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명절은 지나갔고 산야에 산재된 봉분의 벌초 또한 그 작업이 끝났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나 본인이 벌초작업을 직접 할 수 없는 경우, 벌초대행업체에 맡겨 대대적으로 벌초작업은 진행되었다. 벌초는 1년에 세 번 정도는 해야 봉분이 말끔하다. 한 차례만 하기에는 풀이 무릎까지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석 명절 무렵에 때를 맞추어 한 차례일망정 벌초작업은 하는 것은 후손들의 도리를 다하기 위함에서일 게다.
벌초는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첫째는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온 몸에 땀을 적실만큼 힘들고, 두 번째는 높은 산에 봉분이 있을 경우 예초기를 짊어지고 현장까지 가야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세 번째는 예초기의 날이 날카롭고 사고 시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몹시 위험한 작업이다. 이번 추석명절에도 여전히 예초기 사고로 119가 출동하곤 했을 정도다. 예초기 날의 돌과 부딪치면서 파편으로 인해 한쪽 눈을 실명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닐 정도니 그 위험도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는 풀이 많이 자라있는데다 바닥의 돌멩이가 있어 작업 자체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조상 숭배의 차원에서 본인이 직접 하거나 대행업체에 맡겨 이번 추석 명절 역시 산야에 산재된 봉분들이 깔끔하게 이발을 하듯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벌초작업이 힘들고, 특히 객지에 살고 있는 후손들은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내려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봉분을 아예 없애버리는 풍토가 몇 년 전만 해도 크게 성행했다. 단순히 봉분을 없애버린다기보다는 유골을 꺼내어 현장에서 화장을 한 다음 부근에 뿌려버린 것이다.
조선시대 형벌 중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게 있었는데 관을 쪼개어 목을 베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후손이 조상에게 부관참시라는 형벌을 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참극이 아닐 수 없었다. 풍수를 통해 본 조상숭배의 구조는 자손이 번성하고 사회적으로 출세하며 부유하고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전면 부인하며 조상의 유골과 함께 봉분을 없애버림으로써 벌초의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지내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벌초가 그리 어렵다면 그냥 내버려두면 될 일이었다. 봉분이 허물어지면 나중에는 평장처럼 될 터이고,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대로 될 게 아니겠는가.
어느 풍수가도 “벌초가 어려우면 주변 나무 정도나 베어주고 그도 못하면 그냥 그대로 놔두면 된다”고 말했는데 백번이고 그 풍수가의 말이 맞다. 굳이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조상을 깨워 화형이거나 부관참시와도 같은 불효를 저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후손들이 그 같은 일을 자행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만 것은 결국 벌초의 어려움일 터였다. 벌초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현대인의 이기적인 생각일 게 틀림없어 보인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다보니 화장 선호도가 급격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국토의 점유율도 극히 적어지므로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한 술 더 떠서 가족장의 묘지를 만들되 아예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바닥에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포를 이중으로 깔고 그 위에 자갈을 깔아두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국토의 훼손을 줄인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조상의 묘를 한데 모아 이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겠지만, 이 경우 나름대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쉽게 이행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성균관은 유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추석 전 차례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을 때 상차림이 9가지를 넘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명절 때 상차림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풍성하게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조상숭배를 실천하는 덕목으로 오해해서 온갖 음식을 상에 올렸던 것이다. 아마도 성균관에서는 유교의 예서(禮書)를 들어다보아도 차례상을 걸게 하라는 법이 없은즉 간소하게 지내도 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렇듯 기제사도 간소화되고 문중 어르신을 모시는 시향을 지내는 것도 간소화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와 편승해서 벌초 문제도 조상을 모시는 일에 후손들은 큰 짐으로 다가오는 게 요즘 분위기다. 오죽하면 봉분을 없애버리고 화장시켜 뿌리기까지 하겠는가.
그나저나 지난 추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벌초로 인해 비지땀을 흘리면서 수고로움을 겼었다.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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