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다산의 1호 제자 치원 황상이 사숙한 ⌜장자(莊子)⌟ (5)
HOME 회사소개 이용약관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기본스킨 오렌지스킨 보라스킨 연두스킨 그레이스킨
2023년 6월 10일 토요일
뉴스홈 > 칼럼
2022-12-06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다산의 1호 제자 치원 황상이 사숙한 ⌜장자(莊子)⌟ (5)

다산의 1호 제자 치원 황상은 중국의 유명한 4대 시인, 즉 육유, 한유, 두보, 소식의 시를 익혔으며 특히 장자를 섭렵하였습니다. 추사는 치원의 시를 감상하고 나서 두보와 한유의 시를 골격으로 삼았다는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 공부를 통해 황상시를 탄생시켰기에 본지에서는 5회에 걸쳐 치원이 등초하고 초록했던 시인과 장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연재합니다.

 

봄에는 장자를 등초하였고

가을엔 육유시를 초록하누나

천여 수를 손으로 써서 얻으니

눈이 캄캄해 온통 감길 것 같다

 

장자(莊子)는 누구인가?

장주(莊周)는 중국 전국시대 조가(道家)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사마천의 <사기> <노장신한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장자는 몽() 사람으로 이름은 주()이고, 일찍이 몽의 칠원리(漆園吏)가 되었다. ()의 혜왕(惠王, BC 370~319 재위)이나 제()의 선왕(宣王, BC301~BC319 재위)과 같은 시대였는데, 학문이 박학했다.

장자의 근본은 노자(老子)의 설에 귀착하고 있고, 따라서 그가 지은 10만여 자의 저술은 대체로 우언(寓言)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부(漁父)>, <도척(盜跖)>, <거협(胠篋)> 등의 여러 편을 지어 그것으로 공자(孔子)의 무리를 비방함으로써 노자의 학술을 밝히려 했다.

장주의 말은 광대무변하면서도 자유분망했기 때문에 특이한 사람이라 여겨 등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 위왕(威王)은 장주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예물을 후하고 주고 그를 맞이해 재상을 삼으려 했다.

장주가 웃으며 말했다.

천금은 막대한 돈이고, 재상 자리는 존귀한 자리이다. 당신은 교제(郊祭)에 쓰이는 희생물인 소를 보지 못했소? 몇 년 동안 잘 길러 비단옷을 입히고 풀과 콩을 먹이지만, 막상 태묘(太廟)에 끌려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 소가 어미 잃은 외로운 송아지가 되기를 바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만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살아서 더러운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하였다.

이상이 <사기>에 보이는 <장자열전>의 전부다.

장자는 박학다식해서 오히려 출셋길이 막혔고, 10만여자의 <장자>는 우언(寓言)이 대부분인데, 온갖 비유를 끌어다가 인간사와 세정(世情)을 말했으므로 난해하기 짝이 없다.

 

장자의 중심사상은 무() 자에 있다 하겠다.

무대(無待) : 아무런 기대함이 없이 멋대로 행동한다. 곧 목적 없이 소용한다.

무심(無心) :아무런 마음이 없다. 무심히 자연의 변화를 따라갈 뿐 세속의 온갖 명리에는 무관심하다.

무정(無情) : 세속적인 인정이 없다. 일체의 희로애락이나 욕정도 없다. 이에 마음의 갈등도 없다.

무용(無用) : 속인은 유용하기를 힘쓰고 무용을 수치로 알지만, 도리어 장자는 무용만을 용()으로 여겼다. 무용한 굽은 나무는 천수를 누린다고 하였다.

무명(無名) : 장자는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인은 명예 때문에 생명을 버리기도 하지만, 명예를 구하지 않은 장자는 갈등이나 시비가 없게 되어 도리어 치욕이 없다.

무공(無功) : 공로가 있어도 누리지 아니하고, 탐내지도 않는다. 속인들은 공로를 다투기 때문에 제 몸을 망치지만, 그는 공을 중시하지 않으므로 남과 다투는 일도 없다.

무기(無己) : 자기를 잊어 고집을 세우는 일이 없으므로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하여 자연의 변화에 따를 뿐이다.

무위(無爲) : 인위적인 행위가 없다. 인위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하다가 사람은 천성을 잃지만, 그는 무위하므로 천성에 편안하고 이에 정치도 무위의 치()를 행해야 한다고 여겼다.

무지(無知) :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병이란 말처럼 억지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아는 척하지도 않는다.

무언(無言) : 말이 없는 것으로 알아도 말이 없고, 몰라도 알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말 때문에 모든 분쟁이 생기고 말이 화의 근원이 된다. 속인도 말이 없음이 최선의 생활 지혜이다.

무변(無辯) : 강변함이 없는 것이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듯이 모든 일이 변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는 변명과 말로써는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무시비(無是非) : 도는 순진하고 거짓이 없어 시비와 가부(可否)를 초월한다. 평가기준은 상대적이고, 시비는 애매한 것이므로 차라리 시비가 없음이 마땅하다.

무피차(無彼此) : 그것이 그것이고, 이것이 있으면 그것도 있으니 피차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시비를 초월해야 참다운 도를 체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무귀천(無貴賤) : 귀천은 속인이 구분 짓는 한계다. 귀천도 상대적이니,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천한가? 귀천을 넘어선 대동(大同)의 세계만이 인간사회에서도 지상낙원이다.

무생사(無生死) : 삶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과정으로 보아 일체시하며, 삶을 좋아하거나 죽음을 싫어하지 않는다. 생사를 일체로 보아 초연하게 여긴다.

무성패(無成敗) : 도를 체득한 자는 성패에 무관심하다. 성패는 속인들의 집착하는 바이고, 초월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무종시(無終始) : 천도는 순환하여 시종이 없으므로 이런 도를 체득한 자는 시종을 느끼지 않아 무궁에 순화할 수 있다.

무득실(無得失) : 도에는 득실의 구분이 없다. 얻으면 잃을 게 자연법칙이다. 따라서 장자는 한때의 득실로 희로의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동이(無同異) : 대도(大道)는 순일하여 동이(同異)의 구별이 없다. 보는 입장에 따라 같게도 보이고 다르게도 보이므로 득도라는 동이의 느낌을 갖지 않는다. 동이는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증애(無憎愛) : 성인(聖人)은 일시동인(一視同仁)하여 피차의 분별이 없고, 귀천의 구분이 없으므로 애증의 감정도 없다. 득도자는 애증을 한가지로 본다.

21)무영욕(無榮辱) : 영욕의 구분도 속인이 정하는 것. 득도자는 이런 것에 담담하고 무감각하다.

22)무내외(無內外) : 우주는 일체요, 대도는 혼일(混一)한데, 어찌 득도자에게 상대적이요, 속인의 관심사인 내외의 구분이 있겠는가?

23)무형(無形) : 무형은 유형보다 낫다. 대도는 형상이 없어 신묘함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불언(不言)의 교()를 행하고, 표현함이 없어 마음속에서 깨닫는다.

 

23개의 말을 종합해 볼 때 기대함이 없으므로 무궁(無窮)에서 자유자재 노닐 수가 있고, 마음이 없으므로 득실에 관계하지 않으며, 정이 없으므로 만물에 막히지 아니하고, 쓰임이 없으므로 그의 천수를 누릴 수가 있다.

이름이 없으므로 허영을 찾지 않고, 공이 없으므로 재력을 숨길 수 있으며, 자신에 무관심하므로 자연에 순응할 수 있고, 지혜를 부리지 아니하므로 정()을 유지할 수 있고, 말이 없으므로 시비가 생기지 아니하며, 변명이 없으므로 편견을 갖지 않는다.

시비가 없으므로 도를 잃지 아니하고, 귀천이 없으므로 애락의 감정에 들지 않으며, 처음과 끝이 없으므로 사생과 사후의 소재를 알지 못하여 천균(天均 :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울러 한가지로 봄)에서 쉬게 된다.

곧 무심에서 시작하여 천균에 이르는 장자의 도는 일반적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 염담허정(恬淡虛靜)이란 숙어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도가 행해질 때 혼탁한 세상은 가버리고, 참으로 행복스러운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호접몽(胡蝶夢)

장자가 하루는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인 것이다. 대체 장주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지만 그 구별의 햇갈림은 무엇 때문일까?

사물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인 구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다. 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이것이 장주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이다.

물아(物我)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이렇듯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는 것, 또는 몰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해 호접몽이라 한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장자의 시

1.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2. 착하다는 일 하더라도

이름이 날 정도로 하지 말고,

나쁘다는 일 하더라도

벌 받을 정도로는 하지 마십시오.

오직 중도를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공양할 수 있고,

주어진 나이를 다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노자도 마음을 비우고 배를 든든하게 하며, 뜻은 약하게 하고 뼈는 튼튼하게하고 지식도 없애고 욕망도 없애고,함부로 하겠다는 짓도 못 하게하라고 했다. 이는 무지(無知), 무욕(無慾), 무위(無爲)를 가르치고, 이렇게 하면 세상에서 안 되는 것이 없으리라고 했다.

 

장자의 말(세 가지 비유)

당신은 사마귀라는 벌레를 아시오? 화를 내어 팔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수레에 맞섭니다.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짓은 제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조심하고 신중하십시오. 스스로의 훌륭함을 자랑하여 거스르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당신은 호랑이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요? 호랑이에게 먹이를 산 채로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죽일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또 먹이를 통째로도 주지 않습니다.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알아서 그 사나운 노기를 잘 구슬리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람과 다르지만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성질을 잘 맞추기 때문입니다. 호랑이가 살기(殺氣)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큰 대합 껍질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습니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말을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뜻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세 이야기는 영공의 태자같이 좀 모자라고 난폭한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할 일을 그림 그리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달려오는 수레를 향해 팔뚝을 휘두른 사마귀 이야기는 불의하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 앞에서 우리 개인은 어쩔 수 없이 한 마리 사마귀에 불과하다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이상이 아무리 높고 갸륵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가진 현실적 능력의 한계를 무시하고 무모한 짓을 하다가 쓸데없이 희생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보다 더 어리석다. 좀 더 사리를 깊이 살피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힘도 없으면서 겁 없이 대드는 행동을 뜻하는 당랑지부(螳螂之斧)’. ‘당비당차(螳臂當車)’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호랑이를 길들이는 이야기는, 성질이 사나운 사람도 그 성질을 잘 알아 거기에 맞추어 가면서 이끌면 고분고분해지는데, 성질을 거스르면 살기를 드러내 덤벼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상대방의 성질에 맞추어 주되,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등을 잘 알아 잘 구슬려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말을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사소하고 엉뚱한 실수 하나로 자기의 의도와는 달리 그동안 해준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갈 뿐 아니라 말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 이야기는 특히 시간 맞춤이 중요함을 암시하고 있다. 모든 일에 적기가 있음을 알고 잘 맞추라는 것이다.

장자의 <미녀와 추녀> 이야기

양자(陽子)가 송나라에 갔을 때 여인숙에 머물렀습니다. 여인숙 주인에게는 첩이 둘이었는데, 하나는 미인이고 다른 하나는 추녀였습니다. 추녀는 귀여움을 받고 미인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 까닭을 물으니 주인이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저 미인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하여 아름다움을 모르겠는데, 저 추녀는 스스로 못났다고 하여 그 못남을 모르겠습니다

양자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명심하라.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진 행동을 한다고 하지 않으면 어디 간들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남을 생각하는 마음, 겸허한 태도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결국 모두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훌륭하면서 그리고 훌륭한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요, 이렇게 훌륭할 때 어디 가서라도 환영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장자의 죽음

장자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자가 이를 듣고 말했습니다.

내게는 하늘과 땅이 안팎 널이요, 해와 달이 한 쌍 옥이요, 별과 별자리가 둥근 구슬 이지러진 구슬이요, 온갖 것들이 다 장례 선물이다. 내 장례를 위해 이처럼 모든 것이 갖추어져 모자라는 것이 없거늘 이에 무엇을 더 한다는 말인가?”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먹을까봐 두렵습니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거늘 어찌 한쪽 것을 빼앗아 딴 쪽에다 주어 한쪽 편만 들려 하는가?”

장자 32장의 마지막 구절이다. 일상적 상식을 바탕으로 한 가지 체계는 믿을 수 없으므로 일종의 가치 전도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죽음과 삶을 초탈한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일 같은 것을 신경 쓰겠느냐는 가르침으로 장자 이야기는 끝맺는 셈이다.

치원 황상의 삶

치원 황상은 장자의 궁극적 이상인 우주의 원리를 따라 자연과 하나 돼 무한한 경지에 노니는 절대 자유를 만끽한 무애(無礙)의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절대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자유인은 누구인가? 바로 구경(究竟)에 이른 지인(至人)이요, 신인(神人)이요, 성인(聖人)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한 사람으로 자기가 없고, 공로가 없고,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에 집착으로 하거나 연연해 하지않는 것이다. 자아나 공로나 명예의 굴레에서 완전히 풀려난 사람으로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는 무대(無待),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

열자(列子)처럼 세상사에 초연할 뿐 아니라 바람을 타고 아무데나 떠다니며 자유를 누렸다. 세상사에 몰두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으로 몸을 도사리는 것이 아니라 온갖 것과 하나가 된 상태로 만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물처럼 흐르듯 살았다.

치원 황상은 68세부터 세상을 떠난 83세까지 15년간 만년을 보낸 일속산방의 시가 있다.

 

--지붕에 띠풀을 얹고 나서

여러 해 바람에 찢기고 장마에도 상처 입었으니

누가 망가진 빗자루의 값이 천금이라 했던가.

집밖에 가랑비 내리면 집안은 큰비가 내려

나래를 펴 우산을 만들며 한숨을 쉰다.

깊은 물에 다가서듯 여기저기로 피하고

물에 뒤범벅된 벽은 작은 가림막이 되네.

달아나려는 길짐승과 날아가려는 날짐승이

산옹께서 지나치게 사치스럽다고 비웃는다.

용면산장에서 어찌 이런 곳에 오겠는가.

아침에 은빛 사슴을 불러 그 배위에서 밥을 먹는데

들국화 섞인 천태산의 띠를 베어 오며

서까래 버섯이나 기둥 얽는 넝쿨도 애써 없애지 않는다.

석양을 향해 앉아 오늘 일을 헤아리며

다시금 숲속의 일속산방을 바라본다.

동산에 달은 남쪽 창문을 비추고

소나무탑 위의 촛불은 시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황상의 만년 생활이 그대로 담긴 시가 아닐 수 없다. 유유자적하고 평화롭고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은 일속산방의 경영을 통해 자연과 동화되어 갔다.

--사호암에서 두보의 <객당>을 차운하며

<중략>

발 닫는 것은 산림과 전원뿐인데

천거하는 일이 어찌 있으랴.

시냇가 농사일을 자식과 손자들에게 가르치며

옛 스승은 오직 후직(后稷)이다.

마침 떠오른 한밤의 달

형태와 빛깔은 형용할 수 없구나.

 

황상은 왜 산거생활을 고집하고 백적산 기슭에서 살았을까. 그것은 다산이 <유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침 하였고, 황상 자신도 자연에 대한 동경이 컸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손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모습이 눈에 선연하게 떠오른다.

황상이 살았던 일속산방. 좁쌀처럼 작고 초라한 한 칸 집이었지만 황상은 그곳에서 우주를 안고 사는 공간이었다.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했고 자유로웠으며 자족적인 삶이었다.

: 송하훈 <장자 평전 참조>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기자이름없음 
칼럼섹션 목록으로
이형문의 인생교양칼럼 178
송하훈의 화요칼럼 '눈'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
천 원짜리 밥과 남미륵사 ...
최순실의 자식사랑이 가져...
다음기사 : 송하훈의 화요칼럼 '눈' (2022-12-20)
이전기사 : 송하훈의 화요칼럼) 흙집예찬 (2022-11-29)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이형문의 창가...
박재룡(전)강진군...
강진에서 광주까...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게시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