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장편역사소설 <깨달음의 빛, 청자>5
말타기대회
탐진현 치소에서 주관하는 활쏘기대회는 대구소의 규모와 크게 달랐다. 참가하는 장정들도 많았고 활쏘기대회가 끝나면 말타기대회를 했다. 그런데 날씨가 어깃장을 놓았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이내 장대비로 변해 쏟아졌다. 장대비를 맞으며 활쏘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탐진현 치소 향리는 대회를 취소하지 않은 채 장대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궁복과 정년은 치소 관아 창고 추녀 밑에서 비를 피했다. 관아에는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참가한 장정들 모두가 토방 위로 몰려들었다. 궁복이 말했다.
“낙수물 쪼깐 봐라. 낙수물이 떨어진 자리에 반다시 꽂혀분다야.”
“성님은 맴이 심란허지도 않으요? 낙수물 떨어진 자리를 과녁으로 보고 있은께 말이요.”
“동상, 활쏘기는 물 건너 가분 것 같그만.”
“작년 일년 내내 갈고 닦었는디 아숩그만이라. 논에 물대기는 좋은 약비이기는 헌디라.”
“기세를 본께 오전에 그칠 비는 아니네.”
“활쏘기대회는 못허드라도 오후 말타기대회는 허겄지라.”
정년은 대회 참가에 집념을 보였다. 궁복과 달리 대회에서 우승하여 서라벌로 진출해 무장으로 성공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반면에 궁복은 무장으로 출세하기보다는 무술 실력을 징검다리 삼아 큰 상인이 되기를 바랐다.
점심은 치소에서 소금물을 친 찰진 주먹밥이 나왔다. 장정들은 배식군사에게 주먹밥을 하나씩 받아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봄비가 다시 보슬비로 바뀌어 내렸다. 만덕산을 덮었던 비구름이 서쪽인 흑수바다 쪽으로 물러가고 있었다. 비구름은 불어오는 샛바람에 주춤주춤 떠밀렸다. 며칠 동안 샛바람이 불곤 했는데, 계절풍인 마파람이 탐진바다 너머에서 올라올 징조였다. 주먹밥을 먹은 장정들이 배식군사에게 물었다.
“활쏘기 시합은 헌다요, 으쩐다요?”
“향리 나리께서 결정허실 텐께 쪼깐 지달려 보씨요.”
그러나 정년은 활쏘기대회는 이미 틀렸고, 한다면 오후에 말타기대회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작년에도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끼어 오후에 말타기대회만 열려 승마실력만으로 우승을 가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성님, 아무래도 오늘은 말타기대회만 헐 거 같으요.”
“으디서 들은 얘기여?”
“재작년에도 안개 땜시 활쏘기를 못허고 말타기만 해서 우승자를 뽑았어라.”
“연이 동상이 유리허겄네잉.”
“아이고메, 성님. 말을 성님보다 쪼깐 더 탄 것은 사실이지만 지는 말이 으쩐지 거시기해라. 에렸을 때 낙상헌 것 땜시 그런다고 허는디 지는 말타기보다 헤엄치는 것이 좋지라.”
“나야 연이 동상집 말을 타본 것밖에 읎제잉.”
“아니어라. 성님은 말을 쬐끔도 거시기허지 않드그만요. 말을 탈 때는 말허고 딱 한 몸이 돼불드랑께요.”
정년의 말대로 활쏘기대회는 취소되고, 오후에 말타기대회를 한다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군교가 소리치고 다녔다.
“모다 들으씨요. 오늘 활쏘기대회는 우천 관계로 취소허고 오후에 말타기대회를 예정대로 헌께 준비들 허씨요!”
그러자 아침부터 활쏘기대회를 기다렸던 장정들이 술렁댔다. 일부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진작에 알려줄 일이지 여태 지달리게 해놓고 인자사 뭔 일이여!”
“말타기만 허믄 부잣집 자식덜은 좋겄제. 아조 에럽게 빌린 말을 한두 번 타본 것이 전부인디 우리가 어처케 이길 수 있당가!”
장정들의 수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궁복과 정년은 일부러 마지막 5조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의 성향이나 말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마지막 조를 선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정들은 마지막 조 말들은 지칠 거라며 앞선 조를 들어가려고 다투었다.
말타기 경주는 세 개의 장애물 넘기로 시작해서 남당포 반환점을 달려갔다가 치소 경마장으로 돌아오는 경기였다. 장애물 통과는 말을 타고 간짓대 위를 넘어가는 것인데, 세 개의 간짓대들은 높이를 달리 해서 놓여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간짓대는 담장 높이쯤 되어서 대부분 말들이 그 앞에서 멈춰버리곤 했다. 말이 겁을 먹고 간짓대를 뛰어넘지 못한 채 옆으로 피해버렸던 것이다.
1조 참가자 두 명은 모두 세 번째 간짓대를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한 참가자가 감독군사에게 잘 길들여진 말이 아니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집에서 탈 때는 이보다 더 높은 디를 넘었는디 이상허요. 긍께 말을 바꽈 주씨요.”
“참가자덜 요구를 다 들어주믄 시합이 은제 끝나겄소? 그 말로 다른 참가자가 탈 것인께 잘 보드라고잉.”
탈락한 참가자는 탐진현 토족 조(曹)씨의 아들이었다. 참가자는 아버지가 탐진현 치소 향리와 돈독한 사이였으므로 감독군사를 우습게보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고지식한 감독군사는 참가자들을 공평하게 대했다. 항의하던 참가자는 2조 경기를 보고는 경마장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2조 마지막 참가자가 그가 탔던 말을 타고 가볍게 세 번째 간짓대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받은 2조 마지막 참가자는 남당포로 기세 좋게 달렸다.
그런데 2조 마지막 참가자는 4조가 경기를 모두 마쳤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세 번째 장애물을 넘기는 했지만 간짓대를 건드려 떨어뜨린 탓에 감점을 받았던 4조 첫 참가자가 남당포에서 돌아온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치소 향리의 지시로 군사가 수색을 나갔다. 향리가 예건했던 대로 돌발적인 사고였다. 비 온 뒤끝이었으므로 길이 미끄러워 2조 마지막 참가자가 말과 함께 논두렁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말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2조 마지막 참가자는 다리가 부러져 수색 나온 군사를 보고서도 꼼짝을 못했다. 예기치 않은 부상자가 발생했으므로 경기는 지연되었다. 정년은 지루한지 궁복을 보고 말했다.
“성님, 4조는 모다 세 번째 간짓대를 건드렸응께 고것만 잘 넘으믄 우승은 우리가 허겄그만요.”
“아니여, 길이 미끄러운께 조심해야 써. 2조 마지막 장정멩키로 되지 않을라믄 말이여.”
“성님이나 지나 훈련을 많이 했응께 세 번째 간짓대 정도는 식은 죽 묵기지라.”
“방심은 금물이여.”
궁복은 정년에게 끝까지 긴장하라고 말했다. 마침내 5조 차례가 왔다. 5조에 들었던 세 명이 기권했으므로 궁복과 정년만 남았다. 덕분에 궁복과 정년은 대기하고 있던 다섯 마리 말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성님이 몬자 골라부씨요.”
“그럴까?”
궁복은 다섯 마리 말들 앞으로 다가가서 눈을 맞추었다. 그중에서 유독 궁복의 눈을 피하지 않는 말을 선택했다. 정년은 이미 마음속으로 정한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탄탄한 말의 고삐를 잡았다. 경기를 치른 참가자들이 두 사람을 주시했다. 정년은 은근히 긴장했지만 궁복은 마음이 편했다. 궁복은 처음부터 마음을 내려놓았고, 정년은 우승을 해서 서라벌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솟구쳐 있었다.
궁복은 정년의 마음을 간파하고 말했다.
“동상이 긴장허믄 말도 긴장헌께 편허게 타야 써.”
“근디 맴이 자꼬 급해지는그만요.”
“내가 옆에 있응께 맴을 놔부러.”
“성님 그럴께라.”
“평소대로만 허다 보믄 좋은 성적이 나오겄제. 하하하.”
궁복은 일부러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자 정년도 따라 웃으면서 긴장을 풀었다. 이윽고 말을 탄 두 사람은 출발선에 섰다. 감독군사가 흰 기를 치켜들기를 기다렸다. 치소 향리가 눈짓을 하자 감독군사가 흰 기를 치켜들고 흔들었다.
궁복의 말이 먼저 겅중겅중 나아갔다. 장애물 경기에서는 굳이 속도를 낼 필요가 없었다. 말과 호흡을 맞추어야만 간짓대를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궁복의 말은 첫 번째 간짓대를 가볍게 통과했다. 궁복과 말이 교감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뒤따라 온 정년의 말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첫 번째 간짓대를 넘었다. 두 사람은 두 번째 간짓대도 감독군사가 보는 앞에서 훌쩍 뛰어넘었다.
세 번째 담 높이의 간짓대에서는 차이가 났다. 궁복의 말은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한 번에 간짓대를 통과했지만 정년의 말은 그렇지 못했다. 말이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이내 간짓대 앞에서 멈춰버렸다. 정년은 당황하여 말고삐를 힘껏 잡아당겼지만 말은 고집을 부렸다. 궁복이 소리쳤다.
“말고삐를 잡아당기지 말고 목덜미를 쓰다듬어. 달래고 나서 한 번 더 심껏 달려부러.”
“예, 성님.”
궁복의 말대로 정년은 다시 시도했다. 말의 목덜미와 갈기를 어루만진 뒤 말고삐를 힘껏 낚아챘다. 그러자 말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간짓대 위를 비호처럼 날았다. 정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당포를 갔다가 돌아오는 경주가 남았지만 일단 경마장 장애물 통과에서는 궁복에 이어 2등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성님, 말대로 헌께 돼부요.”
“동상 실력이사 내가 알제. 그 실력이 으디로 가불겄는가!”
“아니지라. 지가 성님 실력을 어처케 앞서겄소. 하하하.”
두 사람은 또 한 번 더 크게 웃고는 말고삐를 팽팽하게 잡았다. 그러자 말이 남당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논에 물을 대던 농사꾼들이 달리는 말들을 보고 박수를 쳤다. 무논에서 먹이를 찾던 황새 몇 마리가 놀란 듯 후다닥 만덕산 쪽으로 날아갔다. 궁복이 소리쳤다.
“논두렁 사이가 미끄러운께 조심해. 미꾸락지멩키로 미끌미끌허그만.”
“성님 지 생각허지 말고 달리씨요,”
“반환점을 돌고나서 진짜 시합이겄제잉. 말도 사람도 모다 지친께 말이여.”
궁복은 정년이 잘 따라올 수 있게끔 힘을 안배하며 달렸다. 경마장 장애물 통과 때 세 번째 간짓대 앞에서 멈칫했던, 정년이 탄 말의 습성으로 보아 힘들면 요령을 피울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멀리 남당포의 풍선 장삿배와 보리숭어잡이 곶배들이 보였다. 배들 위로 갈매기 떼가 너울너울 날았다. 남당포 포구 양쪽으로 펼쳐진 푸른 갈대밭이 탐진바다를 치마폭처럼 껴안고 있었다. 좀 더 달리자 군사 두 명이 흰 기를 들고 흔들었다. 반환점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반환점에 도착했다. 그러자 한 군사가 궁복과 정년의 팔뚝에 검은 먹물 도장을 찍어주었다. 반환점을 돌았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반환점을 지나고 나서였다. 궁복의 말이 갑자기 뒤처졌다. 궁복이 정년에게 말했다.
“동상, 내 말이 지쳐분 것 같네. 긍께 나헌테 신경쓰지 말고 달리게.”
“아이고메, 성님. 지 말과 바꽈 탈께라?”
“허허. 고건 반칙이여. 반칙이 밝혀지믄 두 사람 모다 탈락이여.”
“그라믄 지가 천천히 달리는 수밖에 읎그만이라.”
“고것도 반칙이여. 나를 봐줬응께.”
말고삐를 세게 잡아당긴 궁복의 말이 가까스로 정년의 말을 앞섰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경마장이 보일 때쯤에는 다시 궁복의 말이 뒤로 쳐졌다. 정년의 말은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질주했다. 정년은 더 이상 궁복을 기다리지 못했다. 경마장 밖으로 나온 군사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정년의 말이 경마장에 먼저 들어왔다. 궁복의 말은 한참 후에야 머리를 쳐들고 달려왔다. 우승은 정년에게 돌아갔다. 장애물 경기에서 감점이 있었지만 경주에서 이겼기 때문에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은 정년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정년이 원하면 치소 군사가 바로 될 수 있었고, 서라벌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2등을 한 궁복은 치소 군사가 될 수 있는 자격만 받았다.
그날 밤 궁복은 정년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정년의 아버지 정 족장이 노비를 보내 대구소 향리 별채에 있던 궁복을 부른 것이었다. 궁복은 피곤하여 누워 있다가 노비를 따라 정 족장의 집으로 내려갔다. 정 족장의 사랑방에는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술자리에는 낯선 중년이 앉아 있었는데, 정 족장이 궁복에게 인사를 시켰다.
“인사허게. 김 촌장님이시네. 서라벌에서 오셨네.”
“지는 궁복이라고 헙니다요.”
“이제부텀 장보고라고 허게. 으째서 좋은 이름을 놔두고 자꼬 아명을 쓴당가.”
“예, 어르신, 고로코름 헐라요. 아직까정 입에 붙어서 그렁마요.”
이번에는 정 족장이 당나라 산동반도 일조(日照)에 사는 김 촌장을 소개했다.
“김 촌장께서는 일조 신라촌에 겨시는디 큰 장삿배를 가지고 신라를 왔다갔다 허시는 분이네.”
“아이고메, 귀헌 어르신을 뵈어 영광이그만요.”
정 족장은 이미 술을 서너 잔 마신 탓에 불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 족장이 말했다.
“연이헌테 들었네. 오늘 시합에서 연이가 1등, 자네가 2등을 했담시로? 근디 나는 첨부텀 믿지 않았네.”
“어르신 무신 말씸인게라우?”
“자네가 연이에게 양보헌 것이 틀림읎어. 나는 보지 않았지만 고로코름 생각허네. 연이도 내게 사실대로 말해주었고. 서라벌로 가고 잪은 연이를 위해 자네가 양보헌 것이 분명해.”
정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앉아 있기만 했다. 궁복이 자신에게 양보했던 상황을 아버지 정 족장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한 듯했다. 궁복은 순간 머쓱해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정년이 눈치를 채지 못했을 것으로 믿었는데, 자신의 속마음을 이미 알아챘던 것 같아서였다. 정 족장이 말했다.
“자네는 현 치소 군사로 남아불랑가?”
“연이 동상이 서라벌로 떠나믄 그럴라고 헙니다요.”
“은젠가 나헌테 당나라로 가고 잡다고 했제잉.”
“말씸 드린 일이 있지라우.”
정 족장이 김 촌장에게 눈짓을 하면서 말했다.
“메칠 후면 김 촌장님의 장삿배가 미산포에 온다네. 우리 토기덜을 싣고 갈 배여. 김 촌장님 배를 탈 생각은 읎는가? 마침 배를 지키는 궁사를 구해달라고 내게 부탁허셨다네. 자네가 원했던 바가 아닌가. 당나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네.”
궁복은 벌떡 일어나 두 사람 앞에서 큰절을 했다.
“어르신, 고맙그만이라우.”
“김 촌장님께서 자네의 무술실력과 넓은 도량을 얘기허자마자 을매나 좋아허셨는지 모르네.”
“자, 술을 받으시게.”
궁복은 정 족장과 김 촌장이 주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말없이 앉아 있던 정년이 한 마디했다.
“아부지, 지도 성님을 따라갈라요. 맨날 귀족덜끼리 싸우는 서라벌로 가고 잪지 않그만요.”
정 족장은 바로 허락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김 촌장을 보면서 말했다.
“보고와 내 아들 두 사람이믄 으떤 악독한 당구덜을 만나드라도 물리칠 수 있을 거요. 인자 김 촌장님은 안심허고 항해헐 수 있게 돼야부렀소.”
김 촌장은 몇 년 만에 고향인 서라벌에 들렀다가 탐진현 질 좋은 토기를 구매하러 와서 큰 행운을 만난 셈이었다. 탐진현에서 무술실력을 인정받은 두 젊은이를 손쉽게 얻었기 때문이었다.<계속>
다음기사 : 
