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얼 기자의 ‘강진의 민담 다시보기3
대합 국 사또
조선시대, ‘대합 국 사또’라는 별칭을 가진 사또가 있었다. 사또가 이런 별난 애칭을 얻게 된 연유는 강진에서 나는 대합과 관련된 일화 때문이었다.
단백질과 칼슘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숙취에 효능이 뛰어난 대합은 당시 강진산이 최고였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강진의 대합은 궁중진상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합 국 사또’의 별난 홍보 때문에 멀리서 강진의 대합을 구하기 위해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강진으로 부임한 사또가 그를 맞이해 주는 환영잔치에 참석하였다. 사또는 부임해 오기 전에 강진의 기가 센 아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던 터라 그 환영잔치가 서로간의 첫 신경전이 생각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평소에 술을 즐겨 마셨던 사또는 기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잘 닦인 놋쇠 잔이 넘쳐나도록 부은 술잔을 받자 사또는 습관대로 단숨에 술을 쭉 들이켰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던 그에게 한잔 정도야 끄떡없는 듯 했다. 그러나 사또는 몰랐었다. 환영잔치에 올랐던 술이 강진 특유의 톡산곡주로 40도 이상을 웃돌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잔을 들이킨 사또는 독한 술기운이 코를 찌르고 목에 받쳐 그만 가슴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사또는 신임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척 다음 고배를 들어야했다. 찰지고 좋은 안주와 기생들이 있는 좋은 자리였지만, 사또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다스려야할 아전들이 권하는 잔을 거부할 수 있을리가. 사또는 결국 두세 잔을 더 마셨다. 정신이 저 멀리 날아갈 듯 하고 팔다리가 붕뜨는 기분이었다. 사또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던 아전들은 돌아봤다. 아전들은 사또보다 더 많은 술을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흥에 취해 웃음과 농담 소리가 더 커져갔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세를 고쳐 잡아 끄떡없다는 듯이 몇 잔을 더 마셨으나 더 이상 심신을 가누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술자리가 파해지자 어느 아전의 등에 업혀 안방에 옮겨진 사또은 한참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동이 터서야 심한 갈증 때문에 눈을 뜬 사또는 어젯밤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신임사또로서의 체면을 다 구겼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사또는 속을 뒤집어 놓는 강진 술의 높으 도수에 놀라고, 그런 술을 아무렇지도 않는 듯 계속 들이키고 끄떡 않는 아전들의 주량에 감탄했다.
아침이 되어 밥상이 들어왔다. 밥상 위에는 뿌옇게 우러난 국물이 올라와 있었다. 한 대접 가득 들은 국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거짓말처럼 쓰렸던 속이 풀렸다. 기운이 솟고 정신이 맑아졌다. 사또는 나중에 물어, 그 국물이 대합의 국물이었다는 것을 알고서야, 아전들의 믿기지 않을 정도의 주량의 비결이 대합 국물 덕분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사또는 대합 국물의 신기한 숙취제거 효능을 경험하고부터는 두 번 다시 술 때문에 곤욕을 치루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강진 임직 기간을 다 마치고 다른 지방에 가서도 강진의 대합 국물 자랑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 때문에 사또는 ‘대합 국 사또’라는 별칭을 얻게 되고 은연중에 강진의 대합을 전국곳곳에 알리고 다녔다.
아쉽게도 ‘대합 국 사또’ 대합은 이제 더 이상 강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산물이 아니다. 한때 탐진만, 강진읍 덕남리, 칠량의 구로리, 봉황리, 도암의 만덕리 등이 주산지였으나 지금은 갯벌에 밀려드는 토사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약용으로 쓰일 정도 밖에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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