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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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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과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 – 장남

정관웅과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 장남

 

장남의 역할은 집안의 기둥으로 흥망이 운명에 좌우

 

옛사람들은 장남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지금의 가족관계와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의 얘기인 듯한 일이다. 지금은 분배와 차별을 논할 수 있다지만 그 당시는, 누군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풍조가 개인 중심이 아닌 호주 중심의 가족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는그것이 가문의 영광과 번영을 위한 유일한 길이고, 집안의 흥망이 장남의 운명에 좌우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집안의 기둥인 장남長男은 둘 이상의 아들 가운데 맏이가 되는 아들(남자로 태어난 자식을 일컬은 말이다. 장손長孫으로 한 집안에서 맏이가 되는 후손이라는 뜻이다. 또는 장자長子라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상속에 있어서 장자상속의 원칙이 사회의 지배적 통례가 되어 왔으나, 근대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에서는 아직 까지도 관습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장자는 가의 계승자로서 관습법상 최우선적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되어 왔다.

현행민법상에도 장남은 호주승계에 있어서 최우선순위자로 되어 있고(9852), 장남은 혼인하더라도 차남 · 3남 등처럼 법정분가가 되지 않는다(789). 종래 장남의 성격에 관하여는 장남형 성격(관대하고 호인 형)이 있다고 일컬어졌고, 또 부모가 생리적으로 성숙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생하는 경우가 많아 유전적 형질에서 열등하다는 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생리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실증적 연구 결과,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떻든 장남은 가문을 이끌어가는 책임도 맡겨진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한 가정의 중심축으로서 인정하고 가문의 흥하고 망함을 바라보는 중요한 위치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 집 대주로서의 역할과 의무가 주워졌고, 일가 친인척은 말할 것도 없다.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장남은 기대와 격려의 대상이었으나 동생들은 아예 관심 밖의 아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형이 입던 옷을 입고, 형이 신던 신발을 신어야 했다. 형 대신 궂은일 군말 없이 맡아도 항상 천덕꾸러기처럼 살았다.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형을 탓할 수조차 없었던 것은 꿈마저 갖지 못할 정도의 찌든 삶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 시절은 살아가는 정도가 어려움이라는 보릿고개도 있었다. 먹는 것부터가 넉넉하지 못하는 사회 현실에서 한 자식이라도 가르쳐 보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이 들고 어렵지만 이웃집에서 빌려온 돈으로 한 자식이라도 잘 키워보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있었다. 그 점은 바로 대상이 첫 아이에게 당연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가면서 장남이 아닌 그 누구든 가문을 빛낼 역량이 있다 한들, 그 옛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바라던바 결코 될 수 없음을 한가정의 가장되어보니 알게 되더라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집안의 기둥, 그 역할은 오직 장남만이 할 수 있다는 것과 옛사람들의 가장 편안한 상대는 장남만이라는 것을 나이를 먹고 나서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우지독老牛舐犢이라 했다.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듯이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어찌 높낮이가 있겠는가? 부모의 깊은 사랑을 이르는 말이다. 늙은 소마저 이러할진대 부모의 마음이야 어찌 자식 사랑에 편견이 있겠는가.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아주듯 부모의 지극한 자녀 사랑을 말하는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열전(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영화 <장남>

 

생각난 영화가 있다. 1985년에 상영된 <장남> 영화다. 1984년 태흥영화주식회사에서 제작하였다. 각본과 감독은 이두용 씨이고, 신성일, 태현실, 김일해, 황정순, 민복기 등이 출연했다.상영 시간은 115분이다. 늙은 부모를 위해 집을 짓는 장남의 노력과 효심을 그린 가족드라마 영화이다. 서울에 상경해서 한 여인과 결혼한 태영(신성일 씨)은 컴퓨터 회사에서 꾸준히 일하며 착실히 돈을 모은다. 그가 성실히 돈을 모은 이유는 서울에 땅을 사들여, 시골에 살고 계신 자신의 노부모를 모시기 위함이었다. 마침 시골의 노부모가 살던 지역이 수몰지구로 지정돼 노부부는 큰아들 태영의 신혼집으로 올라오게 된다. 그러나 시골의 평범한 가옥에서 평생을 살던 노부부는 서울의 연립주택 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태영 부부는 연립주택이 아닌, 한옥에 사는 막내아들 집으로 부모님을 보내드린다.

태영 부부의 노부모를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태영은 작은 땅을 사들여 부모를 위한 주택 공사를 빠르게 진행한다. 그의 주택 짓기에 태영의 둘째 동생도 가담하여 노부부는 자신들을 위해 노력하는 아들들의 효심에 흐뭇해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주택 짓기가 완공되어 갈 무렵, 노부부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태영은 완공된 주택을 남겨두고 영면한 부모님을 보내며 안타까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영화 <장남>은 현대사회에서 전통 가족의 상실이란 주제를 명료한 문제의식과 뛰어난 균형감각으로 생생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는다. 이 영화는 제21회 백상예술대상과 제2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의 한구석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그 현실 속에서 보모 님께 다 해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다. 가슴 속에서 붉은 울음이 튀어나왔다.

 

과거 시대는 자신을 갖추면서 무엇이든지 성장시키고 힘을 배양하기 위해 이룩하기 위한 시대였으나, 오늘날은 힘의 논리가 아닌 이루어 놓은 것을 지혜롭게 빛나게 잘 사용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지식의 질량을 갖추었고, 경제 또한 잘 갖추어졌으며 사회 질서의 환경이 잘 만들어진 환경 속에 살아가면서 장남과 맏며느리의 역할이 과거와는 많이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이렇게 잘 갖추어진 인프라는 조상들의 희생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질서가 잡혔던 것이다. 가족관계에서도 장남, 차남, 막내의 역할이 주어진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뒤에 태어난 사람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듯 먼저 태어난 사람이 뒤에 태어난 사람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않을 때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지 못하여 어려워질 때 그 질량에 해당하는 만큼 먼저 태어난 사람이 돌려받아 피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일은 힘들고 고난일 수도 있다. 여러 여건 때문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힘들고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행하지 않는 의무의 값을 돌려받게 되면서 그 질량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를 위하여 살아야 하고, 중간에 있는 사람은 그 밑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연법에서 밑에 사람이 윗사람을 위하여 살아가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막내가 장남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음을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은 자기의 동생을 위해 아내의 동의를 얻어 학교에 다니게 하고 사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로 식당을 차려주는 현대 시대에 보기 드면 장남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많이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을 위해서 삶을 살아야

 

자연법은 위에서 아래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으로 배운 사람은 배우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많이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을 위해서 삶을 살아야 하므로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할 법칙이 없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장남과 장녀는 동생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보람되고 빛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 장남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을 상대로 잘하게 될 때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존중하게 되어 있지만 반대로 윗사람이 바르게 하지 못할 때는 아랫사람이 성장하여 윗사람에게 대드는 하극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장남으로 살아가면서 동생들에게 바르게 할 때 존중을 받게 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 때 동생들에게 상처를 받게 되었던 것은 자신이 바른 행위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현실은 주변에서 종종 볼 수가 있다. 물론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있다. 그로 인하여 때로는 형제간의 많은 이익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바로 상속법이다.

1008조의2(기여분)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에는 상속개시 당시의 피상속인의 재산가 액에서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한 그자의 기여분을 공제한 것을 상속재산으로 보고 제1009조 및 제1010조에 의하여 산정한 상속분에 기여분을 가산한 액으로써 그자의 상속분으로 한다. 기여분은 상속이 개시된 때의 피상속인의 재산가액에서 유증의 가액을 공제한 액을 넘지 못한다.

 

전통사회에서 장남은 한 집안의 대들보였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에서 막 산업사회로 진입하던 60년대, 서울에 유학간 아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전답을 팔아 뒷바라지하는 모습을 농촌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 유학간 장남들이 그곳에 정착해 아이를 낳고 다음 세대의 가정을 꾸리는 동안 세월은 많이 변했다. 봉건적인 흔적이 묻어 있는 가부장 농경사회는 핵가족을 기반으로 한 산업사회로 이미 옮겨와 있었다. 이두용 감독의 <장남>은 그런 한국사회의 물질적 변화를 한 가족의 일상에서 추적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수몰될 고향을 등지고 서울의 장성한 아들, 딸에게 몸을 의탁하러 온 부모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이유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무신경한 자식들의 냉대를 받는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또는 텔레비전의 드라마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 같지만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이두용 감독의 힘찬 편집은 등장인물들의 삶의 궤적에서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장남> 후반부에서 고층 아파트의 벽에 부딪히며 내려오는 아버지의 관을 쳐다보며 오열하는 장남의 모습은 한국영화에서 드물게 보는 처절한 멜로드라마로서 감동을 자아낸다.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을 지칭해 일컫는 말. 순우리말로 맏아들이다. 외동아들이나, 고명 아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이 형, 오빠가 된다. 아들 중에서만 고려하기에 꼭 맏이가 아니어도 위로 형이 없으면 여자 형제가 있는 둘째, 셋째, 심지어 막내여도 장남이다. 대부분 집안에서는 외동아들(무녀독남)의 경우 장남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외동아들도 장남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대다수 문화가 고대사회부터 남성의 지위가 여성에 비하여 높았던데다가, 첫 번째이기 때문에 장남이 가장으로서 집안을 잇는 경우가 많았다. 장남인 경우 부모가 거는 기대가 매우 컸다. 과거의 왕조사회에서는 군주가 승하하면 장남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사회 관습이 매우 당연했던 것이었을 정도로 그만큼 매우 특별한 위치이기도 했다. 누나가 있는 장남의 경우, 그 누나 때문에 서열이 애매할 수도 있지만 장형의 경우는 형제자매들 중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물론 적자여야 한다. 그런 점은 여성의 결혼 기피 대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부모님 부양이 나 제사를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를 많이 낳았던 시절 이야기다.

장남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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