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인 시각에서 선과 악을 해석해 화합과 평화를 추구
율곡의 학자적인 성취는 이후 이황과 함께 조선의 사상을 크게 변화시킨다. 성리학을 주자가 집대성했다면 조선의 성리학은 이황과 이이가 했다고 볼 수 있다. 끝까지 '이'와 '심' 중심의 경학적 해석을 제일시 했던 이황과 '이통기국'의 기발 이승일도설이라는 독창적인 관점으로 이기의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는 해석을 고집했던 이이의 성리학은 '이기론'을 대표하는 입장들이었고 이후 조선의 모든 붕당은 표면적으로나마 이기론의 해석에 따라 갈렸다. 조선 땅에서 500년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성리학은 이렇듯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 이기론, 18세기 인물성동이론 등의 논의를 거쳐 인간 심성론 쪽으로 치중되어 갔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이 심성학으로 변한 것은 이이 등을 필두로 시작된 이 일련의 논의들로부터 도출된 결과물인 것이다. 때문에 이이와 이황의 성리학을 당사자들이 학문하면서 스스로 밝혔던 바와는 판이하게 각각 성리학이 아닌 율곡학, 퇴계학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애초에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엄연히 다른 것으로 보고, 그 근원을 각각 이와 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고 하는 ‘사단이지발四端理之發, 칠정기지발七情氣之發’의 명제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기대승奇大升이 그렇다면 이기가 각각 일물一物을 이루어 서로 다른 이물二物이 되는 병폐를 안고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유명한 퇴고사칠론변退高四七論辨이 전개된다. 그 뒤 이황은 기대승의 의견을 수렴,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나 기가 그 이를 따르고 있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나 이가 그것을 타고 있다(사단이발이기수지 四端理發而氣隨之 칠정기발이리승지七情氣發而理乘之).”고 정정하였다.
결국 이황은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라는 이기론의 기본 구조 가운데 이기불상잡의 측면을 강조해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내세우며, 이기불상리의 측면은 이발기수에서의 ‘기수’, 기발이승에서의 ‘이승’이라는 말로써 해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이는 “대저 발하는 것은 ‘기’고, 발하게 하는 원인자는 ‘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하도록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현상계에서 운동, 변화하고 있는 모든 작용은 기의 작용이며 그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자는 이라고 하는 주자학의 기본 이론에 충실하면서, 이황과는 달리 이기불상리의 측면을 더욱 강조해 기발이승 일도설을 내세운다.
즉,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어 흡사 일물과 같기 때문에 그 발용發用은 하나뿐이며 호발互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기(이불능발理不能發)본 전제 아래, 이는 최고의 존재 원리이기는 하나 형체도 없고 스스로 운동·변화하지 못하며(이불능발理不能發), 형체도 있고 스스로 작용할 수 있는 기만 발한다는 것이 기발이승일도설이다.
사단칠정론에서도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서로 대립되는 관계로 보아 사단은 이가 발한 것으로 순선純善 하고 무악無惡 하며, 칠정은 기가 발한 것으로 경우에 따라 선하기도 하고 악으로 흐르기도 한다고 본다. 이에 반해, 이이는 사단과 칠정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정情이며 사단도 정인 한 기발氣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이에게 있어 사단이란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가려 뽑아 말하는 것으로, 사단이 칠정 속에 포함되는 이른바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의 논리이다. 이러한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은 심성론心性論의 ‘칠정포사단’ 논리와 함께 ‘심성정의일로설心性情意一路說’·‘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의 이론적인 배경이 된다.
율곡 이이의 평화 사상
율곡 이이의 평화사상한영우 (서울대학교)국문요약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는 조선시대 전기 유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평화’라는 제목의 글을 따로 쓴 일은 없지만 그의 사상 가운데에는 ‘평화적인 사상’이 들어 있다.
유년 시절의 그의 행실을 살펴보면 그는 언행이 일치하는 평화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다. 율곡은 사생활에서나 공적인 생활에서나 일관되게 갈등을 해소하고 사람들을 포용함으로써 평화를 가져오는데 평생토록 힘을 기울였다.
이이는 성리학의 통합적 우주관을 이론화 한 이기론(理氣論)을 제창하였다. 율곡은 인간의 네 도덕 정신인 사단과 일곱 가지 감정인 칠정을 대립적으로 보는 인성론을 거부하였다. 오히려 상대적인 시각에서 선과 악을 해석해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였다.
영정조 시대가 조선왕조의 중흥기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인 탕평책도 이이의 이런 화합, 통합의 정신에서 연유한다.
주제어: 이기론, 사단칠정, 향약, 탕평책, 신사임당Ⅰ. 평화란 무엇인가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평화 사상을 쓰기에 앞서, 과연 율곡에게 ‘평화’사상이 있는가부터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율곡은 ‘평화’라는 제목의 글을 따로 쓴 일은 없지만 그의 사상 가운데에는 ‘평화적인 64. 통일과 평화(10집 1호·2018)사상’이 들어 있다.
비단 율곡만이 아니라 유학은 기본적으로 ‘평화적 사상’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유교에서의 ‘평화’는 ‘평등’과 ‘화합’ 또는 ‘공평’과 ‘화합’이 합쳐진 말이다. 그래서 ‘평등한 화합’, 또는 ‘공평한 화합’이 바로 ‘평화’이다.
그런데 실제로 유교에서는 ‘평화’라는 말보다는 ‘화평和平’이라는 말을 더 선호했고, 때로는 ‘화평’과 비슷한 뜻으로 ‘중화中和’를 말하기도 했다. ‘평화’라는 단어는 주로 일본인들이 선호한 말이 근대에 와서 보편화된 것이다. 서양의 ‘Peace’라는 언어가 근대 이후 동양에 들어오면서 이를 ‘평화’로 번역하여 사용해 왔는데, ‘Peace’가 과연 ‘평등한 화합’의 뜻을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서양어를 동양어로 번역할 때 개념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평화’도 그 중의 하나인 듯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Peace’는 라틴어의 ‘Pax’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ax’는 본래 예수나 성모(聖母)가 그려진 작은 패(牌)로서 로마 시대 기독교인들이 미사를 올릴 때 여기에 키스하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독교의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한 Pax의 뜻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로마제국이 주변 종족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이루어진 시대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평화는 전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 자체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에 이르는 시기에 서구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티나와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 8차에 걸쳐 이슬람교도와 전쟁을 벌인 십자군전쟁이 ‘성전’(聖戰)으로 미화되었다. 다른 종교를 이단(異端)으로 보고, 이교도들을 대규모로 살육한 전쟁이 성스런 전쟁으로 미화되고, 그것이 곧 평화를 가져온 방법으로 정당화된 것이다.
전쟁과 연관된 서구의 ‘평화’는 근대와 현대에까지 이어지면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하여 전쟁이 정지된 시대를 ‘팍스’ 곧 ‘평화’로 부르게 율곡 이이의 평화사상은 65가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을 ‘평화조약’ 또는 ‘강화조약’으로 부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맺어져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갈등이 근원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화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전쟁과 평화가 숨바꼭질을 해온 것이 인류 역사일 것이다.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이유는 아마 평화라는 개념이 주로 강대국이 사용하고 있을 뿐, 강대국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에서는 강대국의 힘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평화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라는 단어를 위장한 또 하나의 나쁜 기억이 있다. 종족주의적 침략전쟁을 평화로 위장한 경우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면서 ‘동양평화’를 위해서라고 선전했다. 황색인종이 서양 백인종의 침략을 막고 대동단결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이루자는 주장이었다. 독일 나치스가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내세우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여기에 속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을 반대하고 진정한 평화를 촉구하는 평화주의 종교나 철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J.J. Rousseau 같은 사상가가 그렇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인들도 전쟁을 긍정했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인정하는 사상가도 없지 않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약육강식을 통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헤겔의 변증법도 테제와 반테제의 갈등을 거쳐 새로운 단계의 합(合)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렇게 서구의 평화론이 대부분 전쟁의 불가피성과 힘의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유는 선악善惡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세계관 속에서는 선과 악의 갈등이나 선에 의한 악의 응징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전쟁과 평화는 어쩌면 무한히 66. 통일과 평화(10집 1호·2018)반복되는 운명을 띠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교에서는 ‘평화’라는 말보다는 ‘화평和平’이라는 말을 더 선호
비단 율곡만이 아니라 유학은 기본적으로 ‘평화적 사상’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유교에서의 ‘평화’는 ‘평등’과 ‘화합’ 또는 ‘공평’과 ‘화합’이 합쳐진 말이다. 그래서 ‘평등한 화합’, 또는 ‘공평한 화합’이 바로 ‘평화’이다. 그런데 실제로 유교에서는 ‘평화’라는 말보다는 ‘화평’(和平)이라는 말을 더 선호했고, 때로는 ‘화평’과 비슷한 뜻으로 ‘중화’(中和)를 말하기도 했다. ‘평화’라는 단어는 주로 일본인들이 선호한 말이 근대에 와서 보편화된 것이다. 서양의 ‘Peace’라는 언어가 근대 이후 동양에 들어오면서 이를 ‘평화’로 번역하여 사용해 왔는데, ‘Peace’가 과연 ‘평등한 화합’의 뜻을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서양어를 동양어로 번역할 때 개념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평화’도 그중의 하나인 듯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Peace’는 라틴어의 ‘Pax’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ax’는 본래 예수나 성모(聖母)가 그려진 작은 패(牌)로서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이 미사를 올릴 때 여기에 키스하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독교의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한 Pax의 뜻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로마제국이 주변 종족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이루어진 시대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평화는 전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 자체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에 이르는 시기에 서구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티나와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 8차에 걸쳐 이슬람교도와 전쟁을 벌인 십자군전쟁이 ‘성전’(聖戰)으로 미화되었다. 다른 종교를 이단(異端)으로 보고, 이교도들을 대규모로 살육한 전쟁이 성스런 전쟁으로 미화되고, 그것이 곧 평화를 가져온 방법으로 정당화된 것이다.전쟁과 연관된 서구의 ‘평화’는 근대와 현대에까지 이어지면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하여 전쟁이 정지된 시대를 ‘팍스’ 곧 ‘평화’로 부르게 율곡 이이의 평화사상은 65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을 ‘평화조약’ 또는 ‘강화조약’으로 부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맺어져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갈등이 근원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화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전쟁과 평화가 숨바꼭질을 해온 것이 인류역사일 것이다.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이유는 아마도 평화라는 개념이 주로 강대국이 사용하고 있을 뿐, 강대국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에서는 강대국의 힘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평화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평화라는 단어를 위장한 또 하나의 나쁜 기억이 있다. 종족주의적 침략전쟁을 평화로 위장한 경우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면서 ‘동양평화’를 위해서라고 선전했다. 황색인종이 서양 백인종의 침략을 막고 대동단결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이루자는 주장이었다. 독일 나치스가 게르만민족의 위대성을 내세우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여기에 속한다.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을 반대하고 진정한 평화를 촉구하는 평화주의 종교나 철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J.J. Rousseau: 1712~1778) 같은 사상가가 그렇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인들도 전쟁을 긍정했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인정하는 사상가도 없지 않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약육강식을 통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헤겔의 변증법도 테제와 반테제의 갈등을 거쳐 새로운 단계의 합(合)이 이루어진다고 본다.이렇게 서구의 평화론이 대부분 전쟁의 불가피성과 힘의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유는 선악(善惡)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세계관 속에서는 선과 악의 갈등이나 선에 의한 악의 응징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전쟁과 평화는 어쩌면 무한히 66. 통일과 평화(10집 1호·2018)반복되는 운명을 띠고 있는지도 모른다.서양 평화론의 특징과 성격을 위와 같이 정리해보면, 그 안에는 평등 관념에 기초한 화합이라는 요소가 매우 약하다. 그래서 Pax나 Peace가 과연 유교적 관념의 ‘평화’와 일치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16세기 후반의 위대한 유학자인 율곡의 평화사상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기에 앞서 동서양 언어의 차이를 먼저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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