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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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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 이야기 – 한글 서예
뛰어난 시각미視覺美를 갖춘 독특한 궁체

어린 시절 붓글씨를 쓰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자랐다. 초등학교를 입학해서는 4학년 때부터 서예를 배웠다. 궁체라고 해서 한글 서체를 배웠다.

과거 학교나 기관에서 졸업장, 상장이나 임명장, 또 개인의 연하장이나 청첩장 등 정중하고 진지한 문서는 붓글씨로 쓰거나 붓글씨체 인쇄를 했는데 대부분 한글은 궁서체, 한자는 행서체로 썼기 때문에 컴퓨터 인쇄가 보편화된 지금도 궁서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명조체가 궁서체를 다듬어서 만든 글꼴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붓글씨를 글꼴로 옮긴 궁서체와는 달리 명조체는 처음부터 인쇄용으로 나온 것으로 195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체 디자이너인 최정호 선생이 일본의 명조체를 바탕으로 연구하여 만든 명조체 원도가 원류이다.

특히 현재의 명조체와 고딕체는 70년대에 최정호 선생이 일본에 건너가 사진식자를 공부할 때 모리사와 명조체를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에 기반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지금까지 사용되는 인쇄용 한글 글꼴들은 원류를 따라가 보면 웬만하면 이분으로 귀결되는 대단한 분이다.

 

나중에 자라서 안 사실이지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에는 한글을 인쇄하기 위하여 한자의 전서체篆書體를 본뜬 한글 서체를 사용하는 한편, 필사筆寫의 경우는 해서체楷書體를 따라왔다.

17세기 말경부터 한문의 초서체草書體와 비슷한 흘림글씨체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개 글씨의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한문의 서풍書風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것이 차차 한글의 특수한 글씨 모양에 알맞은 서체로 발전하면서 정서正書에서 새로운 틀이 생기고, 흘림체에도 뛰어난 시각미視覺美를 갖춘 독특한 궁체가 형성되었다. 글씨의 선이 곧고 맑으며 단정·아담한 것이 특징인 궁체는 주로 궁중 나인들에 의하여 궁중에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궁체'라는 이름이 생겼다.

 

민간에서는 내간지內簡紙에 사용하였다. 내서內書라고도 한다. 궁체는 서체 상으로는 정서正書와 흘림반흘림·()흘림으로 나뉘며, 양식상으로는 등서체謄書體와 서한체書翰體로 구분된다.

정서는 한자의 해서楷書, 흘림은 한자의 행서行書 · 초서草書와 같은 의미이다. 등서체는 정돈 되고 규칙적이며, 서한체는 불규칙적이고 자유 분망하다.

궁체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한글 창제 이후의 한글 판본체板本體가 읽기는 쉬우나 쓰기에 어려우므로, 점점 쓰기에 편리한 필사체로 변화, 발전하여 궁체를 형성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훈민정음원본의 한글은 한자의 전서篆書와 같이 획이 둥근 원필圓筆을 썼다. 그런데 원필은 쓰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그 뒤에 간행된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등에서는 쓰기에 편리한 방필方筆로 바뀌어 한자의 예서와 같이 획이 모가 진다.

성종 대를 전후하여 이런 방필은 다시 필사의 기풍을 띠기 시작하여 1482년 간행된 <두시언해>를 비롯한 이후의 판본체는 한자의 해서에 가까운 필법으로 변화한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한글의 생활화로 필사의 양이 늘고 여성들이 교양으로 이를 익히기 시작했다.

선조 대에 이르면 이미 필사체로서 정리되는데, 특히 궁중에서 교서(敎書: 임금의 명령서)나 봉서(封書: 왕비가 친정에 내리던 사사로운 편지) 등을 전문으로 쓰는 서사상궁書寫尙宮 들에 의하여 한글 서체는 체계화되어 아름답고 쓰기에 편리한 필사체가 고안되었다.

숙종 대에 이르면 단아한 궁체가 완성되며, ·정조대에는 국문학의 융성으로 한글 필사가 크게 늘어나 궁체는 그 완숙기를 맞이한다.

순조 대에서 고종 대에 이르기까지 궁체는 극도로 발달하는데, 서사상궁 중에서 선발된 지밀나인至密內人 들의 편지 글씨는 세련미가 넘친다. 순조비인 순원왕후, 순조의 딸 덕원공주의 글씨와, 상궁 최장희의 신정왕후전, 상궁 서희순의 고종황제전등의 글씨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조대비전의 서기였던 이씨라는 여성의 글씨는 궁체의 백미라 하겠다. 궁체는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예의 바른 품위가 있다. 정자는 속도가 더딘 만큼 정중하고 깊은 의지가 담겨 있으며, 흘림은 운필과정에서의 강약·완급의 변화에 따라 뛰어난 시각미를 갖추고 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 덕온공주가 직접 쓴 주역 필사본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그 정갈한 한글 궁체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친필 편지(아래쪽)와 덕온공주가 한글로 옮겨 적은 자경전기의 한 부분. 글씨체가 매우 단아하다.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조선의 마지막 공주이자 순조의 셋째딸인 덕온공주(1822~1844)가 아버지가 한문으로 지은 글을 한글로 옮겨 쓴 자경전기慈慶殿記,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1853~1939)1899년 당시 열두 살이 되는 딸(윤백영, 1888~1986)에게 써준 여사초략女史抄略, 윤백영이 1934년에 궁체로 쓴 환소군전桓少君傳 덕온공주 집안의 책과 편지, 서예 작품 등 3대가 한글로 쓴 왕실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된 바 있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국립한글박물관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집한 조선 왕실 한글 유물 68점을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관받아 이미 공개 전시를 했다. 조선 왕실의 한글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한 자료들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덕온공주 후손들이 소장해온 것으로, 국립한글박물관과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협력해 매입한 뒤 국내로 들여왔다. 한국에 돌아온 한글 유물 68점이다.

조선 말기의 숨은 명필덕온공주의 서예. 국립한글박물관으로 이관된 유물 중 가장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은 것은 조선 마지막 공주(순조 이후 헌종·철종·고종·순종 때는 옹주만 있었다)인 덕온공주의 친필을 담은 자경전기규훈이다. 이 두 책은 모두 본래 한문으로 쓰여 있던 것을 덕온공주가 우리말로 옮겨 쓴 것이다. 자경전기는 효를 중시했던 조선 왕실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808년 순조가 어머니 효의왕후의 뜻을 받들어 창경궁 자경전에 관해 쓴 책이지만, 그 시작은 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가 1777년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해 창경궁의 양화당 옆에 전각(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을 짓고, 이를 자경전이라 이름 지은 것. 자경(慈慶)은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효의왕후(정조 비)는 아들 순조에게 자경전의 유래 등을 밝힌 자경전기를 한문으로 짓게 했고, 순조 비였던 순원왕후(1789~1844)는 그 효심을 딸이 전해 받을 수 있게 덕온공주에게 우리말로 옮겨 직접 쓰도록 했던 것이다.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이번에 환수된 68점의 한글 자료는 왕실에서 사용한 아름다운 한글 궁체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박준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돌아온 유물 중엔 덕온공주의 친필 자료 6, 왕실에서 쓴 한글 편지, 윤용구 서예 작품 11, 윤백영 한글 서예 8점 등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왕실의 한글 편지

왕실에서 작성한 한글 편지는 당시 왕실에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는지, 이 과정에서 한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1823~1887)에게 보낸 편지도 그중 하나다. 순원왕후는 편지에 사위의 감기와 기침을 걱정하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있어 든든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전 정신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낸 국어학자 이종덕 박사는 덕온공주와 어머니인 순원왕후의 필체는 매우 빼어나 놀라울 정도라며 당시엔 다른 이를 시켜 글씨를 쓰게 하는 일도 흔했지만, 문장 중에 대서로 편지 쓰기에는 섭섭해 며칠 동안 쓰지 못했다’(순원왕후)는 구절 등 친필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윤의선은 덕온공주와 1837년에 혼인했으나 자녀가 없었고, 덕온공주가 만 22세로 세상을 떠난 뒤 윤용구를 양자로 들였다. 윤용구는 이후 과거에 급제하고 예조·이조판서까지 지냈으며, 1899년 딸을 위해 여사초략을 남겼다. 중국 역사에서 모범적인 여인 30명의 행적을 한문으로 적고, 행간에 붉은색으로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책의 표지에 윤용구는 기해년(1899) 10월에 석촌 퇴사가 딸아이에게 써서 보여준다라고 적었다. 윤용구는 고종의 명을 받아 중국 상고시대부터 명나라 말기까지의 역사를 추려 한글을 번역해 정사기람(正史紀覽)도 편찬했다.[출처]한글 궁체|작성자목향 정광옥

덕온공주가 친필로 옮겨적은 '규훈'.[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윤백영이 환소군의 전기를 궁체로 쓴 환소군전(1934)도 중요한 자료다. 윤백영은 한글 궁체로는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1929·1931)에 입선했다. 이종덕 박사는 윤백영은 전통적인 한글 궁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출처: 중앙일보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그 정갈한 한글 궁체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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