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66)
“목이 메어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칠량면 월궁마을 김막동할머니(80)
‘말 못하는, 이내심정/ 몰라주는, 그 사람아/너를 두고, 짝사랑에/ 내 가슴이, 멍이 들었소/
북장구를 잘 쳤던 김할머니가 예전 북장구를 치며 불렀던 노래라며 흥겹게 불러준다. 애틋한 노래가사지만 김할머니의 노래에 어깨가 절로 들썩거려진다. 김할머니의 어조는 마치 판소리의 장단처럼 음성의 고저가 담겨있다.
김할머니는 19살에 칠량 중흥마을에서 이웃마을인 고현마을로 25살 총각에게 시집갔다. 시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시어머니는 작은 아들을 큰 집에 양자로 들이고 큰 아들만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시어머니의 친정에서 갓 스무 살을 넘기 나이에 혼자되었던 시어머니를 차마 이곳에서 재혼시키지 못하고 일본으로 재혼시켜 보낸 거였다. 일본에서 살아온 남편은 다시 돌아왔고 이곳에 혈육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큰집 큰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김할머니와 혼인하게 되었다.
“큰어머니가 여장부였어. 합봉을 써서인지 남자들이 수명이 짧아.”
조상 묘 중 두 개가 모두 합봉이라는 거였다. 그것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댁 남자들의 수명이 짧았고, 남편도 46세에 위암으로 떠났으며, 큰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먼저 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묘를 잘 본다는 사람이 손대지 못하게 해서 그냥 놔두고 있다고도 했다. 사촌오빠가 군수를 할 정도로 괜찮은 집안 9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김할머니는 어렸을 때 늘 집안에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밀리면서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한국 아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무조건 잡아갔기 때문에 여자들은 무서워서 밖을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김할머니가 17살 무렵이던 어느 날 어디론가 잡혀가 소식을 모르는 동네 친구와 친척의 안타까움에 고개를 흔들었다.
“친정오빠가 경찰이었어. 그래서 행랑에 경찰들이 늘 있어가고 우리집에 동네 처녀들이 와 있고는 했어. 그래야 안전한게 말여. 새 각시고 새 큰애기고 보이면 잡아가 불고 흔적도 없던때여.”
학교에서 사라진 시누는 그 뒤 소식을 모르며, 함께 놀았던 친구 둘은 어느 날 뒤에서 누가 다가와 입을 틀어막고 뒤로 손을 묶어 데려간 뒤 소식이 없다는 거였다. 김할머니 또한 집에 느닷없이 들어온 남자가 잡아가려고 하자 소리를 질렀으며 그때 아랫방에 머물던 경찰들이 나와 못 데려갔다며, 잡아다가 죽여 버려도 모르는 세상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김할머니의 밝은 표정과 구수한 입담이 판소리가락처럼 들려서 별 고생 없이 살아오신 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착각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김할머니는 42살에 혼자되어 6남2녀를 혼자 힘으로 키워야 했으니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김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목에 메어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아낙네들이 서로 품앗이로 밭을 매며 돌아가면서 불렀다는 노래란다. 가사는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만 모두들 흥겹게 부르면서 밭을 맸다고 한다.
“독해야 살지, 눈물 흘리고는 못 살어. 밭에서 밭을 매고 들어오면 방에서 서로 엉켜 누워 있는 애들을 보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가 몰라. 언젠가는 유치원 애기들이 빨간가방 메고 간 것을 본디 눈물이 그렇게 납디다. 어렵게 키웠던 애들 생각나서······.”
그러나 스스로의 삶이 힘겹고 고달프다고 해서 허구한 날 눈물만 흘리고 있다가는 앞날을 헤쳐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북도치고 노래도 부르고 독한 마음으로 살았다며 웃는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김할머니는 이야기를 줄줄줄 잘 풀어놓는다. 마치 북장단에 맞추듯이 가락이 있는 목소리다. 밝은 표정에 북장구도 잘치고 노래도 잘 불렀던 김할머니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느냐고 슬쩍 물었다.
“당신 손이 내 손을 잡으먼 당신 손, 내 손 작두로 잘라부러, 그런게 달아본 사람이 없어, 그러먼 저 사람 성질이 저런 갑다 하고 말어.”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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