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한 할머니의 보따리 두 개
자식은 부모의 속을 너무 모른다.
거리를 헤매는 남루한 행색의 한 할머니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길거리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왔다 갔다 조급해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보던 한 분이 파출소에 가 신고를 하였다.
경찰관들이 이것저것 여쭤봤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보따리만 꼭 껴안고 조급해하고 계셨다. 얼마 후 할머니는, 우리 딸이 애를 낳고 병원에 있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경찰관들은 할머니가 슬리퍼 차림인 것으로 봐 인근에 사는 주민일 것으로 판단하고,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동네에 수소문해 보고, 마침내 딸이 입원했다는 병원까지 알아내 순찰차로 모시고 가게 됐다.
갓난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딸이 작은 목소리로 눈이 휘둥그렇게 되며 엄마! 엄마라고 부르니 할머니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어제낀다. 그 속에서 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나물 반찬 흰밥이 나왔다. 어여 무라 어여 무라. 핼쑥해진 얼굴의 딸은 엄마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며 말없이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며 훌쩍거리기만 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가 기억하는 단 한 가지가 오직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주위 병실 안 모두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기억을 잃어버린 속에서도 오직 딸자식 하나의 출산만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딸이 니 새끼아 낳았구나! 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진정 어머니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죽음 직전, 혹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자식을 못 잊고 걱정하는 것! 그것이 부모의 끊을 수 없는 천륜(Natural Law)일 것이다.
<헨리 워드 비처>는 내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지요.
부모의 마음이란 어느 뉘나 마찬가지지만, 언제나 못사는 쪽 자식에 걱정이 더 깊어 지기 마련이다.
막내로 장가보낸 아들에게 남아있는 논 밭떼기까지 팔았으나 이상은 도울 수 없게 되어 고심하던 어느 날, 그 아들로부터 전보가 오길 ”당신 아들, 굶어 죽어감“ 아버지가 이 전보를 받고 온 밤을 잠못 이루다 못해 답하길 그래, 굶어 죽어라. 이후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아누워버렸다.
이후 아들은 부모님을 멀리하고, 이를 악물고 노동판에서부터 시작해 열심히 돈을 벌어 서둘러 부모님을 찾았으나 두 분이 다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들아! 내 아들아! 너 가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되나 이제 아빠 엄니는 먼저 간다. 너 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언제나 너를 사랑했다. 부모의 정이란 밖으로 나타내지 않지만, 자나 깨나 걱정하는 부모 속을 어찌 알겠냐? 아들아! 부모의 깊은 속을 알아주기 바란다. 너희들도 이제 자식들을 낳고 키워보면 알 때가 올 것이다. 산에 나란히 누운 묘소 앞에서 자식이 통곡하여본들 아무 대답이 없는 불효자는 울고 또 울었다.
이 시대의 부모들은 이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말았다. 가정에서조차 늙었다는 괄시로 머물 곳이 없어 졌다. 마치, 백수의 왕 사자가 늙어 기력이 다하면 자기의 성역을 아들 수놈에게 대 물려주고 마지막 넓은 광야(a wide field)를 헤매다 하이에나의 먹이가 돼 버린다는 심정이 드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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