 일만 하시던 시어머니, 마지막 돌아가시던 날 처음으로 미음을 떠 먹였던 일이며, 생전 옷깃 속으로 비치는 가슴살 한번 안보여주시던 시어머니였다. 평생 일로만 살아서 허리가 구부러져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주무시던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김할머니의 표정에 그대로 묻어난다. 청상과부로 사셨던 시어머니는 ‘누가 와서 어떤 과부가 다른 영감하고 눈 맞았더라고 하면, 아야, 나는 생전 누가 쳐다 보도 않고 연애하자고 헌사람도 없더라······.’라며 환하게 웃곤 했었다면서 감히 누가 쳐다볼 수 없는 위엄이 있는 분이었다고 회상한다.
김할머니의 생은 온통 시어머니가 전부였을까 싶을 정도로 시어머니와 나눴던 정겨웠던 이야기 뿐 정작 본인은 편한 세상을 살았다는 말뿐이다.
“우리 엄니는 눈물바람한번 안하고 서러워도 안하고, 삐치지도 않고, 밥만 먹으면 일로 살았어. 새벽같이 일어나 쉴 새 없이 일만헌게 내가 따라 갈 수가 없어. 힘든것이라면 그것이 힘들었지 암 것도 힘든게 없어. 그렇게 이삐고 웃기도 잘혔던 분여.”
집안 대소사도 손주들 키우는 일도 모두 시어머니 일이었다. 부잣집딸로 자랐던 시어머니가 시댁 살림을 보고 시어머니의 시아버지께 했다던 말들을 들려주신다. 시아버지와 허물없이 대화를 했던 시어머니는 친정살림과 너무도 다른 시댁세간을 보고 놀라웠다고 한다.
<아버님 작두가 왜이렇게 째깐하다요, 하자 시아버지는 너는 부잣집 칼도 큰 놈을 봤구나.>
<덕석을 세워만든 조그만 나락통을 보고는 아버님 꼭 큰사람 똥댕이만허요, 하니까 아따 너는 큰 사람 똥댕이도 봤는게비구나.>
<외양간에 있는 소를 보고 아버님 부잣집 개만허요 하니까 너는 부잣집 개도 큰 놈도 봤구나> 라며 대꾸를 하더라며 흉내도 잘 내셨다.
청상과부로 사셨던 시어머니는 친정에 갔을 때도 시집가라는 말에 그날로 오십리 길을 걸어서 돌아와 버렸으며, 부자인 친정에서 돈을 주면 모두 시아버지께 맡겨 논. 밭을 늘려 시댁살림을 늘렸다고 한다. 부지런한 시어머니의 덕택으로 낳아진 살림은 50두락의 농사와 함께 상머슴 둘을 들일 정도가 되었다. 김할머니의 남편은 교편을 잠시 잡았으나 그만두고 집안일을 했다. 75세까지 살다 가셨다는 남편에 대해서는 덥수룩허니 바람도 안피게 생겼다며, 그러나 집에만 있는 사람이 뭣을 알겠냐고 되레 물어오는 여유도 있으시다.
“일을 잘 헐지 몰라, 그라도 지게질도 잘허고 쟁기질도 잘 헙디다. 아들 넷에게 줄라고 지게 네 개를 맞추고, 아그들 공일날이면 직살 나게 부려 먹었어롸알.”
아들넷을 직살나게 부려먹었다는 표현에서 남편보다는 아들들에게 애정이 더 깊다는 느낌은 들지만 남편도 할만치는 했다고 말한다.
“남편 없이는 살어도 시어머니 없으면 못 살겄습디다. 살아갈수록 정이가고 생각나요. 누구하나 성가시게 한 법이 없었어요. 나 죽겠다 소리 한번 안하시고 평생 얌전한 말씀만 하셨어요.”
시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사랑은 끝이 없다. 아흔 살 넘어서까지도 밭을 매던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 효부상도 받았던 김갑인 할머니. 오히려 107살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안타깝고 그립단다.
“돌아가신 날 저녁에 부엉이가 그렇게 크게 울어댑디다. 부엉이가 울먼 누가 돌아간다던 말이 떠올라서 벌벌벌 떰시로 있었는디······· 숨 끊어진게 부엉이 울음도 그칩디다.”
청상과부였지만 의연하고 꿋꿋하게 시댁을 지키며 살아온 시어머니에 존경과 애정이 김할머니의 삶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가 그럽디다. 나는 누가 생전 어디가도 팔도강산을 다다녀도 쳐다본 사람도 없더라고.”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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