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65회)
엿가위 기능보유자 강진에 오다
윤팔도 엿치기 할아버지(83)
우리나라 엿 기능 보유1인자인 윤팔도 할아버지가 강진에 왔다. 지난 24일 열린 제5회 강진민속발굴사업 난장놀이에서 엿치기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인기를 끈 윤할아버지의 강진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윤팔도 할아버지는 6살에 어머니를 여윈 후 3형제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서모와 서울로 떠나고 형들은 사촌들이 데려 갔지만 윤할아버지만 혼자 남겨졌다. 어린아이가 배가고파 동네를 기웃거리면 아주머니들이 동냥밥을 주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8살 되던 해 동네에 남사당패가 들어와 따라 나섰다. 오로지 밥을 얻어먹기 위한 일이었다.
“날마다 회초리로 맞어어, 밥은 배부르게 준디 한없이 때려, 노래도 잘하고 영리한 아이라고 약어지고 고생 좀 해야 한다고······채 맞은 소리를 해야 된다고오, 매 맞어가면서 배운노래가 진짜배기 노래라고 맨날 때렸어.”
‘채 맞은 소리’를 해야 된다며 틈만 나면 때리는 남사당패에서 견딜 수 없어 10살 때 도망을 쳤다. 맞지 않아 좋았지만 다시 배가 고팠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충남 괴산에서 신광서커스단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밥은 배 불리 주었지만 때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커스단에는 윤할아버지보다 두 살이 많은 박계화라는 예쁜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네도 잘 타고 노래도 잘하는 박계화는 가는 곳마다 인기가 있었다. 오징어를 좋아한 그녀에게 귀한 오징어를 사주면서 친해졌다. 서커스단에서 매 맞는 것에 지쳤던 두 남녀는 기회 봐서 도망을 치기로 약속하고, 16살, 18살 되던 해 도망을 쳤다. 천안에 있는 외갓집으로 박계화를 데리고 갔다. 하루에 10원~20원 가량의 돈을 받으며 주막집이나 사랑방에서 둘이는 노래를 불렀다. 술상을 둔 자리라 기분이 난 사람들이 술을 한 사발씩 따라주고, 그 잔을 단숨에 들이마시며 흥에 겨운 노래를 불러주는 일이었다.
“임자없는 명월이요, 값없는 청동 이라고 해.”
외갓집 이모가 준 행랑채에서 생활하면서 동네마다 불려 다니며 사랑방 노래를 부르자 어느 정도 돈이 모아졌다. 그래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약속했지만 박계화가 슬금슬금 아프기 시작하더니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계룡산 경천리에 있는 엿방을 찾아갔다. 그때가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나도 엿 장사 좀 하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는 지게도 없고, 엿 묵판을 등에다 짊어지고 무지무지하게 쏘다녔지 뭐어.”
엿불림을 배우면서 스스로 엿을 만들고 갓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니 어둡고 처량한 마음이 점점 흥이 나기 시작했다.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허락에 몽땅 주는 엿/ 동래 부산에 사탕 엿/ 함열 용산에 찹쌀 엿/ 울릉도라 호박 엿/ 강원도 금강산 새총 엿/ 전라도 봉상에 생강 엿/ 황해도 봉상에 수수 엿을/ 말 만 들었지 잡숴를 봤는가/ 허락에 몽땅 주는 엿/삼베 걸레 떨어진거 / 무명 걸레 떨어진거/ 숟가락, 국자 부러진거 등등/ 할머니 쪽지다가 비녀 꼭지 떨어진거/할아버지 담배피다 대꼬발이 떨어진거/사이다병 맥주병 정종병 간장병도 좋고/ 다 데리고 살다가 발길로 탁 차버린 헌 마누라도 주워요.”
윤할아버지의 엿불림 타령이 엿 가위 장단에 어우러져 흥이 절로 난다. 제주도에서 군인 생활을 3~4년간 한 후 다시 서울에서 엿 장사를 시작했다. 생계유지 수단으로 다시 시작한 엿장사 생활이 67년이 되었다.
“누가 엿장수한테 딸을 주까 싶어 결혼은 생각도 안했지. 그런데 한 처녀가 살금살금 따라온디 예쁘게 생겼어, 스무 살 처녀를 데리고 도망가서 살었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엿판을 벌이던 윤할아버지는 충남 광천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서른 한살때이다 엿불림 노래를 하며 흥겨운 놀이판을 벌인 후 막 엿 묵판을 등에 짊어지고 일어서려 하자 한 처녀가 졸졸 따라왔다. 엿장수를 따라가 살겠다는 부자집 처녀와 그날로 도망쳐 논산의 연산면에 신혼살림을 차렸고 세월은 흘러 3남 2녀를 두었다. 해방 직 후에는 무교동 밤무대에서도 인기를 누리기도 했던 윤할하버지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엿가위 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엿장수로서 엿치기 달인이라는 명칭을 받기까지 오직 한길만을 고집하며 살아오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있었다. 밥을 얻어먹기 위해 시작한 길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흥이 나게 하는 일 자체가 스스로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윤할아버지의 원래 이름은 윤석준이었으나 85년 연예인에 등극하면서 윤팔도로 개명하였다.
“생계 유지 수단으로 엿가위 손에 잡은지 어언 67년, 오래오래도 했네유, 여기저기 세월따라 인심따라 돌아댕기며 고생고생 하는데, 오늘날 이 훌륭한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팔자 한번 고쳤네, 박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제 엿치기달인의 막내 아들 정일권씨가 가업을 이어 엿불림을 전수하고 있으며, 부자간에 엿불림 음반을 내기도 했다.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KBS 전국노래자랑 연말결산 인기상, TV인간극장, 이것이 인생이다. 아침마당4번 출연 등 유명인이 된 윤팔도 할아버지는 이제 강진고을신문에도 나오게 돼 영광이라며 밝게 웃었다. (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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