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 野草金正童
김정동 (전 광주시농업기술센터소장. 수필가)
자식 취직 안 된다고 속상해 말게
시절인연 이란 말도 있잖아
이 세상 사는 것 아무것도 아니야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네.
어느 구름에 비 쌓였는지 아무도 몰라
어부가 바다에서 해우를 할 때
매생이를 귀찮다고 내다 버렸지
그러나 지금은 어떻던가요?
매생이가 최고야 바다의 왕자
매생이 굴국을 훌훌 마시면
고향생각이 절로난다
내 고향 마량 매생이
설은 그리움이다. 설 명절이 되면 고향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유년의 추억이 떠오른다. 또 나이 들어 새해를 맞으니 부모로써 자식 걱정이 앞선다. 자식들이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이 부모들의 최고 바람일 것이다. 코로나19가 3년째 되면서 세상 각처에서 삶의 고통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막내 아들이 취직을 못하고 있어 자식의 장래 문제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문득 설 명절에 생각나는 내 고향의 매생이와 자식이 생각되어 몇 줄의 시를 써 보았다.
매생이는 겨울 바다의 진한 향기이다.
매생이는 순수한 우리말 생생한 이끼이다.
제철에 나온 생 매생이는 그리움 그 자체요
석화와 매생이는 천생 연분이다.
추운 겨울 입천장이 데이면서도 호호 불며 먹는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내 고향은 전남 강진군 대구면 용운 항동 두메 산골인데 동쪽 산을 넘으면 장흥 대덕이고 서북쪽 산을 넘으면 칠량면이며, 삼십 여리 거리에 마량이 있다. 대덕이나 마량 그리고 인근 완도 약산 지역은 득량만의 청정해역으로 김을 생산하는 고장이다. 김은 지금처럼 기계식이 아니고 수제식이었다. 김은 해우(해태)라고 불렀는데 해우를 채취하려면 물때에 맞추어야 하기에 잠을 설치기 일쑤고 뜯어온 물김은 칼로 조사 띠풀로 엮은 발장에 떠서 건장에 널어 말려야 했다. 그 발장을 만들어서 대덕장이나 마량 장날에 내다 파는 곳이 바로 우리 마을이었다.
띠를 베기 위해서는 뜨거운 여름날 베어다가 이슬이나 비를 맞추지 않고 햇빛에 말리면 넓게 펴졌던 풀잎이 또르르 말려서 발을 만들기에 좋았다. 발장은 틀을 짜서 가로20 세로 25cm 정도의 크기로 발을 엮었는데 장당 2원 정도(100장1톳)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해우를 한 톳이나 매생이를 한 두 재기 사오셨다. 해우를 화롯불에 살짝 구워 참기름장을 만들어 밥을 싸 먹으면 최고의 맛이었고 귀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매생이는 굴국을 끓여두고 보름명절까지 강낭콩이나 팥 종류를 넣어 찐 노적밥(밥 한 공기 크기의 주먹밥)과 함께 먹었는데 어릴 적엔 시냇가의 이끼라고 판단하여 별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없고 머리가 굵어진 후에는 매생이의 애호가가 되었다.
김은 지역의 돈벌이 대상이었기에 김 수확 철에는 개들도 종이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김 농사가 중요하기에 과거에는 김에 달라붙어 자라는 매생이를 귀찮아했었다. 김 양식장에서 일하던 어부들이 새벽 작업을 마치고 들어올 때, 김발에 붙은 매생이를 한 움큼 훑어서 집에 가져와 아침 국거리로 끓여먹던 것이 매생이국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하여 웰빙시대가 오면서 이제는 매생이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 이제 김을 버리고 매생이만 키우고 있다. 그만큼 매생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겨울철 큰 효자요 사람으로 치면 인생 역전인 샘이다.
매생이의 재배 과정을 보면 10월께 대나무로 짠 발에 포자를 받아서 두어 달 동안 바다물이 들고나는 갯벌 에서 25~30㎝ 정도로 클 때까지 키운 뒤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한다. 3월이 지나면 색이 누레지고 맛이 떨어진다.
청정해역 득량만이나 인근 마량등지의 겨울철별미다. 이맘때면 김보다는 푸른빛을 띠고, 파래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매생이가 제철이다. 겨울 바다의 진한 향기를 안고 있는 매생이는 설 떡국이나 굴국에 넣어 먹거나 전으로 만들어도 맛이 있다. 설에는 매생이 떡국이 최고이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살을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떡국을 먹지 않고는 설다운 설을 보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떡국은 설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겨울이 제철인 매생이는 떡국에 개운한 맛을 더해 느끼한 명절 음식 가운데 산뜻하다. 식이섬유가 풍부 하고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더욱 좋다. 매생이가 들어가 한층 더 뜨끈한 국물은 술 한 잔 마신후면 작년 설에 마신 숙취까지 싹 내려간 기분이다.
매생이국을 목에 넘기면 부드럽고 싱그러운 바다향이 입안에서 확 돋는다. 특히, 매생이는 '생생한이끼'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철분, 칼슘, 요오드 등 각종 무기염류 와 비타민A,C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어린이 성장발육 촉진 및 골다공증 예방에 효험이 있으며, 위궤양이나 십이지장 궤양을 진정시키는 효과 또한 뛰어나 술꾼들에게 최고의 인기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매생이를 ‘누에가 만든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검푸른 빛깔을 띄고 있다’고 묘사하면서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그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라고 소개 되고 있다. 이처럼 매생이는 자산어보에도 등장할 만큼 그 존재가 오래 전부터 인식돼 왔지만, 가치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최근까지 김 양식장의 잡초처럼 취급돼 왔다.
‘미운 사위가 오면 매생이국을 준다.’는 옛말이 있다. 매생이국은 끓어도, 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음식이다. 매생이 고유의 점질 때문에 국에서 뜨거운 김이 별로 나지 않는다. 따라서 매생이 국을 뜨겁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를 후루룩 마시다가 입속을 데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까 밉상인 사위를 골탕 먹이기 위해 나온 말인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한국 전쟁 때 황해도 옹진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터를 잡고 사는 사람으로 근면하고 부지런한 반면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인물로 식사 후에 꼭 찬물 주라 더운물 주라 까다로운 분이 있었다. 어느 날 누구네 집에 초대되었는데 버릇을 고쳐주고자 매생이 국을 내왔는데 뜨거운 기색이 없으므로 그만 홀랑 마시다가 갑자기 뜨겁다고 말도 못하고 눈물만 그렁그렁 하고 있는지라 왜 그러느냐 짐짓 물으니 ' 명절이 다가오니 고향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라고 하더란다. 아마 입 안이 훌렁 까졌으리라.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혀가 데여도 좋으니, 꽃샘추위가 다 가기 전에 매생이국이나 한 번 더 먹고 싶다”고 말이다. 그만큼 매생이는 추위를 잊게 해주는 겨울철 최고의 보양식이자, 다가오는 봄날을 생기 있게 맞이할 수 있는 활력소이다. 날씨가 춥다. 겨울철에는 감기에 걸리기 쉽다. 입맛이 떨어졌을 때나, 이른 아침 출근으로 아침밥을 먹기 부담스러울 때 안성맞춤인 음식으로 매생이 굴국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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