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책 소개
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
(하버드대 출신 한국학 박사에게 듣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저자 :마크 피터슨, 신채용 옮김
출판 지식의 숲
-한국사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역사-
대학교에서 유럽사와 일본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유럽사와 일본사는 평화로운 시기가 적은 편이다. 유럽은 격변과 혼란의 시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전쟁들이 연이어 벌어졌고, 반면 일본은 외세로부터 두 차례 침략 당할 뿐이었지만 내전이 일상이었다. 누군가 인류의 역사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고 표현한 것처럼 내가 배운 유럽과 일본의 역사는 붉은 색이었다. 그 만큼 정권과 지역을 지배하는 귀족이나 기득권들이 몰살당해 교체되는 일도 흔했다. 죽음이 일상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사는 어떠할까? 한국사는 한반도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역사임을 강조한다. 몽골의 침략,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 등 우리는 언제나 대부분 침략 받는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를 부끄럽고 창피하고도 불행한 역사로 인식하기도 한다.
“한국이 대규모로 침략을 받은 것은 13세기 몽골 침략과 16세기 일본 침략 두 차례 뿐이다. 병자호란은 경우가 다르다. 병자호란은 조선을 적이 아니라 동맹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쟁이다.”
그러나 ‘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 의 저자 하버드대 출신 ‘마크 피터슨’ 교수는 주장한다. 한국은 자신의 관점으로 볼 때 많은 침략을 당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폴란드나 독일 같이 육지로 둘러싸인 나라들이 훨씬 더 많은 전쟁과 침략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인의 역사적 관점이 지나치게 과거의 시점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그는 1965년 한국을 방문하여 선교사 활동을 했었다. 당시의 한국은 지독히도 가난했다고 말한다. 언어적으로도 자동차를 ‘구루마’라고 지칭하는 일본식 외래어가 자주 들려왔다. 자신들이 도와주고 배움을 가르쳐준 사람이 도둑으로 돌변하여 물건들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모든 일들을 해프닝으로 여겼다. 절망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사건들. 그가 본 과거의 한국은 그러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어떠한가? 그는 1965년의 한국과 현대의 한국은 명백히 다르다고 말한다. 1965년 당시의 한국인들은 희생과 피해의식을 가진 역사적 관점을 가질만했다. 당시 그들은 정말로 가난했고, 언어적으로도 과거 식민지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역사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 만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전통적인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일본의 사무라이 역사와 비교해보라. 그들은 다른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며 자리를 계승했고 그것이 실패하면 자결했다. 일본의 역사는 삶과 죽음, 살인과 권력 장악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일본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자는 라이벌을 성공적으로 죽인 사람이다.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다이묘가 마침내 천황까지 통제한다. 일본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투성이다. 반면 한국에서의 권력은 최고의 문장력 및 학식으로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한 최고의 학생에게 돌아간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보자면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펜이 칼보다 강했다.”
저자는 서구에서 들어온 문물과 사상을 통해 기존 전통과 가치관들이 무너졌을 때, 일본과 한국의 선택은 달랐다고 말한다. 일본은 과거 사무라이 정신으로 회귀하여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추구했고, 일본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세계전쟁을 일으켰다. 반면 한국은 일본처럼 무력을 추구하지 않고, 선비정신으로 되돌아가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이나 천연자원이 아니라 지성에 기반을 둔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다. 그는 한국의 지성교육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평화롭고 안정된 역사
다른 나라에서는 어느 왕조가 몰락하면 대혼란이 오고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기득권이 몰살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한국은 수천명의 살육도 없었고, 지배계급의 전멸도 없었다. 그는 이를 한국 역사의 특수성이라고 칭한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가 볼 때 지배계급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하는 일본 사회보다는 한국이 오히려 역사의 진화에서 앞서간다고 말한다. 가령 한국의 성씨는 전통적으로 250개밖에 되지 않은 반면(이민자들로 인해 조금 더 많아졌을 수도 있다), 일본은 30만개 이상의 성씨가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성씨의 개념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증거다. 특히 한국은 21% 김씨, 15%가 이씨, 9%가 박씨이며, 이 세 대표 성씨만으로 무려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여기에 최씨 5%와 정씨 5%까지 합치면 이 5개 성씨만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가장 흔한 성은 사토지만, 그 비중은 1.57%에 불과할 정도다. 그 뒤로 스즈키가 1.5%로 2위, 그 다음으로 다카하시, 다나카, 와타나베, 이토등이 각각 인구의 약 1%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가장 흔한 성은 ‘스미스’(smith)다. 스미스는 한국의 김씨라 불릴만큼 흔하다고 하지만, 그 비율은 실상 전체인구의 0.8%밖에 안 된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존슨(Johnson), 월리엄스(Willaiams)를 모두 합쳐도 2%가 안 된다.
예외적으로 베트남이 있다. 베트남은 무려 인구의 38%이상의 성이 응우옌(Nguyen)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닌,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이 지지자들에게 이 성을 ‘하사했고’ 나중에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통치하면서 성이 없는 사람에게 응우옌이라는 성을 지어줬다는 보고도 있어 한국의 경우와는 다르다.
한국의 무서운 점은 이 성씨들이 후손을 계속 이어오며 분가해올 만큼 계급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500년 가까운 시기동안 귀족계급이 명칭만 바뀔 뿐, 대부분 그 자리의 대를 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노비제도가 변화하지 않고 긴 시간동안 이어져온 부작용도 있다. 한국은 삼국시대 이후 봉건제를 종식시키고 중앙집권화를 성공적으로 이뤘고, 긴 시간동안 유지시키며 발전시켜왔다.
봉건제도
일본은 자국의 봉건제도 전통이 유럽의 봉건제도에 부합하는 것처럼 봤다. 그렇기에 유럽의 역사적 단계 이론 (원시사회-> 노예제도-> 봉건제도-> 자본주의)을 받아들였다. 이는 군사력 우위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사고를 더욱 강화시켰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보다 더 우월한 국가이며 유럽의 식민지 강국들처럼 식민지 개척 제국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뒤떨어진 국가라고 무시하며 한국의 ‘현대화’를 돕기 위해 ‘부담’을 떠안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봉건제를 폐기했다. 한국은 천 년보다도 더 긴 시간동안 일본보다 앞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를 발전시켜왔다. 저자는 유럽의 역사적 단계 이론은 재조명하거나 폐기할 필요가 주장한다. 한 국가의 개별적인 변화와 발전 척도를 고정된 시선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그는 각 국가마다 개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시선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게 역사란 고정된 ‘고체’가 아닌, ‘기체’와 다를 바 없이 유동적이어야만 하는 학문이다.
우물 밖 개구리
저자는 자신을 ‘우물 밖 개구리’로 칭한다. 그는 처음 한국사를 연구하고 공부할 때는 한국 역사학자들의 정통의 관점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본토의 학자’들을 존중하고자 했다.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자 상황이 달라졌다. 저자는 한국은 충분히 강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내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그 역사와 문화가 약간 왜곡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왜곡이 무의식적으로 ‘일본’에 의해 수시로 가해졌음을 깨달았다. 의도적인 왜곡은 대부분 해결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심어놓은 무의식적인 왜곡은 아직도 여러 방식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물론, 그는 이 책에서 한국 역사의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포괄적으로 다루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다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따온 몇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중에는 문화와 언어도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순서를 정하지 않고 독자들이 원하는 지점과 부분을 읽으며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가지길 원한다. 그는 세계 역사상 진정으로 독창적인 사람들(한국인)을 깊은 존경과 흠모로 가득한 눈길로 보는 관점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희생과 불행의 역사’를 강조하는 정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저자의 주장처럼 한국사는 불행하고 절망적이지 않고 오히려 독창적이고 자부심 가질만한 역사일지 모른다.
저자는 책 이외에도 ‘우물 밖의 개구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사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김한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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